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스포츠경향

차명석의 그날 '2001년 11월26일'에 대한 오해 [안승호의 PM 6:29]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입력 2021. 01. 26. 17:14 수정 2021. 01. 26. 17:29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스포츠경향]

차명석 LG 단장이 일기장 및 노트 첫 페이지에 적어놓은 구호와 일기 한 페이지.


하필 그날은 예비군 훈련날이었다. 사격장으로 향하기 전 전해들은 ‘해고 통보’. 늦가을 마른 하늘에서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정신 세계는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더구나 불과 두어 주 뒤로 결혼식 일정을 잡고 청첩장까지 돌리던 때였다. 설상가상, 무엇을 해야 할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2001년 11월26일. 차명석 LG 단장은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때 내게 총알 여섯 개가 있었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차 단장은 특유의 유머를 곁들인 어조로 그날 하루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렇게 조크와 웃음으로만 승화할 수 있는 날은 절대 아니었다.

김성근 감독이 대행 타이틀을 벗고 정식으로 LG 사령탑 첫 시즌을 준비하던 때였다. 당시 우완 베테랑 불펜요원이던 차 단장은 칼 같은 선수 정리를 예고한 김 감독의 움직임을 엿보고 일찌감치 2군 구리구장으로 출퇴근하며 생존을 위한 독한 러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투수 차명석 앞의 신호등은 빨간불이었다.

기자가 차 단장의 노트 첫 페이지를 우연히 본 건 그가 LG 코치로 있던 10년 전쯤이었다. ‘얼마나 감독이 원망스러웠을까’, 일종의 한 맺힘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하고 세월을 보내왔다.

지난 20일 인터뷰를 위해 LG 단장실을 찾았다가 또 우연히 차 단장의 노트 첫 페이지를 다시 봤다.

잊지 말자 그날을, 2001.11.26.

차 단장은 무언의 질문을 던진 기자의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여태껏 그 구호를 일기장과 각종 노트를 가리지 않고 첫 페이지에 큼지막하게 써놓는 이유를 차분히 얘기했다.

“사실, 그때는 정말 충격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그때 그렇게 되면서 정신을 차렸다. 지금까지 이렇게 온 것은 그 덕분이다. 고맙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

실제 차 단장은 선수 시절보다 은퇴 뒤 더욱 빛났다. 메이저리그 중계를 위해서 미국 야구 공부를 시작한 뒤 인문학과 경영서 등 여러 책을 읽으며 소양의 바닥을 다졌다. 어느 노트든 첫 페이지를 열 때마다 와신상담의 흔적을 발견하고 해설위원으로, 현장 지도자로 입지를 다지며 이제는 친정팀 단장으로 구단을 리드하고 있다.

2006년 LG 코치 시절의 차명석 단장. 김기남 기자


김성근 일본 소프트뱅크 1군 코치 고문은 지난겨울 귀국해 한 달여 국내에 머물렀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지인 몇 사람만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차 단장이었다. 차 단장은 자신의 차량으로 김 고문을 모시고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그 만남에서 또 다른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아울러 긴 시간 의견을 나누던 중 정확히 일치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는 “KBO리그의 구단별 다양성이 갈수록 사라지고 획일화돼 간다”는 것이었다. 이는 프로야구 시장의 확대와도 관련된 것으로, 차 단장이 최근 주목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 고문이 차 단장 노트 첫 페이지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차 단장과의 대화만큼은 기억 속에 넣고 일본으로 다시 떠났다. 아무튼 그날의 오해는 풀렸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 저작권자(c)스포츠경향.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 시각 인기영상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