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배구가 넘어야할 신데렐라 세터 모미 [스토리 발리볼]

김종건 기자 입력 2021. 7. 2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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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1일 오후 7시40분에 시작하는 2020도쿄올림픽 여자배구 A조 한일전을 앞두고 이 선수의 이름을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그동안은 국적 때문에 일본의 각 연령별 대표팀에 단 한 번도 선발되지 않았지만 나카다 구미 감독이 2021VNL 때 일약 주전세터로 낙점했다.

감독은 "가장 단신인 우리가 큰 체구의 세계 여러 나라와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개인의 기술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팀의 단결력을 최대화시킬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모미는 이제부터 일본배구의 중요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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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미 아키. 사진제공|FIVB

오는 31일 오후 7시40분에 시작하는 2020도쿄올림픽 여자배구 A조 한일전을 앞두고 이 선수의 이름을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모미 아키(20). 일본대표팀 주전세터다. 나이가 암시하듯 한국여자배구는 국제대회에서 이 선수의 볼 배급과 앞으로 오래 전쟁을 치러야 한다.

2021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 한일전을 지켜본 팬이라면 그의 외모가 독특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모미는 스페인과 페루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지와 페루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난 어머니의 피를 골고루 물려받았다. 페루혈통 50%, 일본혈통 25%, 스페인혈통 25%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식 교육을 받았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페루 국적이었다.

나카다 구미 감독. 사진제공|FIVB

그동안은 국적 때문에 일본의 각 연령별 대표팀에 단 한 번도 선발되지 않았지만 나카다 구미 감독이 2021VNL 때 일약 주전세터로 낙점했다.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주변에서 부모를 설득해 2019년 12월 말 일본 국적으로 바꾼 지 1년 반 만이었다.

1984LA올림픽에서 일본에 동메달을 안겼던 나카다 감독은 현역시절 천재세터란 평을 들었다. 중3 때 국가대표로 발탁돼 88서울올림픽 등 3차례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의 주전 세터로 활약했다. 그와 현역시절 경쟁했던 국내의 많은 배구인도 인정하는 실력이다. 2016년부터 일본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나카다 감독은 많은 세터를 기용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 차는 선수가 없었다. 그러다 발탁한 선수가 모미다. JT소속으로 실업배구 입단 2년 만에 팀을 리그우승으로 이끈 경력도 감안했다.

모미의 발탁으로 물러난 선수가 있다. 지난해까지 대표팀의 주전 세터 사토 미야였다. 도쿄올림픽이 지난해 열렸더라면 주전세터 자리도 그의 몫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이 코로나19 탓에 연기됐다. 이후 사토는 부상을 당해 기량이 눈에 띄게 하락했다. 결국 사토는 5월 20일 현역은퇴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약 40일 뒤인 6월 30일 나카다 감독이 도쿄올림픽 최종엔트리 12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화제의 중심은 모미였다.

나카다 구미 감독. 사진제공|FIVB

감독은 “가장 단신인 우리가 큰 체구의 세계 여러 나라와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개인의 기술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팀의 단결력을 최대화시킬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모미는 이제부터 일본배구의 중요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카다 감독은 VNL 때 일본이 치른 17경기 가운데 15경기에 모미를 선발세터로 출전시켰다. 팀의 중심으로 고정시키는 과정이었다. “모미를 키워내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한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일본배구는 발전하지 못 한다”면서 경험치가 부족한 모미의 육성에 자신의 감독인생과 일본배구의 운명을 걸겠다는 자세였다.

모미 아키. 사진제공|FIVB

모미의 등장으로 일본여자배구는 이전보다 더 플레이가 빨라지고 공격적이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3명의 윙 공격수가 때리기 편하도록 연결하는 모미의 능력은 일본을 VNL 4강으로 이끌었다. 일본인 세터치고는 큰 176cm의 신장에 왼손잡이라는 이점도 있다. 국제대회에서 항상 세터의 작은 키와 블로킹 높이 탓에 고전했던 일본이다. 나카다 감독은 자신과 같은 키의 모미가 해결책이라고 봤다. “팀을 이기게 할 줄 아는 세터”라는 칭찬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갔다가 배구를 시작한 모미는 중학교 때 감독의 엄격한 지도방침에 반발해 배구를 포기했다. 2년간 수예반에서 클럽생활을 했지만 3학년 때 배구감독이 지도방침을 바꾸자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이후 타고난 기량을 인정받아 배구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1 때까지는 공격수였고 2학년 때부터 세터로 전향했다. 그로부터 4년 만에 그는 일본 여자대표팀의 운명을 걸머진 신데렐라가 됐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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