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에서 승리요정으로.. "전광판 보니 작년과 다를게 없네요"
공·수 이끌며 싹쓸이 견인
2020시즌 KIA 타이거즈 팬들이 모이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선수 중 하나가 박찬호(26)였다. 물론 좋은 의미로 자주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KIA의 주전 유격수 박찬호는 지난 시즌 타율 0.223으로 규정 타석을 채운 53명의 선수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KIA 팬들은 정교한 타격을 추구하지 않고 크게 휘두르고 보는 박찬호의 홈런 스윙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작년 박찬호는 3개의 홈런, 16개의 2루타를 쳤다. 장타율은 0.275, 출루율은 0.276. OPS가 0.551로 이 역시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중 꼴찌였다. 오죽하면 일부 KIA 팬들은 올해 광주 동성고 3학년인 유격수 김도영을 기다리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그랬던 박찬호가 올 시즌 KIA의 ‘승리 요정’이 됐다. 박찬호는 6일 키움과의 3연전 첫 번째 경기에서 5타수 2안타를 쳐냈다. 3-4로 뒤지던 8회말엔 서건창의 깊숙한 타구를 잡아 멋지게 1루로 뿌리며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연장 11회초 1루 땅볼을 친 박찬호는 박병호가 공을 더듬는 사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허슬 플레이로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이어 키움 투수 김선기의 견제구가 빠지자 2루까지 내달렸고, 이창진의 적시타 때 홈을 밟으며 결승 득점을 기록했다. KIA가 5대4로 승리했다.
박찬호는 7일 키움전에서도 7-6으로 앞선 8회말 1사 1·2루 위기에서 이용규가 친 날카로운 타구를 몸을 날려 걷어낸 뒤 2루로 던져 아웃을 잡는 환상적인 수비를 선보였다. 그는 연장 12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안타를 치고 나간 뒤 김선빈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결승 득점을 올리며 팀의 8대7 승리를 이끌었다.
승리를 부르는 마스코트가 된 박찬호는 8일 키움과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도 빛났다. 6회말 박준태의 빗맞은 타구를 전력으로 달려 잡아낸 뒤 번개같은 송구로 아웃시켰다.
1-3으로 뒤진 8회말엔 2사 2·3루에서 2루 주자의 리드가 크자 포수 한승택에게 사인을 보냈다. 박찬호는 “(한)승택이 형의 어깨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봤다”고 했다. 한승택의 빠른 송구에 키움 2루 주자 김웅빈이 런다운에 걸렸고, 박찬호는 김웅빈을 잡으러 가다가 재치 있게 방향을 틀어 포수에게 공을 던졌다. 한승택이 3루 주자 박병호를 태그하며 KIA는 실점 없이 9회초로 넘어갔다.
그리고 KIA는 9회초 4점을 뽑아내며 ‘빅 이닝’을 만들었다. 최형우와 나지완, 류지혁이 연속 안타를 쳤지만 KIA는 점수를 뽑아내지 못했다. 류지혁의 안타 때 홈으로 쇄도하던 최형우가 아웃됐기 때문이었다.
이어 이창진의 적시타로 2-3으로 따라붙은 KIA는 다음 타자 한승택이 안타를 때렸지만 류지혁이 어설픈 주루 플레이로 아웃되며 또 득점에 실패했다. 5연속 안타에 1점. KIA 팬들로선 열불이 날 만 했다.
그 답답함을 없애준 선수가 박찬호였다. 2사 1·2루에서 2타점 2루타를 때려내며 순식간에 4-3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다음 타자 최원준이 안타를 치며 KIA는 5대3까지 달아났고, 9회말 이 점수를 잘 지키며 키움과의 3연전을 싹쓸이했다. 박찬호의 활약 속에 스윕의 감격을 누린 KIA는 3승1패로 두산·LG·SSG와 함께 공동 선두에 올랐다.
박찬호는 경기 후 MBC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올해 4경기를 치렀는데 수훈 인터뷰에 두 번 나섰다”며 자랑한 뒤 “9회초엔 내 뒤가 최원준이라 나랑 상대할 것이라 생각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에 과감히 배트를 돌렸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박재홍 해설위원이 “올해 왜 이렇게 잘하는 거예요?”라고 묻자 “저도 되게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전광판을 보면 작년과 별반 다를 게 없더라”며 웃었다.
박찬호의 올 시즌 타율은 0.235로 작년과 흡사하다. 하지만 클러치 순간에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KIA 3연승의 일등 공신이 됐다. 박재홍 해설위원은 “작년과 비교하면 박찬호는 공·수에서 확연히 달라졌다”고 칭찬했다.
박찬호는 “지금처럼 기분 좋게 매 경기 다치지 않고 열심히 즐겁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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