[DUGOUT Interview] 권용관

조회수 2020. 12. 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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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성실함이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자기소개서 첫 문장을 ‘저는 성실한 부모님을 본받아…’라고 적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성실함은 경쟁력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실함이 빛나는 분야가 있다. 스포츠다. 하루 1,000번의 스윙, 200번의 섀도 피칭. 매일 쌓아온 땀방울로 결과를 내는 선수에 관한 이야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온다. 그리고 여기, 성실함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선수가 있다. 몇 번의 좌절 속에서도 다시 기회를 잡아 20년간 그라운드에 서 있었다. 스타 선수는 아니었지만,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그의 성실함을 기억했다. 그래서 권용관의 야구 인생에 후회는 없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조예은 Location 신윤호의야구왕국


안녕하세요.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 (11월 9일 인터뷰)

반갑습니다. 전 KBO리그 선수 권용관입니다. (인터뷰는 오랜만인데 떨리지 않나요?) 괜찮습니다. (웃음)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은퇴하고 나서는 모교인 성남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코치를 했고, 지금은 (신)윤호 형과 야구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의 길

아마추어 선수 지도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증가시키는 데 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싶었죠. 제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2019년까지는 모교인 성남고 코치로 있었어요.

은퇴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곳이죠.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많은 것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가르침보다 저 자신의 성숙함을 기르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걸 배웠죠.

성남고에선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지도를 통해 기량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았어요. 코치는 그런 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죠. 물론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배울 부분도 많습니다. 지금은 학생들과 함께 배운다는 느낌으로 부담 없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신윤호 코치와 함께하게 된 사연도 궁금해요.

사연 같은 건 특별히 없어요. 윤호 형과는 오랫동안 같이 야구를 했어요. 프로에서도 함께 있었죠. 성남고에서 코치 생활을 끝낸 후에 어떤 일을 해볼까 고민이 깊었는데, 고맙게도 윤호 형이 먼저 제안을 해줬어요.

현재 몸담은 트레이닝 센터에 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우선 규모가 크다는 걸 강조하고 싶네요. 배팅 시설이 110평 정도 되고, 트레이닝 파트도 있어요. 무엇보다 수비를 잘하고 싶은 분은 제게 오십시오. (웃음)

내심 수비 지도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네. 물론 같이하고 있습니다. 타격과 수비 지도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어요. (지양하고 있는 부분도 있나요?) 멘탈적인 지도는 하지 않으려고 해요. 자신감이 생기면 그런 부분은 자연스레 해소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도자라고 섣불리 나설 부분도 아니고, 굳이 필요하지도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센터에 트레이너가 있다는 점이 눈에 띄네요.

아이들이 건강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게 가장 좋을 거로 생각했어요. 선수라면 건강이 제일이니까요. 여기서 단계적으로 재활 과정을 거치고, 학교에서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게끔 하는 게 우리의 임무죠.

엘리트 선수가 아닌 사회인 선수를 지도한 적도 있나요?

아직 한 번도 없네요. 오신다면 제가 잘해드릴 수 있습니다. (웃음) 센터에 다양한 기기가 많아요. 덕분에 체계적이고 기본기 있는 트레이닝을 할 수 있고요. 역시 야구를 잘하려면 기본기가 우선이니까요.


#장수 선수 ‘권 병장’

권용관 하면 많은 활약이 떠올라요. 자신의 인생 경기를 꼽자면?

인생 경기라고 할 만한 경기가 없는 것 같아요. (2013년의 홈 슬라이딩도 떠오르는데요.) 아, 그건 인생 경기였지만 그때 발목이 다쳐서. (웃음) 홈플레이트에 들어오다가 다쳤어요. 그래서 3~4일 정도 경기에 나가지 못했죠. 최태원 작전·주루 코치님이 3루에 나가면 포수를 잘 살펴보라고 하셨어요. 한 번쯤은 저를 쳐다보지 않고 공을 천천히 던질 거라고요. 그 한 번을 잘 간파해서 시도하라고 주문하셨죠. 죽어도 좋으니까 과감하게. 비하인드도 있어요. (비하인드 스토리요?) 이 작전을 원래 전지훈련 때 연습했다고 해요. 전지훈련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제가 성공하니 조금 놀라시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이건 운이 좋았기 때문에 인생 경기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것 같네요.

꼭 활약한 경기가 아니더라도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을까요?

‘딱 이 경기다’ 하는 건 없네요. 그냥 하루하루가 다 소중하죠. 그 한 게임, 한 게임이 모여서 제 인생을 이뤘으니까요.

장수 선수로도 꼽혀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수비라고 생각해요. 다시 생각해도 수비 덕분에 계속 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수비를 잘하는 선수는 1군 엔트리에 꼭 있어야 해요. 타격을 위해 올라온 선수는 중요한 찬스에서 치지 못하면 사이클이 내려가곤 하죠. 그러면 2군으로 내려가기도 해요. 그렇지만 수비를 잘하는 선수는 수비 요원으로 계속 1군에 있죠. 수비에는 그런 사이클이 없으니까요. 언제나 필요한 자원이기도 하고요.

‘권용관’ 하면 수비가 떠오를 만큼 수비를 잘했잖아요.

타격은 하루에 많아야 5번 정도 기회가 돌아오지만, 수비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돼요. 다들 알다시피 타격은 10번 나가서 3번 이상 좋은 결과를 내면 잘 친다고 해요. 하지만 수비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아요. 9번 잘하다가 1번 실수하면 팀에 충격이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저는 야구의 기본을 공 던지는 것과 수비라고 생각해요. 프로라면 당연하겠고, 아마추어 선수라도 수비 쪽에 비중을 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오랫동안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제가 프로 생활하는 동안 얻은 교훈이죠.


자신의 야구 인생은 10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저 자신한테 9점을 주고 싶어요. 남들보다 기량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죠. 제가 군대를 다녀온 시기를 빼면 19년 정도 프로 생활을 했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뛸 수 있었던 건 인내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또, 인성적인 부분도 들고 싶네요. 감사하게도 저를 좋게 봐주신 분이 계셔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어요. 그런 점에서 김성근 감독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수 권용관에게 김성근 감독은 어떤 분이었나요?

다들 알다시피 운동은 힘들어도 그만큼 잘 해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힘든 훈련을 하면서도 선수들이 믿고 인내할 수 있었어요. 운동장에선 정말 힘들었지만, 사석에선 할아버지같이 따뜻한 분이셨죠. 감독님이 아니라 야구 선배로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용돈도 주셨고요. 그래서 선수들이 잘 따랐어요.

오랜 선수 생활을 했지만, 방출도 많았어요. 그때마다 도전한다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김성근 감독님께서 항상 저를 잡아주셨어요. 제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죠. 저도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훈련했고요.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특히 선수 생활 막판에는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고민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이제는 체력이 달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스로 기량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면담 요청을 했죠.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가 괜히 고참이라고 엔트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되니까요. 그 자리는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1군에 한 번이라도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위해 주어져야 하니까요.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LG 트윈스가 의미 있는 팀이었을 것 같아요.

첫 팀이었기 때문에 애정이 많이 남았어요. 서울의 중심이자 최고의 인기 팀에서 뛸 수 있었다는 게 자랑이죠. 처음 주전으로 자리를 잡은 게 27살이었고, 트레이드될 때까지 주전 유격수였으니까요. 가장 인기 있는 팀에서 주전 유격수였다는 점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제가 부진할 때도 더 잘하게끔 응원해주신 팬분들이 있어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아버지이자 선배

아들이 지금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하고 있어요.

네. (권)준혁이가 지금은 휘문고등학교에서 뛰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제가 야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봐와서 그런지 저보다 야구를 더 잘 알아요. 야구 규칙도 그렇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많이 알고 있죠. 그런데 너무 어릴 때부터 많은 걸 아는 것도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천천히 배웠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2019년에는 준혁 군도 성남고에서 유격수로 뛰었어요.

부자가 같은 팀에서 뛴다는 게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어요. 항상 옆에서 지켜본다는 점이 부담되기도 하니까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지만 못했을 때도 보여줘야 하니까요. 아빠로서도 긴장하게 되고, 아이도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의식하기도 하고요.

아버지의 포지션에 아들도 뛰고 있으니 기분이 남다르겠어요.

저보다 더 뛰어났으면 좋겠어요. (웃음) 그래도 부족한 면이 보이죠. 올겨울에 잘 보완해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이루고자 하는 야구를 잘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기특할 것 같아요.

그럼요. 조금 자랑을 섞자면 야구선수 2세라는 점을 별로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아들은 저보다 피지컬도 좋고, 얘기해보면 야구에 대해서도 저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내년에 3학년이 되는데 부상 없이 잘 뛰었으면 좋겠어요.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로서 조언도 많이 해주나요?

아들이 저에게 많이 의지해요. 야구와 관련한 부분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자주 물어봐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감사하죠. 지금 시기에 많이 성장해서 좋은 선수가 됐으면 합니다. 한 발 앞장서서 하는 선수, 인성까지 갖춘 인정받는 선수로 컸으면 좋겠어요.

준혁 군같이 프로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건강이 가장 우선이라는 점. 건강해야 자신이 준비한 부분을 모두 발휘할 수 있어요. 좋은 결과물을 내려면 필수죠.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컨디션이 망가지기도 해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 자신감을 잃기도 하고요. 첫 번째도 건강, 두 번째도 건강입니다.

선수 생활이 길었던 만큼 등번호도 여러 개를 달았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번호는 무엇인가요?

10번이 좋았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한화 이글스에서 달았던 13번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더라고요. 제가 고른 건 아니었는데 좋았어요. 10번은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거든요. 물론 58번보단 10번이 좀 더 좋고요. (웃음) LG에서 10번은 훌륭한 선배들이 달았던 번호잖아요. 그래서 10번을 달고 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13번은 솔직히 그런 부담감이 없으니 편했어요.

그러고 보니 아들도 지난해 13번을 달았더라고요.

제가 13번으로 뛰었더니 아들도 달더라고요. 왜 13번을 달았냐고 물어봤더니 “아빠가 달아서”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래도 준혁이는 16번이 가장 잘 어울려요. 지금은 16번을 달고 있는데, 그 번호가 가장 좋아하는 번호인 것 같아요. 저는 13번.


#코치 권용관

코치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해요.

제가 가르친 선수 중에 유명한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관심 있는 코칭 분야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수비예요. 수비는 공을 쫓아가는 첫발이 중요해요. 그런데 그 중요성에 비해 아이들이 별로 신경 쓰진 않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어요. 개선된다면 편하게 수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센터가 번창했으면 좋겠어요. 윤호 형의 야구 왕국을 더욱 크게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죠.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더 좋은 센터가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공식 질문입니다. 권용관에게 야구란 무엇인가요?

인생이죠. 순탄할 때도 있었지만 좌절감도 줬고 쓰린 아픔도 있어요. 하지만 행복도 줬죠. 사회에 나온 지 4년 정도 됐어요. 그동안 크게 순탄하지도 않았지만 불행하지도 않았어요. 야구나 사회생활이나 결국 제 인생의 한 페이지니까요. 야구는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은퇴하고 처음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야구도 잘하지 못한 저에게 큰 사랑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후배들을 열심히 가르쳐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16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16호(1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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