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힌 화살 또 맞힌다' 실력주의, 세계와 초격차 벌렸다

박린 입력 2021. 7. 26. 00:03 수정 2021. 7.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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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양궁 최강국' 유지 비결
나이·경력 안 따지는 공정 선발
무한 경쟁, 과학적 훈련법 개발
외국 벤치마크해도 한국 독보적
안산이 25일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단체 결승전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안산은 혼성과 여자 단체를 석권하면서 2관왕이 됐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 준결승. 안산(20)이 쏜 화살이 이미 과녁 10점에 꽂혀 있던 화살을 갈라버렸다. 과녁 정중앙 카메라 렌즈를 꿰뚫던 신궁 선배들 모습을 재현했다. 바로 한국 양궁 초격차(超格差·넘볼 수 없는 격의 차이)의 단적인 한 장면이었다. 다른 나라가 한국 양궁을 벤치마크하겠다며 한국인 지도자를 데려간 게 십수 년 전부터다. 훈련법과 전략이 노출돼도 한국 양궁은 수성을 넘어 격차를 더 벌렸다.

40년째 세계 정상을 지키는 한국 양궁의 핵심 키워드는 ‘원칙’과 ‘실력’이다. 코로나19로 도쿄 올림픽이 한 해 미뤄져 양궁 선발전은 올해 다시 열렸다. 동등하게 경쟁해 최고를 가리는 원칙은 허물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어깨를 다쳤던 김제덕(17)도 참가할 수 있었다. 혼성전 출전자도 23일 랭킹 라운드에서 잘 쏜 순서대로 선발했다. 나이·경험에 관계없이 공정한 판을 깔아주니 막내 김제덕과 안산은 첫 올림픽 출전에도 실력을 발휘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외치는 ‘공정’과 ‘실력주의’를 한국 양궁이 보여줬다.

2000년대생 김제덕과 안산은 ‘Z세대 궁사’(1995년 이후 출생자·Generation Z)다. 큰 무대에서 위축되지 않았다. 김제덕은 큰 목소리로 “대한민국 파이팅”을 연발했다. 불같은 패기에 TV 해설자도 “양궁에서 이런 선수를 본 적이 없다”며 놀랐다. 혼성전에서 첫 세트를 내주고도 뒤집은 안산은 얼음처럼 차갑다. 심박수 측정 때 가장 진폭이 적었다. 안산은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것 없다”고 늘 말한다. ‘한판 제대로 붙어보고 안 되면 또 도전하면 된다’는 그의 배포가 특유의 냉정함을 만들었다.

한국 양궁은 1972년 뮌헨 올림픽 이래 금메달 42개 중 25개를 휩쓸었다. 통산 2위 미국(8개)과도 ‘초격차’다. 최정상을 지키는 비결은 뭘까. 양궁 초격차의 원동력은 노하우의 축적이다. 이기는 법을 안다. 어떤 훈련이 필요하고, 어떤 멘털이 요구되는지 수십 년간 축적했다. 대한양궁협회와 코칭 스태프는 대회가 끝나면 수백 쪽의 보고서를 작성한다. 시스템 덕분에 사람이 바뀌어도 경쟁력을 유지한다. 엄청난 훈련량과 과학적 훈련법도 한국 양궁의 전통이다. 선수들은 선발전에서만 수천 발의 화살을 쏜다. 가장 뛰어난 선수들끼리 경쟁하다 보니 훈련 효과는 자연스럽게 커졌다.

양궁협회는 올림픽을 앞두고 1억5000만원을 들여 진천선수촌에 ‘도쿄 쌍둥이 세트’를 설치했다. 도쿄만 인근 유메노시마 양궁장과 비슷한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특별훈련도 했다. 훈련날 비가 쏟아져도 “궂은 환경에 적응할 기회”라며 반긴다. 협회장사인 현대차그룹과 협업해 인공지능(AI) 영상 분석을 활용했고, 선수 개개인에게 맞는 명상 훈련용 앱도 개발했다.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이념이 공정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까지도 양궁 국가대표 8명에게는 1차 선발전 자동출전권을 줬다. 지금은 그마저 없앴다. 세계 1위든, 메달리스트든 동일한 출발선에 선다. 선수가 2000명이 안 되지만, 이런 시스템 덕분에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대표선수 모두가 에이스다. 양궁협회 관계자는 “공정하게 선수를 뽑느라 선발전이 너무 길어졌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결국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훈련 효과도 컸다”고 말했다.

도쿄=박린 기자, 김효경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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