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몰랐던 캐디, 사랑밖에 몰랐던 골퍼
“저에겐 가장 뛰어난 캐디죠. 아내가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멘털 코치 역할도 하니까요.” (허인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죠.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요.” (아내 캐디 육은채씨)
평소 톡톡 튀던 언행의 ‘4차원 부부’ 모습을 떠올리며 인터뷰 장소에 갔다가 이야기를 들을수록 못 말리는 ‘닭살 부부’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 6년 차인데 애틋한 표정으로 입만 열면 애정 고백을 주고받는다.
지난 주말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우승한 허인회(34)와 아내 캐디 육은채(33)씨를 최근 그의 용품 후원사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에서 만났다. 허인회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천부적인 골프 재능의 소유자이다. 이번 우승까지 한국에서 4승, 일본에서 1승을 올렸다. 클럽을 가파르게 추어올렸다가 내리치는 ‘8자 스윙’ 비슷한 엉성한 자세로도 똑바로 멀리 치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퍼팅은 거리에 관계없이 딱딱 끊어 치는데도 ‘감(感)’이 오는 날엔 당할 자가 없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연습하는 재능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훈련을 소홀히 해 ‘게으른 천재’라고 불리기도 한다.
결혼 2년 뒤인 2018년부터 허인회의 ‘전속 캐디’가 된 아내 육씨는 가수 지망생 출신으로 결혼 전까지는 골프의 골자도 모르던 문외한이었다. 2014년 연애 시절 “캐디가 참 재미있는 일”이라는 허인회의 꼬임에 넘어가 그때부터 가끔 백을 메기 시작했다.
캐디는 지리학자(코스 분석)이자 코미디언(분위기 띄우기)이자, 짐 싣는 노새(백 이동)이자 동시에 친구(영혼의 파트너)인 존재라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육씨는 골프를 배운 지 얼마 안 돼 90타와 100타 사이를 오간다는 ‘백순이’이다. 코스 공략에 대한 조언이나 클럽 선택, 퍼팅 그린을 읽는 캐디의 기본 업무는 열외라고 한다. 그럼 무엇을 하는 걸까?
허인회는 “전문 캐디 쓸 때도 클럽 선택과 그린 읽는 건 혼자 알아서 했다”며 “아내가 가끔 ‘스윙이 평소보다 빠른 것 같아’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라고 한마디 하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은 그 이상의 존재다. 허인회는 아내를 만나기 전 골프가 전혀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추어 시절 23승에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에서도 정상급 활약을 펼치면서도 골프는 1등만 살아남는 고독한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개성 강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인 그와 국내의 강압적인 훈련 분위기와 1등 지상주의는 잘 안 맞았던 것 같다.
자주 우울증에 가까운 외로움과 허무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머리 색깔을 이런 색, 저런 색으로 바꿔보고, 오토바이를 타거나 자동차 경주에 관심을 돌려 보았다. 그래도 좀처럼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지인들 모임에서 우연히 지금 아내를 만나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허인회는 “캐디를 맡기면 온종일 함께 붙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캐디를 부탁했다”며 “골프장이 괴롭게 벗어나고 싶은 곳에서 둘이 함께 있는 즐거운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육씨는 “처음엔 만난 지 얼마 안 돼 막무가내로 결혼하자고 해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생각했는데 알수록 당당하고 정이 깊은 사람이어서 정말 좋아하게 됐다”며 “남편의 효심과 누나에게 잘하는 건 정말 상상 초월이다”라고 했다.
앞서 열린 군산CC오픈에서 컷 탈락한 허인회는 더는 아내에게 백을 맡기지 않기로 했었다고 한다. 허인회는 “6년 동안 우승이 없으니 골프를 잘 모르는 아내가 캐디를 맡아서 그런다는 비난 화살이 돌아가는 것 같아 괴로웠다”고 했고, 육씨는 “결혼 전에는 잘 치던 사람인데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둘 다 눈물을 흘리며 결심을 바꿨다고 한다. 허인회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었던 건데 결국 성적에 연연해서 초심을 버리는 꼴이 아닌가 반성했다”고 했다. 이미 결혼은 했지만 우승컵을 앞에 놓고 프러포즈를 하겠다던 약속을 6년 만에 지킨 허인회가 인터뷰 말미에 옆에 있는 아내 육씨의 손을 지그시 잡으며 말했다.
“우승하면 캐디 은퇴식 열겠다고 했죠? 그러지 말고 우리 아이 갖기 전까지 좀 더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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