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명예 가졌는데 수퍼스타 왜 우울한가

박소영 입력 2021. 6. 11. 00:04 수정 2021. 6. 11.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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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펠프스·팀 괴롭힌 우울증
알코올 중독, 극단 선택까지 생각
목표 달성에 따른 번아웃 증후군
성공할수록 정신적 고통 더 커
우울증을 앓고 있는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 [AFP=연합뉴스]

‘차세대 테니스 여제’ 오사카 나오미(24·일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스포츠 스타다. 최근 4년간 메이저 대회 우승만 네 차례다.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처음 여자 단식 세계 1위에 올랐다. 현재는 2위다. 수입도 어마어마하다. 최근 1년간 6000만 달러(약 670억원)을 벌어 여성 스포츠 스타 수입 1위다. 그야말로 ‘영앤리치(young and rich)’다.

명예와 돈도 모두 가진 오사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2018년 US오픈에서 메이저 첫승을 거둔 뒤 우울증 증세로 힘들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해서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등 대외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고 설명했다. 최근 그는 정신 건강을 위해 당분간 코트를 떠나기로 했다. 전성기인 그가 대회에 나가지 않으면 세계 랭킹도, 수입도 급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는 휴식을 선택했다. 정신적 고통이 물질적 보상에 따르는 기쁨을 넘어선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수영 황제 펠프스. [AFP=연합뉴스]

스포츠 선수의 목표는 대개 실력을 인정받고, 돈을 많이 벌어, 부러움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극소수만 오를 수 있는 정상에 도달하면 오히려 고통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6·미국)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메달(28개)을 땄다. 그런 그도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그는 2018년 한 정신건강 포럼에서 “선수 생활의 최정점에 섰던 2014년 자살을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메이저리그(MLB)에도 우울증을 호소하는 선수가 제법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야수 드루 로빈슨(29)은 우울증으로 지난해 자살을 시도했고 한쪽 눈을 잃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도 다르지 않다. 2017년 아론 레논(34·번리)은 정신불안 증세로 치료 받았다.

성공할수록 우울증 유병률이 높다. 프로 스포츠선수 심리 상담 전문가인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우울증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번아웃 증후군에 빠진 도미니크 팀. [AP=연합뉴스]

남자 테니스의 도미니크 팀(28·오스트리아·4위)은 지난해 US오픈 정상에 올랐다. 로저 페더러, 노박 조코비치, 라파엘 나달을 이을 샛별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무기력해지는 ‘번아웃 증후군’에 빠져 이번 프랑스오픈의 경우 1회전에서 탈락했다. 그는 “메이저 대회 우승 이후 공허했다. 승리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스웨덴 테니스의 ‘전설’ 마츠 빌란데르는 “선수가 승리하고 싶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이는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오사카처럼 우울증을 공개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유명 선수일수록 경쟁자 등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또는 강인한 이미지를 지켜내려고 우울한 기분이나 불안한 멘털을 감춘다. 펠프스는 “우울증을 공개하면서 올림픽 금메달 획득 때보다 더 큰 힘을 얻었다. 문제를 감추려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스포츠 선수 멘털 관리 방향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스포츠 심리 상담’이라고 하면 경기를 앞두고 불안감을 다스리는 법, 경기력 향상을 위한 마음가짐 등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정신건강을 근본적으로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덕현 교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스포츠 선수의 우울증 문제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한 불안증세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선수 자신이 직관적으로 안다. 잠을 못자고, 식욕은 사라지고, 경기력이 떨어진다. 그럴 때 주저없이 전문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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