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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曰] 응원합니다, 오사카 선수

장혜수 입력 2021. 06. 12. 00:28 수정 2021. 06. 12.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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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처럼 선수를 향해 날아든 독설
쓰러진 사람 발로 걷어찼던 것 미안
장혜수 중앙일보 스포츠팀장
2019년 5월,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가 출연한 나이키 TV 광고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을 받아치는 오사카를 향해 영어 질문이 쏟아진다. “자신을 일본인과 미국인 중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가?”, “최대 라이벌이 누군가?” 일본어 질문이 그 뒤를 잇는다. “일본말로 대답할 수 있나요?”, “오늘도 돈가스를 먹을 건가요?” 멈춰선 오사카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조용히 시킨다. 캐치프레이즈가 뜬다. ‘너를 바꾸지 말고, 세상을 바꿔라’.

차별 반대 광고인데 오히려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인을 비하하는 서양인 시각이 담겼다는 거였다. 일본 내에서 불매운동도 벌어졌다. 하지만 광고 속 질문은 오사카가 실제로 받은 것들이다. 아이티인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오사카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살았다. 국적 선택 시점에 미국이나 아이티 대신 일본을 선택했다. ‘일본말로 대답하라’라거나 ‘돈가스를 먹는지’ 등은 취재를 빙자한 피아 구분이었다.

2018년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오사카는 미국의 세리나 윌리엄스와 격돌했다. 오사카가 세트스코어 1-0으로 앞선 2세트 중간, 윌리엄스는 화풀이로 라켓을 내동댕이쳤다가 경고를 받았다. 오사카가 우승하자 관중은 축하 대신 야유를 보냈다. 오사카는 “많은 분이 윌리엄스를 응원했는데, 이렇게 경기가 끝나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기자회견에서는 오사카를 향해 윌리엄스를 비난하도록 유도하는 질문이 쇄도했다.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오픈도 막바지다. 이번 대회 최고 화제 선수는 역시 오사카다. 그는 여자 단식 1회전에서 이긴 뒤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개막 전부터 회견 불참을 예고한 터였다. 소셜미디어에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힘든 시간을 견뎠다. (중략) 말 잘하는 선수가 아니기에 전 세계 미디어 앞에서 발언하기 전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다. (중략) 회견에 불참하고 스스로 다스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적었다. 우울증은 2018년 US오픈 때 시작됐다고 한다.

24살 오사카는 세상을 바꾸려고 무던히 애썼다. 미국 여자축구팀 노스캐롤라이나 커리지에 거액을 투자했다. "내게 투자했던 여성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내 삶이 어디 있을지 모른다. 젊은 여성선수들에게 영감을 주는 놀라운 여성들에 대한 투자”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US오픈 때는 매 경기 인종 차별 피해자 이름이 적힌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스포츠에 정치를 끌어들이지 마라”는 비난에 "그런 비난 때문에 더 이기고 싶다”고 맞섰다. 여성 비하 정치인을 비판했고, 코로나19 속 올림픽 강행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마침내 운동선수의 정신건강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8월 12일 남자체조 단체전에서 한국은 5위에 그쳤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인종합 은메달 양태영과 동메달 김대은이 있는 한국은 메달 후보였다. 경기 후 선수단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들을 기다린 취재진은 빈손으로 돌아설 판이었다. "운동을 못하면 말이라도 잘해야지.” 독설이 칼날처럼 선수단 등에 꽂혔다. 이주형 체조대표팀 감독이 뒤돌아섰다. "누구야. 방금 그 말한 거.” "나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외국은 그렇게 안 해.” 주위 만류로 멱살잡이로 번지지는 않았다.

오사카는 이번 프랑스오픈 직전 이렇게 말했다. "방금 패배한 선수가 질문에 답하기를 기대하는 건, 쓰러진 사람을 발로 차는 것과 같다”고. 13년 전, 방금 쓰러진 체조대표팀에 발길질 한 건, 부끄럽지만 나였다. 늦었지만, 반성하고 사과드린다. 이 전 감독님과 선수 여러분, 미안합니다. 일깨워줘 고맙습니다, 오사카 선수. 당신을 응원합니다.

장혜수 중앙일보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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