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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스토리]이제 밝히는 에드먼턴의 비밀, 유격수는 왜 허경민이었을까?

나유리 입력 2021. 01. 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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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표팀 시절 허경민. AP연합뉴스
허경민. 스포츠조선DB

[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고민이 많이 됐죠. 근데 허경민한테 기회를 줘보고 싶더라고요."(이종운 감독) "사실 저도 궁금했어요. 친구들이 더 뛰어난데, 왜 내가 유격수로 나갈까."(허경민)

현재 KBO리그의 주축이 되어 뛰는 '90년생' 선수들. 그들의 시작은 2008년 에드먼턴이었다. 그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의 역사적인 우승 멤버가 지금 활발하게 활약 중인 선수들이다.

그 대회에는 4명의 유격수가 있었다. '고교 유격수 4대 천왕'이라 불리던 광주일고 허경민, 서울고 안치홍, 경북고 김상수, 경기고 오지환이 한꺼번에 대표팀에 뽑혔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한 '최대어' 충암고 이학주까지 포함해 '5대 천왕'이라고도 불렸다.

'4대 천왕'이 모두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포지션 불균형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제외하기 힘들 만큼 야구 재능이 빼어난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걸출한 유격수들이 모두 모인 대회에서 주전 유격수는 바로 허경민이었다. 안치홍이 3루수를 맡았고, 김상수가 2루수, 오지환이 1루수로 뛰었다. 외야수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주전 유격수는 허경민이었다.

반대 의견도 있었고,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이종운 전 SK 2군 감독은 "솔직히 객관적인 수비 실력으로는 그때 김상수를 주전 유격수로 써야 맞았을 것이다. 4명의 선수가 모두 좋은 선수들이었지만, 김상수의 수비가 가장 화려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이종운 감독의 선택은 허경민이었다. 이 감독은 "내가 보기에는 김상수가 수비를 가장 잘했지만, 허경민의 플레이는 안정되고 예쁜 야구였다. 무엇보다 허경민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풀이 죽어있을 것 같아 대표팀에서 한번 기를 살려주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이 컸다"고 이야기 했다.

그때 대표팀에서 김상수는 삼성 라이온즈, 오지환은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안치홍 역시 KIA 타이거즈의 2차 1순위 지명이 유력했다. 허경민 역시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있었지만, 지명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허경민을 유격수로 쓰자, 오지환과 김상수를 지명한 구단 관계자들의 항의 아닌 항의도 받았다. "우리 1차 지명 선수를 왜 주 포지션에서 안쓰냐"는 내용이었다. 청소년 대회라고 할 지라도, 많은 이목이 쏠린 국제 대회인만큼 포지션 경쟁은 자존심 싸움과도 같았다.

결과는 '윈-윈'이었다. 대표팀은 결승에서 최강팀 미국까지 꺾으며 우승 트로피를 한국에 가져왔고, '유격수 4대 천왕'은 대회에서 모두 맹활약을 펼쳤다. 유격수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 허경민은 대회 종료 후 두산 베어스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경남고 감독 시절 이종운 감독. 스포츠조선DB

사실 누구보다 그 이유가 궁금했던 사람은 당사자인 허경민이었다. 허경민은 "많이 궁금했었다. 늘 이야기하지만, 친구들이 나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이야 '4대'라고 말씀해주시지만, 냉정히 말하면 성적이나 잠재력을 봤을때 그 친구들이 나보다 위였다고 인정한다"면서 "그때도 이유를 몰라 궁금했었다. 사람들이 내게 '그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유격수로 뛰었냐'고 물어봤는데, 나 역시 이유를 몰랐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이종운 감독의 의중을 읽고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했다. 시간이 10여년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대회"라고 말했다.

이종운 감독은 "다른 선수들은 1차 지명을 받은 상황이었다. 오히려 허경민의 동기 부여와 간절함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른 선수들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본인의 역할을 잘해줬고, 결과적으로 대표팀이 잘 풀릴 수 있었던 계기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2군에 내려갔던 허경민은 SK와의 퓨처스 경기를 앞두고 이종운 감독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에드먼턴 이야기를 꺼내며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이종운 감독은 "경민이가 이렇게 잘 되고, 성공한 것을 보니 정말 뿌듯하다"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허경민도 "감독님을 보니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따뜻하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화답했다.

물론 허경민은 프로에서 유격수가 아닌 3루수로 성공했다. 지금은 아주 드물게 한번씩 유격수로 나가는 수준이다. 미련은 없을까. 허경민은 "유격수는 예전보다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진다. 유격수 출신이라 더 잘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을 느꼈었다. 이제는 3루가 내게 잘 맞는 옷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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