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고개 숙인 추신수, '마흔' 이승엽 모습 오버랩

안희수 2021. 4. 17. 05: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추신수(왼쪽)의 세레모니가 이승엽의 그 모습과 오버랩된다. IS포토

추신수(39·SSG)가 KBO리그 데뷔 두 번째 홈런을 쏘아 올린 뒤에도 고개를 숙였다. '국민 타자' 이승엽(45·은퇴)이 아치를 그린 뒤 보여준 모습과 오버랩이 되는 장면이다.

추신수는 지난 16일 인천 KIA전 첫 번째 타석에서 KIA 선발 투수 임기영의 시속 138㎞ 몸쪽 포심 패스트볼을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선제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에서 들어온 낮은 코스 체인지업을 골라낸 뒤 상대 배터리의 직구 승부를 예측, 가벼운 스윙으로 시즌 2호 홈런을 만들어냈다.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수 있는 대형 타구. 추신수는 잠시 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지면에 뒀다. 더그아웃에 들어와서도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데뷔 첫 홈런을 때려낸 8일 한화전에서도 이런 차분한 홈런 세레머니를 볼 수 있었다. 추신수는 3회 말 두 번째 타석에서 한화 선발 투수 닉 킹험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친 뒤 고개를 푹 숙였다.

요란한 퍼포먼스는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1호포는 개막 14타석 만에 나온 첫 홈런이었다. 2호포도 이전 3경기 연속 무안타로 부진한 상태에서 나온 홈런. 소속팀 SSG가 이전 4경기에서 3패(1승)를 당하며 고전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과 팀 상황이 좋았더라도 추신수는 자신의 홈런을 차분하게 대했을 것이다. 추신수는 1호 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 위에서의 감정 표현을 지양한다'는 내용으로 자신의 무표정 세레머니의 배경을 전한 바 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귀감을 얻었다고 한다. 끝내기 안타(홈런)처럼 승부가 결정될 때나 웃겠다고.

홈런을 친 타자가 지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1루로 향하는 모습. 야구팬은 익숙하다. 이승엽이 그랬다. 가장 화제가 된 경기는 2015년 6월 23일 사직 롯데전이다. 이승엽은 당시 입단 2년 차였던 조현우를 상대로 장외 홈런(사직 구장 역대 7호)을 때려낸 뒤 마치 뜬공 아웃된 타자처럼 고개를 숙였다.

이승엽은 자서전 '나·36·이승엽'을 통해 "솔직히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숙이게 된 것 같다. 그날은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상대 팀 투수는 너무 젊었고, 내가 친 홈런은 너무 컸다"라고 전했다.

2015년은 이승엽이 우리 나이로 딱 마흔이 된 해. 조현우는 21살이었다. 까막득한 후배가 자신감을 잃을까봐 우려한 마음이 고개를 숙이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 이 경기 중계를 맡았던 송진우 전 해설위원도 투수를 향한 이승엽의 배려를 치켜세웠다.

이승엽의 홈런 세레머니는 항상 차분했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개장 첫 홈런(2016년 4월 2일 두산전)을 친 뒤에도 고개를 숙였다. 은퇴 경기(2017년 10월 3일 키움전)에서도 홈런 2개를 때려냈지만, 그저 타구만 바라봤다. 이승엽은 자신의 책을 통해 '세레머니는 필요하다. 다만 순간의 기분에 휩쓸리지 말고 경기의 전체 흐름을 보며 의미 있는 세레머니를 해야 한다'는 소신을 전한 바 있다.

미국 스포츠 방송 매체 ESPN은 지난해 KBO리그를 중계하며, 거침없고 화려한 한국 야구의 배트 플립을 조명했다. 미국 야구팬도 흥분했다. 이런 퍼포먼스는 결코 잘못된 게 아니다. KBO리그는 케케묵은 야구 불문율을 조금씩 거부하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무대다.

추신수와 이승엽의 세레머니도 다양성의 일부다. 두 선수가 고개를 숙인 이유도 배경 차이가 있다. 다만, 최고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은 타자들이 우리 나이로 마흔을 넘겨 보여준 이 모습은 특별해 보인다. 연륜과 여유가 전해진다. 이승엽이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은 이제 볼 수 없지만, 추신수는 더 많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