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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혁 대표 "공허한 우승 선언·핑계 버렸다..당당하게 이유 있는 성장"

대전 | 이용균 기자 입력 2021. 01. 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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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혁 한화 이글스 대표가 밝히는 '야구 전문기업'의 꿈

[경향신문]

프로야구 한화 박찬혁 신임 대표이사가 지난 1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구단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박 대표가 구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스포츠마케팅 전문가 출신 첫 대표
‘나는 이글스다’ 슬로건의 주인공
프로야구는 ‘경험을 파는 종목’
구단 전체가 강해야 강팀으로 성장

프로야구 한화는 2020시즌이 끝난 뒤 ‘모든 것을 바꾸는’ 대대적 개혁에 들어갔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과 함께 외국인 코치를 대거 영입했다. 선수단에도 큰 폭의 변화가 있었다. 베테랑 선수 여럿이 팀을 떠났다. 시즌 중반 18연패를 포함해 최악의 시즌을 보낸 뒤였다. 95패는 이글스 창단 뒤 최다패 기록이다. 변화의 맨 위에는 박찬혁 신임 대표이사(49)가 있다.

박 대표는 “야구라는 종목도, 구단의 운영도 과정에서의 합리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정의 합리성이 없는 승리는 우연의 결과일 뿐 지속되지 않는다. 이글스의 역사가 이를 증명했다. 박 대표를 1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만났다.

- 그동안 KBO리그 구단 대표는 대개 홍보나 인사 전문가가 많았다. 스포츠마케팅 전문가의 야구단 대표 취임은 첫 사례다.

“과거에는 야구는 물론 다른 종목에서도 구단 대표이사 자리가 전문성이 필요한 곳인가 하는 시선들이 있었다. 스포츠마케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첫 세대라고 할 수 있으니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다.”

- 6년 전 구단 마케팅팀장일 때 ‘나는 이글스다’라는 슬로건이 인상 깊었다.

“한화그룹 본사 앞에 맥줏집이 있다. 야구중계를 틀었는데, 누군가 ‘요즘 누가 한화 경기 보나, LG 경기 틀어달라’고 했고, 주인이 실제 LG 경기로 바꿨다. 거기 다 한화 사람들인데, 한화 경기 보자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 다들 마음은 한화팬인데, 그걸 당당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필요했다.”

- 대표이사로 두 달을 보냈다.

“원래라면 중장기 어젠다를 설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텐데, 급하게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감독 선임이 가장 중요했고, 그 결정이 이글스라는 조직의 나아갈 방향과 사고방식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수베로 감독에 선수 정보 줬더니
편견 생긴다며 단점 데이터는 사양
과정의 합리성이란 가치 딱 맞아

- 수베로 감독은 의외였다. 변화의 힘을 위해서는 ‘빅네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명망 있는 외국인 감독도 인터뷰했다. 빅네임 감독은 브랜드와 퀄리티가 보장되는 측면이 있지만 다시 개인기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미 스타일이 정해져 있고, 선수들이 그 스타일에 맞추려는 편향이 생긴다. 선수 육성이 뭐냐에 대한 고민을 했다. 평가에 대한 편견이 없어야 하고, 기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내 경쟁 상대에 대해 알고, 플레이를 통해 배워야 한다. 수베로 감독은 그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라고 생각했다.”

- 수베로 감독의 장점은.

“수베로 감독에게 선수들 데이터를 가져갔더니 ‘단점 관련 데이터는 가져오지 말라. 나한테 편견 주면 되겠냐’고 하더라. 저 선수는 저게 약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벽이 된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데이터의 구체적 항목, 데이터를 활용한 훈련법과 이를 위한 장비 등을 구체적으로 짚어서 요청했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의 폭까지 설명했다. 과정의 합리성이라는 점에서 구단의 가치와 딱 맞았다.”

- 과정의 합리성이 바로 한국 야구에 가장 부족한 점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직관적 야구가 큰 흐름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눈에 보이는 변화를 추구했고 감독과 선수가 바뀌고 선언적 구호가 등장했다. 그런 시기가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구단 내 여러 전문 분야들이 회피에 익숙했다. 선수 성장이 잘 안됐다면 스카우트, 육성, 마이너, 1군 모든 곳에서 다 핑계를 댈 수 있었다.”

- 오래 묵은 문제다.

“감독이 강하고, 선수가 강하다고 강팀이 아니라 구단 전체가 강해야 강팀이 된다고 본다. 프런트가 각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구단의 의사 결정에서 과정의 합리성이 쌓이면 결과가 나올 거라 본다. 인게임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실효성 있게 쓰려 하고 있다.”

- 하지만 팬들은 승리에 목말라 있다.

“승리는 야구단의 핵심 상품이 맞다. 하지만 지금 공허하고 무리하게 우승을 선언하는 건 과거 직관적 야구의 반복일 뿐이다. 프로구단으로 죄송하지만 이번 시즌은 팬분들께 ‘이유 있는 성장’을 보여드리고 싶다.”

야구는 무엇을 파는 산업이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경험을 파는 종목”이라고 답했다. 인생의 경험이 늘 승리만을 좇지는 않는다. 이유 있는 성장, 즉 기회를 주니까, 경기 많이 뛰게 하니까 저절로 크더라는 게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했더니 이렇게 성장하더라는 과정의 합리성을 보여준다면, 팬들은 더 큰 만족감을 얻을지도 모른다. 선수의 성장, 코치진의 성장, 프런트의 성장이 이글스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게 박 대표의 믿음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사무실에서 정민철 단장을 만났다. 정 단장은 전날 직접 테스트한 모션 센서에 대해 설명하며 “이제 공의 궤적을 좇는 트래킹 데이터를 넘어 몸 부분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키네틱 데이터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1년 초 한화 이글스는 분명히 바뀌고 있다.

대전 |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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