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투더스포츠] 허당 기린 한유미? 코트 찢었던 '한윰'의 족적

김태훈 2021. 5. 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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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 '노는언니' 활약으로 '허당 기린' 별명 붙어
김연경에 한 시대 앞서 출현한 국가대표 레프트
과거의 레전드 넘어 현재 즐기고 미래 지도자 준비하는 '배구인'
2006-07 V-리그 챔피언결정전 현대건설-흥국생명. ⓒ 한국배구연맹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베스트 드레서 상을 수상할 만큼 배구 선수로서의 기량은 물론 외모까지 톡톡 튀었던 한유미(39·KBS n sports 배구 해설위원)는 ‘골프 레전드’ 박세리 등과 E채널 예능 프로그램 <노는언니>에서 예능감을 폭발하며 인생의 챕터투를 열었다.


‘한윰’의 배구 전성기를 잘 알지 못하는 시청자들은 한유미를 ‘허당 기린’으로 여기지만, 한유미는 한국 여자배구가 자랑하는 레전드다. 지금은 레프트하면 김연경을 먼저 떠올리지만, 한 시대 앞서 출현한 레프트가 한유미다. 한국 여자배구 선수로서는 최초로 해외리그 진출까지 눈앞에 뒀던 굵직한 스타다.


예능 프로그램 '노는언니' 출연 중인 한유미.ⓒ E채널

지난 2017년 SNS를 통해 팬들에게 은퇴 인사만 남기고 떠나려했던 한유미를 위해 소속팀 현대건설은 2018-19시즌 첫 홈경기(수원체육관)에서 은퇴식을 마련했다. 레전드 한유미를 은퇴식 없이 떠나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경기 종료 뒤 열린 은퇴식에서 한유미 부모님과 동생 한송이(KGC인삼공사)가 코트에 나와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양효진 등 현대건설 후배들은 영상 편지로 마음을 전한 뒤 코트에 도열해 눈물로 한유미의 은퇴를 축하했다. 구단은 한유미에게 골드 코인을 선물했고, 한유미의 팬들은 메시지를 담은 사인볼을 전달했다. 관중석에서 팬들은 '수고했어, 한유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한유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한유미의 현역 시절 경기 장면이 흘러나왔다.


한유미는 ‘배구 명문’ 수원 한일전산여고 출신으로 1999년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고 실업리그에 뛰어들었다. 슈퍼리그 시절에는 구민정-강혜미-장소연과 현대건설의 5연패(2000년~)를 합작했다.


화려한 날만 있던 것은 아니다. 촉망받는 차세대 에이스로 꼽혔던 한유미는 2003년 여름 그랑프리 대회서 당한 왼쪽 무릎의 십자 인대 파열로 1년 가까이 재활에 매달렸다. 주전급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차세대 간판으로 불렸던 한유미의 이탈로 인해 여자 국가대표팀은 김연경이 등장해 자리를 잡기까지 2~3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한유미에게는 매우 큰 시련으로 기억되는 구간이다. 독일에서 수술을 받은 뒤 1년 동안 재활 치료에 전념한 한유미는 “매일 물이 차 주사기로 물을 뺐다. 약을 먹고 주사도 맞고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다. ‘배구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깊은 좌절에 빠져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강한 근육은 마음이다’라는 카피를 접한 한유미는 마음을 추스르며 만 36세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당시를 기억하는 배구 관계자들은 “오뚝이다” “기적의 한유미”라고 말한다.


아테네올림픽 때는 십자인대 여파, 베이징올림픽 때는 예선에서 다쳐 그토록 바랐던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 한유미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획득했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4강 신화를 합작했다.


코트에서 만큼은 결코 ‘허당 기린’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가치를 인정받았고,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왔다.


2006-07시즌 FA 자격을 취득한 한유미는 당시 최고인 1억2000만원을 받고 현대건설에 잔류했다. 이숙자-정대영이 FA 이적한 뒤 고군분투했다. 다시 FA 자격을 얻어 2010년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이탈리아 진출을 눈앞에 뒀지만, 연봉 등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끝내 접었다.


한국배구연맹 규정에 따라 무적 신분으로 1년을 쉰 한유미는 사인&트레이드로 KGC로 이적해 몬타뇨와 2011-12 통합우승 견인했다. 몬타뇨와 함께 트로피에 함께 입을 맞춘 장면은 팬들의 기억에도 생생하다. 첫 우승을 차지한 한유미는 ‘첫 은퇴’를 선언한 뒤 비치발리볼 선수로 잠시 활동했다.


2017-18 V-리그 플레이오프 현대건설-IBK기업은행. ⓒ 한국배구연맹

2014년에는 현대건설 사령탑이던 양철호 감독의 부름을 받아 현대건설로 돌아왔다. 은퇴한 선수를 불러들일 만큼 한유미의 가치는 여전했다. 그리고 현대건설의 2015-16시즌 우승에 기여했다.


커리어가 화려하고 경험이 풍부한 대선배지만 후배들에게 군림하지 않았고, 팀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았다. 훈련량도 후배들 못지않게 많았다. 복귀 후 베테랑의 노련미를 코트에서 확실하게 과시한 한유미는 은퇴를 예고했던 2017-18시즌 플레이오프에서도 살아있었다.


끝까지 녹슬지 않았던 한유미는 V-리그 통산 272경기 2587득점의 기록을 남기고 코트를 떠났다. 그래도 한유미는 “아쉽고 후회되는 경기가 더 많다. 매 순간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데...”라고 말한다.


2017-18 V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드레서로 선정된 한유미.ⓒ 뉴시스

선수 시절 혹독한 승부의 세계에 얽매여 힘든 시간을 보냈던 한유미는 “지금은 좀 바쁘고 정신없지만 나름 즐기면서 살고 있고, 그렇다고 믿으면서 살고 있다”고 근황을 말했다.


그렇다고 승부의 세계인 코트를 떠난 것은 아니다. 배구 코트를 찢었던 한유미는 결코 과거로만 기억될 배구 레전드가 아니다. 해설위원으로 여전히 코트에 있고, 지도자로서의 미래도 준비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이 빛나도 그녀가 코트에서 쌓아올린 위업들을 덮을 수 없다. 결코 가볍지 않은 레전드이기 때문이다.

데일리안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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