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만 하다 "처음 日 이겼어요" 이다영 지운 염혜선의 눈물

김효경 2021. 8. 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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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염혜선 ‘비켜’ (도쿄=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31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염혜선이 리시브를 하기 위해 몸을 날리고 있다. 2021.8.1 m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뜨거운 경기만큼이나 뜨거운 눈물이었다. 여자 배구 대표팀 세터 염혜선(30·KGC인삼공사)이 한일전 승리에 감격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여자 배구 대표팀은 31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A조 조별리그 4차전에서 일본을 세트스코어 3-2로 물리쳤다. 3승1패를 기록한 한국은 남은 경기와 관계없이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토너먼트 진출권과 자존심이 걸린 대결. 두 팀은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5세트 12-14, 매치포인트에 몰린 한국은 연속 4득점을 올리면서 기적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경기 뒤 염혜선은 취재구역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자신이 주전으로 뛴 경기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이겼다는 감격 때문이었다. 염혜선은 "내가 제일 많이 울었다. 정서상 한일전은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까지 염혜선의 위치는 '백업'이었다. 2019년 부임한 라바리니 감독은 이다영(전 흥국생명)을 주전으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속팀이었던 현대건설에서도 이다영의 백업으로 있다가 세 번이나 팀을 옮긴 염혜선은 묵묵히 받아들였다.

31일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조별리그 일본전에서 토스를 올리는 염혜선. [사진 국제배구연맹]


하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염혜선을 확실한 '넘버투' 세터로 기용했다. 여러 명의 세터들이 대표팀을 거쳐갔지만, 이다영 다음으로 많은 경기를 뛴 선수가 염혜선이었다. 아시아선수권과 월드컵에선 이다영 못잖은 활약을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학교폭력 문제로 이다영이 대표팀에서 하차한 뒤에는 염혜선이 '넘버원' 세터로 올라섰다.
라바리니 감독은 세터에게 많은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이다. 염혜선은 "신세계"라고 했다. 올림픽 전 인터뷰에서 염혜선은 "플레이 하나마다 고칠 부분을 얘기해줬다. '1토스 1평가'였다. 솔직히 힘들었다. 하지만 재밌었다"고 했다.

올림픽 전초전 격이었던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실망스러웠다. 공격수들과 호흡이 맞지 않았고, 몸놀림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염혜선을 믿고 기용했다. 그동안 염혜선이 노력했던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시작된 뒤에도 염혜선의 경기력이 완벽하게 올라오진 않았다. 안정적인 토스를 올리다가도 갑작스럽게 흔들릴 때가 있었다. 염혜선은 한일전 후 "경기 후반에는 어이없는 범실을 하면서 무너지기도 했다. 나도 연경 언니에게 '똑바로 하라'고 한 소리 들었다"고 웃었다.

하지만 해야할 때는 했다.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선 서브 에이스 4개를 기록하며 상대 리시브를 무너트렸다. V리그에서 쓰던 공인구와 달리 탄력이 강한 공에 맞춘 강한 서브를 넣었고, 경기 분위기를 확 바꾸는 역할을 했다. 한일전 5세트 12-14에서도 김연경이 후위에 있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박정아에게 정확한 패스를 줘 연속 득점을 이끌었다.

염혜선에게 태극마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17살인 목포여상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됐던 그는 2008년 전체 1순위로 프로에 왔지만, 이후엔 좀처럼 대표팀에 가지 못했다. 2016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오래간만에 합류했지만 정작 본선에선 벤치만 지켰다. 도쿄올림픽이 어찌 보면 사실상 첫 대회나 다름 없었다.

10년 넘게 바라보만 보던 무대, 이제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1차 목표인 8강을 넘었기 때문이다. 염혜선은 "이제 목표는 메달이다. 연경 언니가 '후회 없이 하자'고 다독여준다. 나 역시 '이런 멤버와 또 언제 이렇게 큰 무대에 설까'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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