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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의 작전판] 손흥민 후계자의 조건은 슈팅이 아니다, 판단력이다

한준 기자 입력 2021. 01. 12. 19:03 수정 2021. 01. 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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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토트넘홋스퍼).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한국의 구단이나 에이전트들이 좋은 선수가 있다고 영상과 이력서를 많이 보내옵니다. 그런데 영상이 대부분 골을 넣고 어시스트를 하는 장면의 연속이죠. 유럽 1부 리그 구단의 감독이나 디렉터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다릅니다."


서유럽 1부리그 팀에서 일하고 있는 현지 지도자가 한국 축구의 새로운 손흥민을 찾기 위한 조건을 이야기했다.


"물론 손흥민은 빠르고 슈팅이 좋은 선수죠. 한국에는 슈팅이 좋고 빠른 유망주가 많고요.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유럽에서 손흥민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 화끈한 골, 대지를 가른 어시스트…하이라이트의 함정


하이라이트만 보면 누구나 '월드 클래스'처럼 보일 수 있다. 가끔 정확했던 슈팅, 운이 좋아서 이어진 돌파, 유독 컨디션이 좋았던 날의 킥을 모아두면 당장 유럽 빅 리그에 진출해도 성공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경기 전체를 살펴보면 이런 플레이를 펼치는 경우가 드물다. 월드컵 활약이 유럽 빅 리그 진출, 나아가 빅 리그 활약으로 연결되지 않는 시대가 된지 오래다.


이제 유럽 주요 구단의 스카우트는 단발성 토너먼트가 아니라 꾸준함을 평가할 수 있는 리그 경기를 통해 선수를 검증한다. 물론, 국제 대회는 우수한 선수들의 '쇼케이스'가 될 수 있지만, 계약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손흥민이 최근 보이고 있는 놀라운 활약을 통해 한국 선수 영입에 관심을 보이는 유럽 팀들이 늘어났다. 빅 리그로 직행할 만한 수준의 완성된 선수는 없다. 예산이 많지 않은 군소 리그 팀이 유망주 단계에 있는 선수를 저렴하게 영입, 빅 리그로 진출시켜 수익을 거두기 위한 관심이 대부분이다.


손흥민은 함부르크 시절에도 빨랐고, 양발 슈팅에 능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 손흥민이 '월클'된 마지막 퍼즐은 판단력


손흥민의 무기는 스피드와 양발 슈팅이지만, 손흥민을 월드 클래스 선수로 이끈 최근의 발전은 그의 축구 지능과 경기 중 의사 결정 능력의 발전에 기인한다.


슬라보미르 모라프스키 FC 아라우 전술 코치는 "손흥민과 케인이 보이는 놀라운 호흡은 서로가 경기 중에 가장 좋은 판단을 지속적으로 내리며 플레이하기 때문이다. 현재 손흥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 인지력을 보이고 있다. 스프린트 속도가 빠르지만 언제, 어디로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막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서두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유럽 프로 리그의 스포츠 디렉터와 지도자들에게 선수 영입을 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 중 스피드와 슈팅 능력은 기본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경기 중 상황 판단 능력,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을 때의 대처 능력이다.


유럽 1부 리그 현직 지도자는 "빠르고 슈팅이 좋은 한국의 어린 선수들의 골과 어시스트 장면만 이어지는 영상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막상 전체 경기에서 보이는 전술적인 판단, 실제로 데려와서 테스트했을 때 보이는 인지력이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손흥민은 어렸을 때도 빨랐고, 양발 슈팅 능력이 우수했다. 만 29세가 된 지금에 이르러 '월드클래스'라 불리기 시작한 이유는 함부르크, 바이엘04레버쿠젠, 토트넘을 거치며 많은 경험을 쌓았고, 우수한 지도자들에게서 전술적 배움을 얻어 경기 이해력과 판단력이 일취월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손흥민이 가진 타고난 스피드와 끝없는 연습 통해 얻은 양발 슈팅이라는 무기도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기 중 판단력을 키우지 못하면 공염불이다.


브렌트포드와 가진 카라바오컵 준결승전에서 손흥민이 넣은 골은 판단력이 빛난 대표적인 장면이다. 영국 '스카이스포츠' 펀딧으로 경기를 분석한 전 잉글랜드 대표 미드필더 제이미 레드냅은 "손흥민이 두 번의 터치로 수비를 따돌렸다. 두 번째 터치로 골키퍼를 주저 앉혔다"고 했다. 


전 잉글랜드 대표 공격수 대런 벤트는 "두 번 터치한 것이 중요했다. 첫 번째 터치에서 슈팅했다면 수비수가 바로 뒤에 있었던 균형이 흔들렸을 수 있다. 두 번째 터치를 통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슈팅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환상적인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스프린트를 시작한 시점의 판단을 포함해 어느 타이밍에 슈팅할 지를 판단하는 능력 모두 경기 이해력에 해당한다. 손흥민의 물리적 속도나 정확한 양발 슈팅 능력은 이 판단력으로 완성된다.


2019 FIFA U-20 월드컵 준우승 멤버들은 K리그1 무대에서도 아직 핵심 선수가 되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폴란드 U-20 월드컵 준우승의 유산은 어디에 있나?


한 국내 축구 지도자는 "지난 몇 년 간 탈압박과 드리블이 화두가 되면서 유소년 단계에서 개인 기술 연마에만 몰두해 기술 좋은 선수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모든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일단 돌파를 하려고만 한다. 공을 기가 막히게 다루는데 경기 운영 능력은 떨어지는 선수들이 많다"고 했다.


이러한 경향은 초등리그에서 압도적 돌파력을 보이며 FC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 입단한 백승호, 이승우, 장결희의 등장 이후 10년 간 두드러졌다. 유소년 레벨에서는 팀 전술보다 개인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지만, 개인 능력이 전술 이해력이 아닌 기술적 측면에 너무 치우쳤다는 지적이 따랐다.


세계 축구는 전술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리고 분석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기술적으로, 피지컬적으로 한국 선수들은 세계 수준에 근접하고 있지만 여전히 경기 중 판단 능력과 전술 이해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운 손흥민을 배출하기 위해 이제 한국 유소년 축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경기 중 선수가 주도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는 2019년 FIFA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이 대회를 통해 유럽 축구 무대 중심에 자리잡은 선수는 2021년을 맞이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 K리그1 상위권 팀의 주력 선수로 자리 잡은 선수조차 없다.


대회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은 만 11세에 스페인으로 건너가 발렌시아의 방식으로 성장한 선수다. 한국 축구가 '제2의 손흥민'을 찾기 위해선 유소년 선수 육성 커리큘럼의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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