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올림픽 '6분의 트라이' 한국 럭비.."럭비의 기생충, BTS 됐으면"

도쿄|이용균 기자 2021. 7. 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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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는 재일조선인 3세들의 럭비 이야기다.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 학생들이 전국고교럭비선수권대회 4강에 오르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속 럭비는 소외와 억압에 저항하는 상징이다.

럭비 대표팀 정연식이 26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조별리그 A조 뉴질랜드와 첫 경기에서 트라이로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럭비 대표팀 역시 비인기를 넘어 소외의 종목이다. 상무 포함 실업팀은 겨우 4개 뿐이다. 2년 전 11월 럭비 강국 홍콩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사상 첫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따냈지만 관심은 멀다. 대표팀이 26일 도쿄스타디움에서 2020 도쿄올림픽 뉴질랜드와 치른 역사적 첫 경기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TV 중계는 모두 펜싱과 수영을 향했다.

대표팀은 극적인 ‘6분의 트라이’에 성공했다. 전통의 ‘올 블랙’ 뉴질랜드에 0-7로 뒤진 전반 6분, 박완용이 옆으로 빼준 패스를 받은 정연식이 오른쪽 라인 옆을 파고들어 한국 럭비 사상 첫 올림픽 트라이를 완성했다. 정연식은 “다이빙 트라이를 했는데, 이게 정말 트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얼떨떨했다”고 말했다. 정연식의 달리기는 전날 밤 축구 대표팀 이강인보다 더 빨랐다.

올림픽에 출전한 럭비 국가대표팀이 26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조별리그 A조 뉴질랜드와의 경기 전 입장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럭비의 토대는 척박하다. 실업, 대학, 중고등학교 팀을 다 합해야 60여개 남짓이다. ‘원 팀’으로 똘똘 뭉쳐 올림픽 출전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다. 첫 경기에서 세계랭킹 2위 뉴질랜드를 맞아 추격의 트라이를 성공시켰다. 전반을 5-14로 마친 뒤 후반 시작하자마자 다시 한 번 정연식이 오른쪽 라인을 따라 달렸고, 트라이 2m 앞에서 태클에 걸렸다. ‘원조 패션모델’ 김동수씨의 아들로도 유명한 귀화선수 안드레 진 코퀴야드는 “뉴질랜드가 솔직히 우리 조금 무시한 거 있었다. 우리가 걔네들 정신차리게 했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뉴질랜드가 샅바를 고쳐잡더니 맹렬하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득점 기회를 놓친 대표팀은 거꾸로 수비 라인이 흔들렸다. 올림픽 첫 경기 기록지는 5-50의 패배가 적혔지만 선수들의 가슴에는 조금 다른 게 남았다.

럭비 대표팀 주장 박완용이 26일 뉴질랜드전 패배 뒤 아쉬운 듯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도쿄 | 이용균 기자


대표팀을 이끌어 온 주장 박완용은 “준비 열심히 했고, 첫 트라이까지 나와 진짜 좋았는데 후반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아쉬움이 크다”면서도 “첫 득점 나왔고 몸 풀렸으니 점점 더 좋은 퍼포먼스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6분의 트라이’에 성공한 정연식은 “충분히 가능성 봤다. 다음 경기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거구의 안드레는 ‘투 머치 토커’가 됐다. “뉴질랜드 선수들 5년에 55번 대회 나가고 우리는 5년에 3번 대회 한다. 걔네는 합숙 9개월 하고, 우리는 겨우 3개월 했다”고 말하더니 대뜸 “매년 올림픽 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럭비 대표팀 안드레가 26일 뉴질랜드전을 마친 뒤 믹스드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 | 이용균 기자



6분의 트라이를 성공시킨 럭비 대표팀 정연식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 | 이용균 기자


안드레는 어머니의 나라 한국이 좋고 럭비가 좋아 2017년 특별 귀화를 통해 국가대표가 됐다. 럭비의 매력을 묻자 “온 몸으로 부딪히는 종목이고 우리는 브로다”라고 말한 뒤 “기생충과 BTS가 한국을 알린 것처럼 올림픽을 하니까 우리가 럭비의 매력 알려줄 수 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올림픽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 올림픽에 또 나갈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지만, 누구보다 끈끈한 럭비 대표팀 13명은 분명 하나다. 안드레는 “13명이 뛰는 거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작전 잘 짜서 진짜 잘 할 거다”라고 말했다. ‘6분의 트라이’가 ‘6번의 트라이’가 되고 ‘60만번의 트라이’가 되면 럭비를 향한 시선이 달라질까. 박완용과 안드레, 럭비 대표팀이 도쿄에서 꾸는 꿈이다.

도쿄|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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