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하루도 안 쉰 배드민턴 천재의 눈물..안세영 "이래도 안 됐으니 더 열심히 해야되는 거겠죠" [도쿄 인터뷰]

도쿄 | 김은진 기자 2021. 7. 3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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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안세영이 30일 2020 도쿄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8강전에서 진 뒤 아쉬움에 코트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치포인트를 내준 순간, 코트 위로 넘어진 안세영(19)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힘겹게 준비했던 지난 시간, 밤낮으로 셔틀콕을 올려주며 함께 훈련했던 ‘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겨우 일어났지만 결국 눈물이 쏟아졌다.

꿈 많은 사춘기 소녀의 가장 큰 꿈은 올림픽 메달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10대의 마지막에 무거운 태극마크를 달았기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흘렸던 땀을 다시 쏟아냈지만 가장 큰 산을 너무 일찍 마주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신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찍어봤으나 이번에도 나무는 넘어가지 않았다.

안세영(19)이 생애 첫 올림픽 도전을 8강에서 마무리했다.

안세영은 30일 일본 도쿄 무사시노포레스트플라자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8강전에서 세계랭킹 2위 천위페이(23·중국)에 0-2(18-21 19-21)로 졌다.

‘배드민턴 천재’로 불리며 중학교 3학년이던 2017년 12월 최연소로 성인대표팀에 선발된 이후 세계무대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드러낸 안세영은 이번 올림픽에 세계랭킹 8위로 참가했다. 정체기였던 한국 여자 단식의 기대주로 떠올랐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방수현 이후 처음으로 여자단식에 올림픽 메달을 안겨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8강에서 사실상 결승전을 치렀다. 이날 상대한 천위페이는 중국 배드민턴 여자단식 1인자로 세계랭킹 1위인 타이쯔잉(대만)과 함께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그동안 타이쯔잉,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카롤리나 마린(스페인), 2019년 세계선수권 챔피언 푸살라 신두(인도) 등 당대 최강자들을 어린 나이에 이미 모두 꺾어본 안세영이 4차례 만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상대이기도 하다.

“반드시 한 번 이기겠다”고 했던 천위페이를 상대로 안세영은 멋진 승부를 펼쳤다. 1게임에서는 6-6에서 6연속 득점해 12-6까지 달아났고, 2게임에서도 8-3까지 앞서며 최강 선수를 상대로 중반까지는 오히려 경기를 끌어갔다. 하지만 노련하게 조용히 한 점씩 따라붙는 천위페이에게 결국 마지막 힘에서 뒤져 접전의 승리를 내줬다.

안세영이 30일 2020 도쿄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8강전을 마친 뒤 눈물을 터뜨리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가 끝난 뒤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쏟은 안세영은 벌개진 눈으로 믹스드존에 나와서도 한동안 눈물을 훔쳤다.

안세영은 “새벽에도 야간에도 항상 같이 운동시켜주시느라 선생님(장영수 여자단식 코치)이 정말 많이 힘드셨는데 죄송해서 눈물이 나는 것 같다.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한가보다”며 “공격력이 약하다고 해서 공격 연습을 정말 많이 했는데 긴장도 많이 해서 그런지 제대로 안 나왔다. 집중력과 인내심에서 천위페이에게 이번에도 뒤진 것 같다”고 했다. “정말 많은 응원 받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배드민턴 하면 복식부터 떠올리니까 단식을 많이 알리고 싶었다”는 기특한 꿈도 털어놨다.

천재 안세영은 독종이기도 하다. 국가대표가 된 뒤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조별리그에서는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이날도 발목을 접질렸지만 치료받고 또 끝까지 뛰었다. “이보다 더 크게 다쳤어도 훈련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계속 뛰었을 것”이라고 한 독한 천재 안세영은 눈물을 닦은 뒤 바로 내일을 약속했다. 안세영은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될지 모른다는 얘기에도 올림픽은 분명 할 거라 믿고 정말 열심히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는 거면 아마 그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엄마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셨는데 아직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계속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2002년 2월생인 안세영은 선수촌에서 땀흘리는 사이 스무살, 성인이 됐다. 지난 3년간, 매년 365일을 오로지 올림픽만 바라보고 달렸던 배드민턴 천재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딱 한 순간도 사치였다.

올림픽이 끝났으니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안세영은 벌개진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혼자 있고 싶기도 한데, 스무살 되면 다들 하고 싶어하는 거 있잖아요. 술 딱 한 잔만 먹어보고 싶어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술이 어떤 맛인지 궁금한 나이, 스무살의 안세영은 한바탕 울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한다.

도쿄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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