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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부두의 5번째 이별..인천야구 상처 아물 신세계 열릴까

김양희 입력 2021. 01. 26. 18:36 수정 2021. 01. 2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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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야구 눈물의 40년]
프로 원년부터 꼬인 주인 찾기
삼미·청보·태평양 거쳐
현대서 첫 우승했지만
야반도주하듯 수원으로..
'왕조' 이뤘던 SK마저 떠나자
팬들 "추억마저 지워지는 듯"
삼미 슈퍼스타즈 프로야구 팀이 인천 상공회의소에서 창단식을 열어 창단 대표가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야구의 주인이 다시 바뀐다. 21년 만이다. 쌍방울 레이더스 인수 뒤 재창단했던 에스케이(SK) 와이번스는 신세계그룹에 매각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인천 연고로만 따지면 신세계그룹은 여섯번째 주인이 된다. 신세계그룹은 통합 마케팅을 내세우면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선결 과제는 쌓여 있다. 벌써 다섯번째 이별을 겪는 인천 야구 팬심을 보듬는 일도 그중 하나다. 인천 야구는 유독 상처의 역사를 깊고 짙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1981년 프로야구 출범위원회가 인천 연고 프로팀으로 맨 처음 접촉한 곳은 현대였다. 하지만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88올림픽 유치에 분주해서 프로야구단 창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출범위는 현대에 이어 한국화장품, 대한항공 등에 창단 의사를 물었으나 잇달아 거부당했다. 인천 야구 첫 주인장을 찾는 일부터 꼬였던 셈이다. 이후 삼미 슈퍼스타즈가 인천 야구 첫 주인이 됐다.

‘슈퍼스타즈’는 슈퍼맨에서 차용한 이름이었지만, 선수단 구성조차 어려웠다. 6개 구단 최약체로, 프로 원년 승률이 1할대(0.188)로 15승65패에 머물렀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리그 역대 최저 승률이다. 삼미는 1983년 재일교포 장명부의 30승(16패 6세이브)을 앞세워 전·후기리그 2위에 올랐으나 이후 추락을 거듭했다. 재정난 등이 겹치며 삼미는 야구단을 청보식품에 75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최다 연패(18연패) 기록을 작성한 1985년의 일이었다. 청보 핀토스의 성적도 형편없었다. 당시 만 34살이던 허구연 현 <문화방송> 해설위원이 지휘봉을 잡기도 했으나 꼴찌에서 허우적댔고 모기업(풍한방직)이 도산하면서 결국 1987년 10월 50억원에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에 팔렸다. 성적만큼이나 관중몰이에도 실패해 6시즌 동안 평균 관중이 4000명을 넘었던 때가 1983년뿐이었다.

인천 야구장에서 청보 핀토스가 창단하며 단기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태평양 돌핀스는 성적 면에서 들쑥날쑥했다. 인수 첫해에는 꼴찌였지만 당시 오비(OB) 베어스에서 물러난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으로 앉힌 뒤 1989년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며 인천 야구팀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총 관중은 처음으로 40만명을 넘어섰다(41만9498명). 하지만 이후 성적이 하락(5위)했고 김 감독 또한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태평양은 정명원, 최상덕 등 투수진을 앞세워 1994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비록 엘지(LG) 트윈스에 패했으나 인천 팀 최초로 밟은 한국시리즈 무대였다.

1994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태평양 돌핀스 김경기가 홈인하는 모습. 연합뉴스

1995년 7위로 추락한 뒤 태평양 돌핀스는 현대에 매각됐다. 매각 대금은 470억원. 인천 야구의 ‘유니콘’을 자처했던 현대는 공격적인 선수 영입으로 1998년 인천 야구팀 최초로 우승을 일궜다. 하지만 서울 입성의 꿈을 안고 있던 현대는 2000년 1월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한 에스케이에 인천을 내주고 야반도주하듯 임시 연고지인 수원으로 떠나버렸다.

1998년 엘지 트윈스를 꺾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이 우승 펼침막을 들고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때 인천 야구팬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인천 야구에 뿌리를 둔 현대를 계속 응원할지, 전주가 연고지였던 쌍방울을 전신으로 둔 에스케이를 응원할지 택해야만 했다. 이런 이유 탓인지 에스케이 야구단 창단 첫해(2000년) 총 관중 수는 8만4563명(평균 1281명)에 불과했다. 인천 연고 다섯번째 팀에 대한 피로도가 그만큼 컸다.

인천 야구의 ‘봄’은 2007년 김성근 감독 취임과 함께 도래했다. 에스케이는 김 감독의 지도력에 팀 조직력이 맞물리면서 2007년, 2008년, 2010년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공히 ‘왕조의 시대’를 열었다. 이와 발맞춰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야구계에 제시했다. 에스케이는 2007년 이후부터 경기당 평균 관중 1만명 이상을 끌어모았고 2010년에는 팀 사상 최초로 시즌 관중 100만명을 처음 넘어섰다.

김성근 감독이 2011시즌 도중 팀 수뇌부와 불화 끝에 자진 사퇴하고 한동안 중위권 전력을 유지하던 에스케이는 2018년 트레이 힐먼 감독과 가을야구 전설을 일궈냈다.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정규리그 승차 14.5경기의 차이를 극복하고 ‘업셋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2019시즌 마지막 날 두산에 1위를 내준 뒤 추락했고 2020시즌 최악의 성적표(9위)를 받아들었다. 염경엽 감독을 비롯해 손차훈 단장, 류준열 사장까지 줄줄이 옷을 벗었다. 에스케이는 민경삼 사장-류선규 단장 체제로 바뀐 뒤 김원형 신임 감독을 영입하며 새로운 출발을 꿈꿨으나 예기치 않게 구단이 매각되면서 야구단 역사 자체를 리셋하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에스케이(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먼 감독과 선수들이 ‘아이 러브 유’라는 의미가 담긴 수어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스케이는 창단 초기부터 인천 팬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인천 에스케이’를 강조했다. 응원단상에서 ‘최강 삼성’이나 ‘무적 엘지’ 등을 외치는 다른 야구단과 달리 지역 이름을 내내 앞세웠다. 이런 노력을 했던 에스케이가 모그룹 재정 상황과는 전혀 무관하게 야구단을 파는 터라 인천 팬들의 충격파는 상당하다.

인천 토박이 30대 야구팬인 최준식(31·프리랜서) 씨는 26일 <한겨레>에 “학창시절부터 20년 넘게 욕하면서도 사랑했던 팀이 한순간에 바뀐다고 하니 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면서 “크게 보면 재력 있고 스포츠 좋아하는 시이오(CEO)가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이 왠지 내 추억까지도 지워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신세계 야구단도 길어야 10년 갈 것 같다. 이번에 경험했다 치겠다”며 냉소적인 반응도 보였다. 또 다른 인천 야구팬인 조지혜(47·자영업) 씨는 “에스케이가 처음 왔을 때 ‘이젠 좀 오래가겠지’ 싶었는데 또 바뀌니까 정을 못 붙이겠다. 야구를 전처럼 좋아하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는 프로야구와 달리 인천 야구의 시계는 다시 ‘0’(제로)가 됐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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