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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입양 보낸 어머니.. 만나면 안아드리고 싶어요"

이영빈 기자 입력 2021. 04. 13. 03:03 수정 2021. 04. 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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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첫 아시아계 심판 에번 스콧

미 프로농구(NBA) 75년 역사 중 아시아계 첫 공식 심판이 된 에번 스콧(29)의 공식 프로필에 적힌 출생지는 ‘Taejeon(대전)’이다. 그는 생후 4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간 입양아다. 지난해 1월 보스턴 셀틱스의 가드 켐바 워커에게 퇴장을 명령해 화제가 됐다. 리플레이 카메라에 워커가 ‘옐로(yellow·아시아인 비하 표현)’라고 말하는 듯한 입 모양이 포착됐다. 워커의 부적절한 언행도 논란이 됐지만, ‘수퍼 스타’에게 즉각 퇴장을 명령한 심판의 단호한 조치도 화제를 모았다. NBA 사무국 중개로 최근 화상 통화 앱 ‘줌’을 통해 나눈 이야기를 에번 스콧이 직접 말하는 식으로 풀었다.

지난 2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마이애미 히트와 뉴욕 닉스의 경기에서 심판인 에번 스콧이 파울 판정을 내리고 있다. 스콧은 주변에서‘한국인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 이름은 ‘이권’

제가 갖고 있는 출생증명서에는 이름이 ‘Kwon Lee’(이권)이라고 쓰여 있어요. 부모님은 제가 태어나기 전 이혼하셨던 것 같아요. 갓난아기 때 사진에 아버지가 없었어요. 제가 태어난 지 2개월 되던 때 어머니는 경제적 이유로 한국의 친구 집에 입양시켰답니다. 그리고 또 2개월 뒤 지금 미국 백인 부모님 댁으로 왔다고 하더군요. 대학생 때까지 동양인이 거의 없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살았습니다. 괴롭힘은 없었어요. 가끔 외로울 때면 한국 어디선가 계실 부모님한테 ‘왜 이렇게 살게 만드셨어요’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세상 모든 것에 이유가 있듯이, 제가 이렇게 온 것도 ‘하늘의 뜻이 있었다’고 되뇌일 뿐이죠.

NBA 심판이 되기 위해

원래 럭비 선수를 꿈꿨는데 실력이 부족했어요. 스포츠 관련 일을 알아보다 농구 심판이 눈에 띄었어요. NBA 심판이 되는 건 어렵습니다. NBA G리그(2부) 심판 시험에 합격해도 15년 뒤에야 NBA 코트를 밟는 사람도 있어요. 특히 저처럼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시아계는 더 그래요. 대학 농구에서 5년, G리그에서 3년을 보냈어요. 7시간 동안 차를 직접 몰고 심판을 본 뒤, 바로 2~3시간 더 운전한 적도 있었요. 잠이 부족한 통에도 비디오 분석은 잊지 않았어요. 그 열정을 인정받아 8년 만에 NBA 코트에 서게 된 것 같아요.

NBA 심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입니다. 자기 판단을 믿는 게 가장 중요해요. 르브론 제임스, 스테픈 커리 같은 ‘초인’들은 정말 엄청나게 빨라서 눈앞에서 쉭 사라질 정돕니다. 그런 월드 스타가 내 판정이 틀렸다고 하면 위축될 수도 있어요. ‘그게 왜 파울이냐’고 묻는 선수도 많죠. 그때 확실하게 설명 못 하고, 정확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면 경기를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체력도 필수입니다. NBA 일정은 빡빡하기로 악명이 높죠. 보통 3일에 한 경기, 플레이오프까지 합쳐 1년에 총 50경기 정도를 소화합니다. 한번 원정을 떠나면 거의 한 달간 집을 비워야 하죠. 경기가 끝나면 거의 ‘초죽음’이 되지만, 자기 관리를 위해 체육관을 다녀오고 비디오 분석까지 마쳐야 심판으로서의 기량을 유지할 수 있어요. 심판은 코트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쪽이 실책을 범했다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강인한 정신력도 필요합니다.

켐바 워커요?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코트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코트에 두고 오기. 저희의 불문율 같은 거죠. 워커는 그냥 이기고 싶었고, 그러다 불리한 콜을 받자 격해져서 부적절한 이야기를 했고, 저는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한 겁니다.

어머니 안아 드리고파

‘하프 코리안’ 친구들을 따라 가끔 버지니아에 있는 한국 교회를 갔었어요. 거기 분들이 저를 보더니 ‘한국 사람처럼 생겼네’라고 말하더라고요. 거기서 김치도 먹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그립다(miss)’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친구와 한번 꼭 가보기로 했어요.

한국의 친부모님을 만난다면 꼭 안아 드리고 싶어요. 갓 태어난 아들을 입양시키는 심정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세 살 아들을 키우고 있어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아내와는 헬스장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 기사를 어머니가 보신다면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지금도 잘 지내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만약 저를 보신다면 자랑스러워 하셨으면 좋겠네요. 저를 한국에서 알아봐주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선수도 아니고, 심판이잖아요. 그래도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해 매 게임 뛰고 있습니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게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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