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터 A는 '도대체' 왜 공격수 B보다 C를 선호할까? [발리볼 비키니]

황규인기자 2020. 12. 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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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선수가 팬들 사랑을 먹고 자란다면 배구 기자는 독자들 비난을 먹고 자랍니다. 기자 가운데는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게 섹시하다’고 믿는 부류가 적지 않고 저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직업적으로’ 특정 팀이나 선수를 ‘씹어야 할’ 때가 많고, 그 팀이나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로부터 한층 더 씹힐 때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세터 A는 왜 공격수 B보다 C를 선호할까? [발리볼 비키니]’(https://bit.ly/37dj8V0·ABC 칼럼)를 쓰고 난 뒤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격려 e메일이 도착해 기뻤습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비난 e메일이 날라왔지만요.

그 가운데 가장 욕설이 적은 e메일 하나를 골라 공개 답변을 해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욕설 수위와 표현은 다양했지만 그 기사에 대해 비판하는 논리는 크게 이 e메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ea*be*de* 님, 개인적으로 선생님 욕설이 정말 최고였습니다! 저희 어머니께 전해달라는 차마 말씀 못 전해드린 건 죄송합니다.)

● 공격 효율은 별 의미 없는 기록이다?

“첫 번째 공격 효율을 언급하셨는데 두 선수의 공격 효율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장도 파워도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네, 그러니까 좋은 세터라면 신장도 크고 파워도 더 좋은 선수에게 더 자주 세팅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표현은 ‘더 자주’입니다. ‘그럼 B 선수에게 몰방(沒放) 토스를 해야 한다는 말이냐?’고 물으신 분이 계신데 ABC 칼럼 어디에도 그렇게 주장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B 선수가 C 선수보다 더 뛰어난 공격수라면 B에게 공을 더 많이 띄워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또 비난 e메일을 보내주신 분 가운데는 ‘공격 효율’이 별 대수롭지 않은 기록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비록 배구를 30년 정도밖에 보지 못한 ‘배알못’이지만, 한국 미디어에서 처음으로 ‘공격 효율’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사람으로서 이런 인식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공격 성공 - 공격 범실 - 상대 블로킹에 차단) ÷ 총 공격 시도’로 계산하는 공격 효율은 배구 승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록입니다. 적어도 2019~2020 시즌까지 최근 5 시즌 동안 한국 프로배구에서는 남녀부 모두 확실히 그랬습니다.

이 기간 5세트를 제외하면 여자부는 총 1575세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1575세트를 대상으로 머신러닝 기법 가운데 하나인 ‘랜덤 포레스트’ 방식으로 어떤 기록이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어떤 머신러닝 모델 성능을 평가할 때는 ROC 곡선을 이용합니다. 이 랜덤 포레스트 모델 ROC(수신자 조작 특성) 곡선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 곡선 아래 면적이 1에 가까울수록 모델 성능이 뛰어나다고 평가합니다. 이 랜덤 포레스트 모델에서 곡선 아래 넓이를 계산하면 0.905가 나옵니다. 급하게 만든 모델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능입니다.

(혹시 같은 기간 남자부 기록 중요도가 궁금하신 분은 ‘삼성화재, 현대캐피탈은 언제 다시 강팀이 될 수 있을까?[발리볼 비키니] https://bit.ly/38blPWv’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팬심이 공격 효율이 뛰어난 선수보다 그렇지 않은 선수 쪽을 향하신다면 그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 사랑하든 그건 여러분 자유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공격 효율이 좋은 건 그냥 공격 효율이 좋은 것뿐’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 로테이션 때문에 공격 효율 차이 생기나?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선수가 로테이션상 만나는 선수들의 차이가 두 선수의 공격 효율이 차이가 나는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 팀 감독님은 최대한 B 선수를 편안한 환경에서 공격을 하게 만드시려고 로테이션상 상대 블로커에 낮은 블로커가 오도록 로테이션 설정을 하시고 계십니다. 반면에 지난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문제로 C 선수는 상대팀에서 신장이 큰 센터 블로커나 용병 선수와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 말씀 자체는 사실입니다. 두 선수가 전위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상대 전위 선수 세 명 평균 신장을 확인해 보면 B 선수는 182.8cm, C 선수는 183.5cm로 C 선수 쪽이 더 높았습니다.

그런데 상대 전위 선수 세 명 평균 키나 세 선수 가운데 최장신 선수 키를 ‘통제하고’ 공격 효율을 계산해 봐도 B 선수 쪽이 C 선수 쪽보다 공격 효율이 더 높습니다. 예컨대 상대 전위 선수 세 명 평균 신장이 181.6~183.3cm 사이일 때 두 선수 공격 기록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상대 전위 키 40~60% 구간입니다.)

다른 분께서는 “얼마 전 이정철 해설위원님께서 해설하실 때 C 선수는 상대편 최장신 공격수와 모든 세트 내내 세 번씩 맞붙게 되기 때문에 많이 힘들 거라고 하셨습니다”라고 e메일을 보내셨습니다.

그 경기에서는 그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B 선수가 전위에서 공격할 때 상대 최장신 선수가 전위에 자리하고 있던 비율은 43.4%, C 선수가 공격할 때 상대 최장신 선수가 전위가 자리할 비율은 43.3%로 사실상 똑같은 비율이었습니다. 대신 B 선수가 공격할 때 상대 최장신 선수 키는 평균 189.4cm로 C 선수가 공격할 때 190.8cm보다 1.4cm 작았던 건 맞습니다.

그러나 키를 통제해도 B 선수가 C 선수보다 공격 효율이 더 높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로테이션상 만나는 선수들의 차이가 두 선수의 공격 효율이 차이가 나는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라는 말씀은 사실과 다를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B 선수 쪽 상대 블로커 높이가 더 낮다면 역시나 B 선수 쪽에 더 자주 공을 띄우는 게 세터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 승리와 우승이 최종 목표인 프로 선수라면…

“승리와 우승이 최종 목표인 프로 선수라면 그것도 프로배구단의 세터라면 에이스가 2명이고 외국인 선수가 있는데 당연히 호흡이 잘 맞고 자주 맞혀봤던 선수에게 세팅해 주는 게 공격 성공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지 않을까요?”

ABC 칼럼 요지가 바로 세터 A가 그렇게 판단하는 게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세터 A가 세팅했을 때 B 선수 공격 효율은 0.398, C 선수는 0.270입니다.

사람마다 ‘호흡이 잘 맞는다’는 말을 다른 의미로 쓸 수도 있겠지만 스포츠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선수 콤비 플레이가 잘 맞아 떨어져서 승리와 가까워지는 결과를 만들어 낼 때 ‘두 선수는 호흡이 잘 맞는다’고 표현하지 않나요?

세터 A가 마음 속으로 ‘나는 B 선수보다 C 선수와 호흡이 더 잘 맞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결과를 보면 아닙니다. B 선수와 호흡을 맞췄을 때 결과가 더 좋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준비가 다 안 되어 있을 때 공을 보내주는 듯 아직 잘 맞지 않는 상황”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승리와 우승이 최종 목표인 프로 선수라면 그것도 프로배구단의 세터라면, ‘혹시 내가 마음속으로 판단하고 있는 게 잘못되지 않았을까’하고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으냐는 게 ABC 칼럼 내용이었습니다.

● C를 못하는 선수라고 했다?

“상대팀 선수들이 B 선수보다 C 선수를 많이 상대해 본 경험과 A선수와 B 선수의 호흡이 맞지 않아 C 선수를 많이 활용한다는 걸 파고든 상대팀 전략의 성공이지, C 선수가 못해서 진 게 아닙니다. 못한 선수가 24점이나 하나요?”

일단 이번에도 ‘호흡이 맞지 않는다’는 표현을 제가 ABC 칼럼에서 사용한 것과 다른 의미로 쓰고 계십니다. 그리고 ABC 칼럼에 어디에도 C 선수가 못해서 이날 졌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저는 C 선수가 나쁜 공격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B가 더 좋은 공격수라고 했을 뿐입니다. 또 C 선수가 시도한 공격 가운데 60.3%를 상대 팀에서 건져 올렸는데도 계속 C 선수에게 공을 띄우는 게 옳은 일이었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날 상대 디그가 이렇게 많았는데도 C 선수가 24득점을 올릴 수 있던 건 그만큼 세트가 자주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어떤 과제를 10번 시도해 5번 성공한 사람(성공률 50%)과 35번 시도해 7번 성공한 사람(성공률 20%)이 있을 때 우리는 성공률 20%인 사람이 더 못했다고 하지 않나요? B 선수는 이날 36점을 올렸습니다.

● 플레이를 지적하면 그 선수를 싫어한다는 뜻인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떤 선수를 어떤 이유로 높게 평가하시든 그건 여러분 자유입니다. 다만 세상에는 ‘연모(戀慕)의 영역’뿐 아니라 ‘수치(數値)의 영역’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수치의 영역을 놓고 보면 ‘세터 A가 공격수 B에게 공을 더 자주 띄우는 게 맞지 않을까?’하고 의문을 품는 게 비합리적인 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렇게 생각했을 뿐 어떤 선수를 더 좋아하고 다른 선수는 싫어해서 이런 칼럼을 썼던 건 아닙니다.

그 옛날 SBS에서 방영한 연속극 ‘추적자 THE CHASER’에는 “정치란 건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상대가 듣고 싶을 말을 해주는 거지”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맞는 말입니다. ABC 칼럼에 불만이 많으셨던 분들께 제가 정치적이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그러나 상대가 듣기 불편한 이야기라도 해도 그 이야기가 사실에 가깝다면 늘 합리적인 의심을 품어야 하는 직업이 바로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심을 하는 대가로 ‘기레기’라고 씹혀야 한다면 기꺼이 씹히겠습니다. 그리고 물론 합리적인 비판이라면 역시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황규인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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