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골프가 이렇게 멋진 거였어?' 제가 알리고 싶은 건 이거 하나예요"[구자철 회장 인터뷰①]

2021. 5. 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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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6개월 앞둔 구자철 KPGA 회장
'SNS 하는 회장님', '남자골프 1등 홍보맨'
취임첫해 코로나19 악재 속 4개 대회 신설
구광모 LG그룹 회장 가장 먼저 찾아 대회 신설
신예 스타·화제 쏟아지며 KPGA 흥행 가도
박찬호 출전에 들썩.."스타성·도전정신 감사"
"기업인의 눈으로 본 남자골프
..장사아이템으로 개발할 수 있겠다 싶어"
구자철 KPGA 회장 사진=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 인터벌 없는 스윙. 어드레스 잡으면 지체없이 샷을 던진다. 연습스윙도 거의 없다. 지인들은 그의 업무 방식이 골프 스타일과 똑같다고 한다. 목표를 정하면 오래 재지 않고 에둘러 가지 않는 직진 본능. 스스로도 “일단은 무조건 부딪히면서 알린다”고 한다. 그가 요즘 알리고 있는 건 남자 프로골프다. 대기업 오너 일가에 상장사 회장님이 홍보한다고 해봤자 얼마나 하겠나 싶었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진심’이다. 덕분에 한동안 외면받았던 남자 골프가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스타를 낳으며 모처럼 들썩이고 있다.

구자철(66)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은 명쾌했다. KPGA 회장을 맡은 이유는 “골프를 너무 좋아해서”, 해야할 일은 “한국 남자프로골프가 이토록 멋지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라고 한다.

지난해 1월 제18대 KPGA 수장에 올라 취임 1년 6개월을 앞둔 구 회장은 최근 경기도 성남시 KPGA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팬레터 보내는 여고생 팬 하나 없는 아이돌 가수. 그게 지금 남자 프로골프 선수의 모습”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기업인은 기업인이었다. 현실을 냉정히 판단하되 가능성 없는 곳에 허투루 몸을 던지진 않는다.

구 회장은 “남자골프, 재미있고 도전적이고 다이내믹하다. 분명히 장사 아이템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같다. 기업인의 감각으로 봐도 좋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첫 타깃은 구광모 회장, 제일 먼저 찾아갔다”=2019년 12월 KPGA 회장 후보로 단독 추대된 구 회장은 대의원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당선됐다. 9년 만의 기업인 출신 회장. 많은 기대가 쏠렸지만 취임 직후 코로나19 사태를 맞닥뜨렸다. 잇따라 대회가 취소되는 위기 속에 구 회장은 개인기로 정면돌파했다. 사재를 출연해 취소될 뻔한 대회를 개최했고 기업을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LG전자와 LF, 웹케시그룹 등 새 스폰서들을 영입, 4개 대회를 신설하는 데 성공했다. 그 가운데 구 회장이 가장 먼저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구광모 LG그룹 회장이었다.

“구광모 회장에게 제일 먼저 가서 말했죠. ‘본의 아니게 구씨 성을 달고 나와 내가 LG 출신이라는 걸 다 아는데, LG에서 대회 하나 못 열면 어느 회사에서 스폰서 해주겠나. 작은 거라도 좋으니 대회 하나만 해달라’고요. 그랬더니 허허 웃으면서 ‘그러셔야 되겠네요’ 하고는 권영수 부회장을 부르더라고요. 마침 또 권 부회장이 이태희 선수 장인이잖아요? 그렇게 잘 진행이 돼서 LG전자가 시즌 최종전을 신설하게 됐죠.”

구 회장은 대회 유치를 위해서라면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해야 한다”며 능성 구씨(綾城 具氏) 대종회부터 IPO를 준비하는 기업들까지 물색하며 새 스폰서 찾기에 분주하다. 이런 과정에서 간혹 서운할 법한 상황도 맞겠지만, 구 회장은 “발로 뛰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비서실 찾아가 면담 신청할 때 방문 목적을 꼭 물어보잖아요. 저는 바로 ‘남자프로골프를 도와달라고 청하러 간다’고 합니다. 오지말라고 하면 정말 하기 싫은 거고, 커피 한 잔 하실까요 하면 일단 얘기는 해 볼 수 있잖아요. 100군데 가서 한 곳이라도 한다고 하면 너무 좋지 않겠습니까.”

구자철 KPGA 회장 사진=이상섭 기자

“골프는 엔터테인먼트, 최고의 상품 만들겠다”=올시즌 초반 KPGA 코리안투어의 화제는 단연 ‘코리안특급’ 박찬호의 프로대회 출전이었다. 추천선수 자격으로 군산CC오픈에 나선 박찬호는 1·2라운드 합계 29오버파를 기록, 153명 중 꼴찌로 컷탈락했다.

“박찬호를 대회에 초청하겠다는 협회이사의 제안을 듣고 가장 먼저 물어본 건 자격이 되느냐였어요. 공인핸디캡 3이하라 된다길래 그렇다면 하자고 했죠. 찬반 의견이 있겠지만 우선 화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많은 이들은 ‘대체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가 왜 저렇게 프로골퍼가 되고 싶어 하며, 대관절 프로선수들은 얼마나 잘하길래 아마추어 최강이라는 박찬호가 꼴찌를 하는가’ 하는 호기심 속에 흥미롭게 경기를 지켜봤다. 자연히 대회는 메이저급 흥행이었다. 박찬호는 300야드를 훌쩍 넘는 시원한 장타에 버디퍼트를 넣고 펼치는 세리머니, “5회 투아웃 잡고 강판당한 느낌” 등 각종 어록으로 많은 볼거리를 줬다.

구 회장은 박찬호가 호되게 깨지길 바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 정말 프로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알게 되고 그게 선수들 퍼포먼스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으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에서다. 구 회장은 “박찬호가 도전정신과 스타성으로 남자골프를 많이 홍보해줘 정말 고맙다. 박찬호 초청은 참 잘했다 싶다”고 했다.

KPGA는 지난해 남자 선수들의 화끈한 공격 골프를 보여줄 수 있는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의 대회를 열어 재미를 봤다. 이글이나 버디를 할 경우 파나 보기보다 가중치를 더 주는 점수방식이다. 올해도 다양한 기획을 준비 중이다.

“전체 18홀 가운데 두 홀 정도는 코스 세팅을 전략적으로 만들고 싶어요. 파4홀 전장을 350m 전후로 해서 원온을 노릴 수 있게 만들 수도 있고요. 갤러리 입장이 가능해지면 PGA 투어 피닉스오픈처럼 갤러리 해방구를 만들려고 합니다. 한 홀에 스탠드를 설치해서 맥주에 치킨도 먹고 시끄럽게도 하고. 저는 골프를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여자골프가 대우를 받는 만큼 남자골프도 중계권 협상과 상품성 모든 면에서 그 수준으로 올려놔야죠. 차곡차곡 만들어갈 거에요.”

구자철 KPGA 회장 사진=이상섭 기자

“SNS를 하는 이유, 전국에 나같은 사람 또 있을 거란 기대”=구자철 회장은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4남2녀 중 막내아들이면서도 그룹 밖에서 독자적으로 사업을 키워온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 있을 당시 ‘나가서 본인 뜻을 펼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도와줄 테니 그렇게 하라’고 하자 형제들의 동의를 얻어 독립했다. 1993년 전선을 감는 목(木)드럼(나무통)을 만드는 세일산업을 창업한 뒤 건설, 자동차 부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큰 성공을 거뒀다. 세일산업을 통해 인수한 한성 지분을 2009년 LS그룹 계열 도시가스업체 예스코에 팔면서 드디어 본가에 합류하게 된다.

2013년부터 예스코를 이끌고 있는 구 회장은 협회에 힘 쏟느라 회사 경영은 괜찮으시냐 농을 섞어 묻자 “안그래도 오늘 이사회를 했는데 구본혁 대표가 잘 해줘서 다행히 큰탈없이 굴러가고 있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오늘도 회의는 20분 만에 끝내고 사외이사인 우태희 대한상의 부회장에게 ‘대한상의배 골프대회 하나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최태원 회장도 (대한상의에) 가셨으니 남자골프 쪽으로 분위기 좀 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구 회장은 “협회 일만 걱정하지 않고 내 골프도 많이 걱정한다. 예를 들어 플라잉 엘보는 어떻게 고칠까 같은 거”라면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는 온통 남자골프 얘기다. 선수들의 멋진 샷 영상을 올리고 ‘파격 제안, 대회 유치기업 소개인 인센티브 제시’ 첨부도 잊지 않는다. 그는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이유로 “자꾸 홍보하고 소통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투어의 간판 선수는 “대회 유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회장님이 노력 많이 하는 걸 선수들이 다 알고 있다. 덕분에 갈수록 남자골프가 북적이는 느낌이 들어 다들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대회마다 스토리가 있었고, 신예 스타들이 많이 나왔다. 참 고무적이다”며 “회장으로 지낸 1년5개월의 성적을 매기자면 수우미양가 중 ‘미’ 정도는 줄 수 있겠다”고 했다.

“아직까지 그렇게 잘 한 건 없으니까요. ‘노력은 가상했음’ 정도? 이제부터 성적으로 나와야죠. 제가 협회를 맡은 이유는, 멋있고 존경스러운 남자선수들이 이렇게 대접받는게 안타까워서에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좀더 계시지 않겠어요? 남자골프를 위해 대회를 후원하고 선뜻 골프장을 내어주겠다는 분. 그런 분들이 전국에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오늘도 열심히 찾아보고 있습니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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