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피플] 풍기 사무엘이 꾸는 코리안 드림, 바로 태극 마크

김태석 입력 2020. 12. 17. 10:50 수정 2020. 12. 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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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 피플] 풍기 사무엘이 꾸는 코리안 드림, 바로 태극 마크



(베스트 일레븐=포항)

◆‘피치 피플’
포항 스틸러스 DF
풍기 사무엘

“첫 훈련 때 김기동 감독님께서 슬쩍 제 옆에 오시더라고요. 그러시더니 ‘(사)무엘아, 너 꼭 성공해라’ 하시더군요. 정말 제게 딱 한 마디만 해주셨는데, 그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에서 스치더라고요.”

최근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신예 중 특히 주목받는 선수가 있다. 앙골라 출신으로 한국에 이민와 성장한 수비 유망주 풍기 사무엘이다. 아직은 프로 무대에서 보여준 게 없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매체들이 이 선수에 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한국에 이민을 온 외국인 가정 출신 선수라는 이력, 그리고 어찌 됐든 여느 한국 선수와는 다른 외견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래 한국 선수들과 다를 바 없는 정서와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런 캐릭터, 과거 K리그에서는 살필 수 없었다. <베스트 일레븐>이 사무엘을 찾았던 것도 솔직히 그런 연유였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직접 사무엘을 만나본 후, <베스트 일레븐>을 비롯한 외부의 모든 사람들이 사무엘에게 약간 마음의 빚을 져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선수에게 쏟아진 관심의 근거는 ‘다름’이었다. 그 다름은 필연적으로 ‘신기함’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대화를 나눠 본 사무엘은 그렇지 않았다. 진중한 자세로 인터뷰에 임한 그의 말 한 마디에서 다름을 기대하고 왔던 <베스트 일레븐>은 속으로 조금, 아니 꽤 미안한 마음을 품어야 했다. 풍기 사무엘, 그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포항 입단,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Q. 만나서 반갑다. 포항 입단 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소감은?
“한편으로는 부담도 있지만 감사하죠. 그 기대감을 꺾지 않기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포항이라는 큰 팀에 들어온 게 아직도 실감나지 않아요. 어려서부터 자주 챙겨보던 팀이 포항과 수원이었는데, 특히 포항은 최고의 선수들이 뛰었던 팀이었거든요. 지금도 그런 선수들이 이 팀에 있습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팀에서 절 좋게 봐주셨으니 정말 영광입니다.”

Q.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선수들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아예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케이스는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솔직히 저는, 신분상 외국인 선수면서도 외국인 선수가 아닌 케이스라고 봐요. 저도 그 점 때문에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귀화를 빨리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귀화 계획이 꽤 구체적이라고 들었는데) 그간 미성년자라 부모님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만 저도 가질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여쭤보았는데 한국에 귀화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시험에는 약간 자신 없어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한국어가 서툴다 보니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제가 포항에 들어온 후 귀화를 해야겠다고 다시 말씀드리니 아버지께선 여전히 찬성하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앙골라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여섯 살 때 한국으로 와선지 앙골라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어요. 저에겐 한국이 고향 같은 곳이죠. 여기서 크고 자랐으니까요. 앞으로도 이곳에서 살 거고요. 외국인 신분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Q. 귀화 절차가 언제 마무리되는지) 에이전트가 귀화 시험 접수는 이미 다 끝났다고 말하더라고요. 시험만 보면 된다고 들었어요. (Q. 외국인에게는 꽤 어렵다던데 자신 있나?) 당연히 자신이 있습니다.”

편견과 싸우며 성장한 풍기 사무엘

Q. 말을 꺼내기가 참 그렇지만, 그래도 묻겠다.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정말 한국인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른 피부색 때문에 어려서부터 참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렸을 때는 저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생각이 짧잖아요? 다르다는 생각에 절 피하고 손가락질하거나 욕하는 일도 많았죠. 그저 같이 축구를 즐기고 있을 뿐인데, 대회에 나가면 상대 팀 선수들에게서 ‘야, 쟤 봐라’라고 수근거리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정말 마음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제가 어찌할 도리는 없었어요. 그저 제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주는 사람들을 챙길 뿐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일을 많이 당해선지 철이 빨리 들었죠.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솔직히 아예 없진 않아요. 다만 그러려니 하면서 흘릴 뿐이죠.”

Q. 그래서 그 편견을 실력으로 극복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을 것 같다.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이야 별 상관이 없는데, 상대 선수들로부터는 종종 그런 일이 있었죠. 한번은 몸싸움에서 제게 진 상대팀 선수가 ‘아, 나 방금 흑인이랑 부딪쳤어’ 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심판에게 말하곤 했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요. 제게는 그런 상황도 극복해야 할 일이었어요.”

“지금이야 11대11로 싸우지만, 훗날 더 큰 무대에서 뛰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는 제 귀에 좋은 얘기도 들릴 수 있겠지만, 반대로 안 좋은 얘기도 들어올 수 있잖아요? 그 안 좋은 얘기들을 모두 마음에 두게 되면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건 들으면 빨리 흘려보내야죠.”


“김기동 감독님이 약간이라도 기대하시니까 그랬던 게 아닐까요?”

Q. 그래서 포항에 입단한 건 작은 성공처럼 비친다. 김기동 포항 감독이 따로 불러 얘길 하지 않았나?
“첫 훈련 때 김기동 감독님께서 슬쩍 제 옆에 오시더라고요. 그러시더니 ‘(사)무엘아, 너 꼭 성공해라’ 하시더군요. 정말 제게 딱 한 마디만 해주셨는데, 그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에서 스치더라고요. 이렇게 팀 내 좋은 경쟁 상대가 많은데,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건 약간이라도 제게 기대하는 게 있어서가 아닐까요? 저는 정말 이 팀에서 성공하고 싶어요. 멋지게 데뷔하고 싶습니다. 우리 팀 골대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하)창래 형을 볼 때마다 저 형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장난칠 때는 그냥 동네 형같은 느낌인데, 경기장에서는 완전히 달라져요. 제겐 너무도 큰 선수처럼 느껴졌습니다. 노력해서 그 형처럼 되고 싶어요. 한번은 창래 형이 ‘나 역시 이 자리에 오는 게 정말 힘들었다. 축구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담이 크겠지만 많이 발전할거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별 얘기가 아닐 수 있지만, 제겐 엄청 크게 와 닿는 조언이었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시니 감사했죠. (Q. 하창래 선수가 상무로 간다. 기회가 아닐까?) 하하. 어떻게 보면 제겐 기회죠. 그걸 잡는 건 제 몫이고요.”

Q. K리그는 굉장히 수준 높은 무대다. 수많은 신인 선수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알고 있어요. 부담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일단 이 팀에 왔잖아요? 그리고 그건 해야 할 일이고요. 할 수 있는데까지 할 생각입니다. 선배 선수들과 경쟁, 당연히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죠. 그렇다고 두렵다고 생각하면 나약한 모습이라고 봐요. 그래도 해야죠.”


“내 꿈은 태극마크”

Q. 아까 김기동 감독이 성공에 대해 얘기했다. 꿈이 무엇인가?
“누구나 다 알아봐주는 선수가 되는 겁니다. 나쁜 이미지말고 항상 좋은 이미지 말이죠. 특히 다른 선수들에게 인정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의 꿈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Q. 당연하겠지만 국가대표도 해보고 싶을 것 같은데) 물론이죠. 태극 마크 꼭 달아보고 싶습니다.”

Q. 유럽 사례를 보면 성장한 나라가 아닌 모국(母國)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가 된 선수들이 많다. 좋은 선수가 됐다는 소문이 앙골라에도 전해지면 요청이 오지 않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야겠지만, 일단 저는 한국 국가대표로 뛰고 싶어요. (Q. 이유는?) 앙골라는 제가 태어난 곳이지만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저는 한국에서 크고 자랐어요. 그러니 여기가 제 고향이죠. 그게 이유에요.”

Q. 마지막 질문이다. 이제부터는 풍기 사무엘이라는 선수를 증명해야 할 시간이 점차 다가올 것이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선수가 되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기회를 잡기 위해 죽어라 노력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는 선수, 그래서 계속 선택받는 선수가 되도록 할 겁니다. 이제 동계 훈련이 시작됐어요. 프로의식을 가지고 항상 주목받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포항 스틸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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