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고다이라의 평창 포옹..韓日 갈등 풀 실마리 [닛케이 논설위원]

2021. 7. 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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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인 대립 관계 끝내고
서로 배려하며 해결책 찾아야
文대통령의 방일 무산 아쉬워
새로운 관계위한 대화 지속을

◆ 2020 도쿄올림픽 ◆

2020 도쿄올림픽은 유례없는 코로나 상황으로 현지 취재에 제약이 따른다. 매일경제신문은 일본 제휴사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협력해 올림픽 기사·사진을 전하는 등 보다 밀도 있는 소식을 전달할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이번 올림픽의 의미와 한일 관계에 대한 기고를 보내왔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m 레이스 이후 서로 격려하고 있는 이상화(왼쪽)와 고다이라 나오. [매경 DB]
도쿄올림픽이 23일 개막한다. 코로나19로 역사상 처음으로 1년 연기된 데다, 대부분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이례적 대회가 된다. 일본 경제 고도성장에 탄력이 붙었던 1964년 도쿄올림픽과는 사뭇 달라졌지만, 일본이 올림픽과 스포츠의 미래에 무엇을 남기고 세계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있다.

서울지국장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취재하면서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광경이 있다. 2월 18일 열렸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가 그 장면이다. 선두를 달리던 고다이라 나오 선수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후, 관중석에서 열광하는 일본 응원단을 향해 입술에 손가락을 대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음에 나서는 선수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다음 조였던 이상화 선수가 경기에 임했을 때, 더 놀라운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림픽 2연패를 했던 한국의 스타가 평창에서도 최선을 다해 질주했지만 고다이라 선수에 0.39초 뒤져 모국에서 아깝게 3연패를 놓쳤다.

관중들이 '이상화'를 연호하는 가운데 태극기를 손에 쥔 채 흐느끼며 트랙을 돌던 이상화 선수를 일장기를 두른 고다이라 선수가 끌어안았다. 그리고 세 살 위인 고다이라 선수는 친구이자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이상화 선수의 귀에 "잘했어 상화, 리스펙트하고 있어요"라고 속삭였다. 올림픽 2연패 후 이상화 선수가 부상에 시달리며 고민해왔던 것을 고다이라 선수는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고다이라 선수의 귓속말에 이상화 선수는 "나오야말로 잘했어요"라며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시합에 졌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멋진 스포츠맨십에 나는 감동했다.

1965년 일한(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후에도 한일 외교는 '어느 쪽이 이기고 졌다'는 이분법으로 회자되기 십상이었다. 대화를 거듭하고 서로 양보하며 접점을 찾아낸 성과도 있었지만, 관계가 악화될 때는 모래성처럼 약했다.

양국의 정치를 취재해온 기자의 한 명으로서 최근 특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나 겸허함이 옅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은 상대국과의 조약·합의 같은 약속을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 약속이 가벼이 여겨졌다는 생각에 한국에 대해 실망감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다. 반면 한국인의 입장에선 한 세기 전의 아픈 역사가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이고 그 아픔은 국가 간 결정이나 합의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고다이라·이상화 선수의 행동은 개인이든 국가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한일의 격한 대립이 지금까지 우호관계를 구축해왔던 안보 현장이나 기업 간 유대감에까지 영향을 미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는 현상은 신속히 해소돼야 한다.

도쿄올림픽 개막을 나흘 앞둔 지난 19일 한일관계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이 무산된 것이다. 도쿄올림픽은 세계의 위기를 찬스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상업화로 비대해진 올림픽에서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고 선수의 관점이나 지속가능성을 감안한 '도쿄 모델'을 구축한다면 올림픽 개최의 의의는 작지 않다.

이번 문 대통령의 방일을 놓고 한일 양국 정부는 오랜만에 대화를 거듭했다. 이 대화를 향후 본격적 협상으로 이어가기 바란다. 다음 세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나쁜 유산을 남기지 않도록 새로운 한일 모델을 찾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미네기시 히로시 니혼게이자이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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