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조선일보

"선수로 20년, 코치로 10년.. 사랑받아 감사하죠"

이영빈 기자 입력 2021. 01. 16. 04:16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스포츠 라운지] 데뷔 30년 맞은 전주원 코치
"김연경처럼 농구엔 박지수 있어.. 스타 계속 키워야 인기 되찾죠"

지난 3일 우리은행 홈구장인 아산 이순신체육관 앞에 시합을 앞두고 ‘커피 트럭’이 도착했다. ‘올타임 레전드 천재여신 전주원, 데뷔 30주년 기념’이라 새겨진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여자 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의 전주원(49) 코치가 1991년 실업 무대에 데뷔할 때부터 그를 응원해 온 팬이 마련한 선물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올해 프로 30년이 됐다는 것도 그 커피 트럭을 보고 알았어요. 오늘 하루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거든요.”

전주원 코치는 최근 전화 통화에서 “어느 분야든 요직(要職)에서 30년간 근무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며 “다행히 선수로 오래 뛸 수 있었던 것, 코치로 바로 일할 수 있었던 것, 지금도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매년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30년간 한국여자농구 코트를 지켜온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는 “팬들이 체육관 앞으로 보내준 커피 트럭을 보고서야 프로 30년이 됐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전주원은 한국 여자농구의 ‘프랜차이즈 스타(구단 대표 간판 선수)’다. 고교 졸업을 앞둔 1991년 1월 5일 현대산업개발 유니폼을 입고 성인 무대를 밟은 뒤 2004년 출산을 위해 약 두 달 반 자리를 비운 것을 빼곤 코트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남녀 농구를 통틀어 30년간 코트를 지키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시피 하다.

선수로 20년, 코치로 10년을 보냈다. 1991년 현대산업개발에서 첫발을 뗐고, 프로화가 된 1998년(현대 하이페리온)과 팀이 해체된 2004년(신한은행이 인수) 등 팀 이름이 바뀔 동안에도 한 팀에 몸담았다. 선수로서 열 차례 어시스트 1위에 올랐다. 그의 등 번호 0번과 5번은 영구 결번이 됐다.

“성인 무대 첫 경기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열심히 뛰어다녔을 것 같은데... 마지막 경기(2011년 4월 1일 KDB생명과의 챔피언 결정전 3차전)도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어요. 시즌 후 은퇴하기로 결정했으니까요. 저는 시작과 끝이 전부 기억 안 날 정도로 오늘 하루에만 열중하는 ‘하루살이’인가봐요.”

3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여자농구의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신화’를 꼽았다. 당시 선수로 출전한 전 코치는 조별 예선에서 쿠바를 상대로 ‘트리플 더블’(3개 부문 두 자릿수)을 달성했다.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가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건 지금까지도 전주원이 유일하다.

“제 농구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은 코치 시절 우리은행으로 팀을 옮겼을 때였어요. 21년간 신한은행에 몸담으면서 똑같은 사람들과 일했더니 코치가 됐는데도 절 모두 ‘언니’라 불렀죠. ‘코치’로 팀을 이끌어보고 싶었어요.”

한때 농구는 남녀 모두 최고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경쟁 종목인 배구보다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는다. “연맹이나 각 팀이 고심하는 부분이죠. 모두 노력하고 있어요. 여자배구 김연경처럼 우리도 몇 십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박지수가 있잖아요? 박지수 같은 스타를 계속 만들어내야죠.”

전주원은 주위에서 ‘준비된 감독’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현재 공석(空席)인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물망에도 올랐다. 여자농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해 올림픽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감독’에 대해 말을 아꼈다.

“감독 할 때 되지 않았느냐는 말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전 하루하루 현재에 충실하고 있어요. 드릴 수 있는 지금 대답은 그것뿐입니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시각 인기영상

    Daum 스포츠 칼럼

    전체 보기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