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석의 축구 한잔] 약속은 정확히, 이제 팬들은 똑똑하다

김태석 입력 2021. 2. 23. 18:26 수정 2021. 2. 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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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의 축구 한잔] 약속은 정확히, 이제 팬들은 똑똑하다



(베스트 일레븐)

김태석의 축구 한잔

십수 년전만 하더라도 K리그는 선수의 유럽행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진땀을 빼야 했다. 이성적인 사고와 현실적인 논의에 관련한 이슈 때문이 아니다. 무작정 여론전으로 흐르는 경향이 심했고, 이 과정에서 구단은 선수를 괴롭히는 가혹한 가해자 포지션에서 일방적인 뭇매를 맞아야 했다.

곰곰 당시를 떠올리면, 여론 분위기가 아예 구단 편이 아니었다. 예를 들자. 선수가 유럽 클럽으로부터 입단 테스트 정도의 제안만 받아도 시끄러워졌다. 냉정히 프로 구단 처지에서는 이런 제안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소속 선수의 합격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데다 협상의 성사 여부도 불투명한 테스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구단 처지에서 선수는 자산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건 상식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는데, 그때는 그 상식이 작동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개 큰 무대에 도전해보겠다는 야망을 품은 선수를 구단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야박하게 발목이나 잡는다는 비난 여론이 조성되기 일쑤였다. 일종의 언더도그마 기제가 발동해 선수와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많은 정보가 팬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돌이켜 보면 그때 팬심은 약간 로망에 푹 빠져 있었다고 봐야할 성싶다. 한국 선수가 유럽에서 뛰는 사례가 굉장히 희박했던 그 시절, 국가의 명예를 걸고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라는 이들이 정말이지 많았다. 그리고 대다수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렸다. 아마 마치 만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풍경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더 그랬을 듯하다.

이 상황을 해결할 때 늘 나오던 표현이 ‘대승적 차원’이었다. 도대체 그 대승적 차원이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를 모르겠으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구단이 취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명목상의 이적료를 어느 정도 취할 수 있을 뿐, 원치 않게 에이스를 떠나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성적인 논의 없이 그저 선수만 웃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뜻이다.

장황하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이제 그런 풍토는 거의 사라졌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많아져서인지 이제는 선수의 유럽행 도전을 무작정 동경하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선수의 도전을 응원하지만, 계약상 할 건 하고 떠나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비단 이적 이슈뿐만 아니다. 이제 팬들은 선수가 구단과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그리고 선수와 구단이 성실하게 그 계약을 이행하고 있는지에도 면밀하게 집중한다. 예전처럼 여론전으로 흐를 경우 도리어 역풍을 얻어맞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 백승호와 수원 삼성간의 갈등을 바라보는 팬심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사건 내용은 여러 매체를 통해 대단히 많이 보도가 된 만큼 차치하겠다. 대신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아마 구단이 그저 선수를 괴롭히는 가혹한 가해자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과거였다면, 유럽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선수가 라이벌 팀을 통해 K리그로 가세하는 걸 보다 못해 어깃장 놓는 구단이 무조건 나쁘다는 여론으로 흘렀을 공산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 팬들은 선수와 구단이 맺은 합의, 계약을 중시하며 그걸 따르는 모습을 보길 원한다. 구단이든 선수든, 행여 자의적인 해석 혹은 여론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면 매섭게 질타한다. 심지어 K리그 복귀 시 계약 내용에 따라 서울의 문을 두드리며 의향을 물었던 기성용과 명확히 다른 케이스라는 것 역시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과거 맺은 약속이 있다면, 지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선수들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때 더욱 신중해야 하며, 한번 서명한 계약서 내용을 성실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일단 계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고 상황이 주어지면 그때 적당히 대처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간 이처럼 발목 잡히는 사태가 거듭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적당히 혹은 어물쩡, 임시변통적인 수습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지금의 팬심이다. 팬들은 이제 무작정 감정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는다. 팬들은 똑똑해졌다는 걸 알아야 한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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