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도 파격시프트..KBO 기록실은 '비상 근무중'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2021. 5. 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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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베로 시프트' 등 파격 수비로 기록법도 진화
긴장도 최고는 한화, 시프트 대상 최다는 LG
기록위원회 "시대 흐름에 맞춰 눈 크게 뜨겠다"

[스포츠경향]

지난 29일 잠실 롯데-LG전에 앞서 KBO 기록위원회 최성용 팀장(뒷쪽)과 장준봉 위원의 경기 준비 모습. 안승호 기자


지난해 8월19일 미국 텍사스 알링턴의 글로브 라이프 필드. 샌디에이고-텍사스전 2회말 요상한 상황이 나왔다. 텍사스 왼손 강타자 조이 갈로의 타구가 우측 외야 라인 안쪽으로 높이 떠 담장 앞까지 날아갔다. 페어 지역에 절묘하게 떨어질 듯한 타구를, 담장을 향해 뛰던 한 야수가 등을 지고 잡아냈다.

‘슈퍼 캐치’를 해낸 야수 얼굴이 화면에 잡히는 순간, 여러 곳에서 비슷한 반응이 나올 만 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카메라에 얼굴 크게 잡힌 선수는 샌디에이고 3루수 매니 마차도였다. 마차도는 좌타자로 당겨치는 성향이 강한 갈로가 타석에 서자 1루수와 우익수 사이로 자리를 옮겼고, 우익수보다 한발 앞서 뜬공을 잡아낸 것이었다.

그런데 공식 기록지에는 3루수 뜬공을 의미하는 ‘F5’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록지 또는 문자중계만 본 팬이라면 해당 상황을 전혀 연상하기 어려웠다.

지난해 하반기 한국야구위원회(KBO) 기록위원들 사이에선 이 장면이 여러번 토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후로 내부 소통의 창구가 열린 끝에 이번 시즌 전 ‘외야 시프트’를 기록지에 담는 새로운 표기법을 고안했다.

■2021 ‘외야 시프트 표기법’ 탄생

지난달 29일 잠실구장. 롯데-LG전을 준비하는 KBO 기록위원회 최성용 팀장과 장준봉 위원으로부터 늘어나는 시프트에 따른 기록실의 표정 변화를 들었다.

기록위원회에서 시즌 전 외야 시프트 표기법을 만들어낸 것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부임한 한화를 비롯한 여러 구단이 시프트 강화책을 펼치고 있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마차도 플레이 영향도 있었고, 우리 구단들 동향도 있어 시즌을 앞두고 ‘올해는 외야수 시프트도 준비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실제로 시범경기부터 외야 시프트도 하는 팀이 보여 우리가 먼저 새 표기법을 준비하게 됐다”고 전했다.

KBO 기록위원회는 내야수의 외야 수비시 상황을 기록지에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표기법을 올해 고안했다.


외야시프트는, 내야수가 이동해 외야수처럼 수비한 장면을 의미한다. 샌디에이고 3루수 마차도가 우익수 방면에서 잡은 타구라면 3루수 뜬공을 뜻하는 F5를 쓰고, 그 위에 <R>를 붉은 색으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좌익수 방면이면 <L>, 중견수 방면이면 <C>를 넣는다. 또 좌중간은 <LC>, 우중간은 <RC>로 표기한다.<사진 참조>

내야 시프트의 표기법은 2018년 정리해 이미 보편화돼 있다. 일례로 유격수가 1·2루 사이에 있다가 2루 베이스를 직접 터치해 아웃카운트를 잡았을 때는 6B로 표기한 뒤 1·2루 사이를 의미하는 <ab>를 그 위에 써준다.

■기록실 긴장시키는 ‘한화 시프트’

개막 이후 한 달이 지나며 KBO 기록위원들은 매치별 시프트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최 팀장은 “롯데-LG전의 경우, 롯데는 LG 좌타자 김현수와 라모스가 나오면 유격수 마차도는 자리를 그대로 지키면서 3루수 한동희가 1루와 2루 사이로 이동시킨다”고 일례를 들었다.

그 가운데서도 기록실의 긴장도를 정점으로 올리는 팀은 올해 다채로운 시프트를 쓰고 있는 한화다. 최 팀장은 “한화는 압도적으로 시프트가 많을 뿐 아니라 볼카운트별로도 시프트가 다르다. 자칫 방심하면 새 위치별 야수를 놓칠 수 있어 더더욱 집중하게 된다”며 “시프트는 성공 장면만 기록지에 담는데, 어제(4월28일)는 전체 시프트 성공 8차례 중 3차례가 한화-KIA가 붙은 광주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반대로 수비 시프트 상황을 가장 자주 만나는 팀은 좌타자가 많은 LG와 두산이라고 한다. 최 팀장은 “작년에는 두산 타자들을 상대로 시프트가 가장 많았고, 올해는 LG가 그런 흐름”이라고 말했다.

■KBO 원조는 ‘유승안 시프트’

KBO리그 시프트의 원조로 통하는 장면은, 2004년 유승안 한화 감독이 만들었다.

2004년 6월25일 잠실 두산-한화전 8회말 역사적인 장면이 나왔고, 바로 그 현장에 최 팀장이 있었다. 당시 0-3으로 끌려가던 중 1사 만루 위기를 맞은 한화는 좌익수이던 이영우를 1루수로 돌리고, 1루수 김태균을 유격수 쪽으로 이동시켜 내야수만 5명을 뒀다. 내야 땅볼이 나오면 병살로 잡아내 추가실점을 막고 9회 반전 기회를 보려는 의도였다.

“6·25여서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이 난다”고 한 최 팀장은 “외야수는 둘만 남아 좌중간과 우중간을 지키는 것을 보고 ‘저러면 왼쪽 비워둔 데로 타구가 갈 것 같은데’ 하는 순간, 실제 타구가 좌익 선상 쪽에 가깝게 떨어졌다. 그 장면이 원조라면 원조였고, 그 뒤로 시프트 기록을 연구하게 됐다”라며 추억을 더듬었다.

KBO 기록위원들은 미국과 일본보다 야구 기록에 있어 앞서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실제 외야 시프트 표기법 등은 매우 창의적이다. 최 팀장은 “야구 기록도 시대 흐름에 맞춰가기 위해 안주하지 않으려 한다. 실제 경기 상황을 최대한 담아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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