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S] '134km 직구' 류현진이 느린 건가, 노린 건가

김식 입력 2021. 5. 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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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클리블랜드 원정경기에서 역투하는 류현진. 이날 초속 11m 이상의 강풍이 불어 그의 유니폼은 내내 펄력였다. AFP=연합뉴스

시속 134㎞.

프로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 스피드로는 놀랄 만큼 '느린 직구'다. 메이저리그(MLB) 톱클래스 투수라면 더 그렇다. 류현진(33·토론토)은 지난 29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필드 원정경기에서 이 미스터리한 공을 던졌다.

이 공은 류현진이 3회 말 1사 1루에서 클리블랜드 5번 타자 에디 로사리오에게 던진 초구였다. 바깥쪽 보더라인을 날카롭게 파고들었으나, 패스트볼 스피드가 꽤 느렸다. 로사리오가 방망이를 돌렸으나 파울.

류현진은 두 번째 공도 비슷한 코스로 던졌다. 시속 133.5㎞ 컷 패스트볼. 거의 같은 코스와 구속이었지만, 구종이 달랐다. 초구가 잔상으로 남았을 타자는 이 공을 때려내기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파울. 볼카운트가 몰린 로사리오는 6구 접전 끝에 내야 땅볼로 물러났다.

이날 경기는 선수들에게 매우 힘든 경기였다. MLB 게임데이에 따르면 프로그레시브필드 외야에서 홈으로 초속 11.18m의 강풍이 불었다. 기온은 섭씨 10도였는데, 찬 바람이 불어 체감 온도가 영하에 가까웠다. 경기 후반에는 폭우까지 내려 7회 말 강우 콜드게임(토론토 11-2 승리)이 됐다.

류현진의 '느린 패스트볼'은 악천후를 뚫고 나왔다. 경기 후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쌀쌀해서, 구속이 다른 날보다 떨어졌다. 오늘 내 공이 밋밋하기도 했다"며 "야구를 하면서 이런 날씨에서 던진 적은 없었다. 시즌 초 (미국) 중부 지역에서 경기를 치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직구 구속이 평소보다 떨어져 변화구 구사율을 조금 높이긴 했는데, 특이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이날 류현진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138㎞였다. 시즌 평균(144㎞)보다 5.6㎞나 낮았다. 이 차이를 보면 매우 '특이한 수준'이다.

악천후에서 투수의 몸이 정상일 수 없다. 기온이 낮으면 몸이 충분히 풀리기 어렵다. 구속도 나오지 않고, 변화구도 무뎌진다. 이런 환경에서 투수들은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힘을 쓰기 마련이다. 류현진도 1회 말 투구 수 32개를 기록하면서 2점(3피안타 2볼넷)을 내줬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류현진은 위기 상황에서 힘을 뺐다. 애써 빠른 공을 던지려 하지 않았고, 느린 공을 정확하게 뿌리려 했다. 토론토 타선이 2회 초 2-2 동점을 만들고, 3회 초 6-2 역전에 성공하자 그는 힘을 더 뺐다. 직구에 비해 변화구 구속이 별로 떨어지지 않아서 류현진의 '느린 패스트볼'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평소보다 패스트볼 스피드가 5.6㎞나 떨어진 건 분명 이상 신호다. 보통의 투수라면 이 정도 구속 저하는 부진 또는 부상 때문이 아닐까 우려할 수준이다. 그러나 류현진은 오히려 이런 공 배합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MLB 공식 홈페이지는 "악천후는 류현진에게 대단한 도전이었다. 구속이 떨어졌고, 강한 바람 때문에 체인지업을 구사하기 어려웠다. 또 체력 소모가 컸을 것"이라며 "류현진은 영리함과 기교로 어려움을 헤쳐나갔다. 이게 바로 에이스의 역할"이라고 평가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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