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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의 비극, 영광에서 좌절로 끝난 김학범호의 4년 대장정

이준목 입력 2021. 08. 01. 11:21 수정 2021. 08. 0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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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축구 8강전, 멕시코와의 경기서 3대 6 패배

[이준목 기자]

▲ [올림픽] 김학범 감독과 이강인 도쿄올림픽 축구 조별리그 온두라스전을 하루 앞둔 27일 요코하마 호도가야파크 연습장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김학범 감독이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왼쪽은 이강인.
ⓒ 연합뉴스
뜨겁고 화려했던 4년 여정의 마무리는 안타깝게도 해피엔딩이 아니라 비극이었다. 김학범호는 7월 31일 요코하마국제종합경기장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2020 도쿄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3대 6으로 대패하며 탈락했다.

올림픽 3회연속 8강진출에 성공한 김학범호는 내심 2012 런던 대회의 동메달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성적까지 기대했다. 조별리그에서 루마니아-온두라스-뉴질랜드를 상대하는 역대 최상의 대진운을 바탕으로 조 1위를 차지했고, 8강에서는 부담스러운 개최국 일본을 피하여 올림픽팀간 역대전적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멕시코를 만나게 되어 운까지 따라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김학범호는 북중미의 강자 멕시코를 상대로 역대 올림픽팀간 맞대결 사상 첫 패배(3승4무1패)-역대 올림픽 최다실점(6골)이라는 굴욕의 역사만 다시쓰며 초라한 민낯을 드러냈다. 김학범 감독과 올림픽대표팀이 함께했던 4년의 동행도 여기서 허무하게 마침표를 찍게 됐다.

김학범 감독은 지난 2018년 2월 28일 축구협회 감독선임위원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U-23 대표팀의 감독에 선임되었다. 전임 김봉길 감독이 2018 중국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4위에 그치며 경질되자 위기의 대표팀을 살릴 구원투수로 낙점됐다. K리그 성남, 강원, 광주 사령탑들을 두루 역임하며 검증받은 풍부한 경험에 국내 지도자중 손꼽히는 탁월한 전술적 역량을 높이 평가받았다.

물론 일각에서는 우려도 없지는 않았다. 커리어 대부분을 프로팀 지도자로 활약해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과는 큰 접점이 없었던 데다, U23 대표팀을 맡기 전 최근 몇 년간은 여러 팀을 전전하며 커리어도 신통치 않았다. 무엇보다 일부 대표팀 팬들을 중심으로 국내파 지도자들의 자질이나 역량을 맹목적으로 폄하하는 여론이 득세했던 것도 부담이었다.

김학범 감독은 성과로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였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U-23 대표팀은 그해 열린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만 해도 황의조의 와일드카드 발탁 자격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조별리그 말레이시아전 충격패 등으로 위기도 있었으나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모든 의혹을 불식시켰다.

황의조는 아시안게임 7경기에서 무려 9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으로 김학범 감독의 안목이 틀리지않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후 A대표팀 주전 공격수이자 유럽무대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했다. 손흥민-황희찬-이승우 등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많은 선수들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얻으며 경력 공백없이 선수생활을 이어갈수 있게된 것도 또다른 수확이었다.

이어 김학범 감독은 2020년 열린 AFC U-23 챔피언십에서는 새로운 팀을 꾸려서 6전 전승이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또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9회 연속 올림픽 본선진출이라는 대업을 일궈냈다. 김학범 감독의 주가는 절정에 달했고 올림픽 본선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과거의 눈부신 성공이 미래까지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요아힘 뢰브(독일)-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브라질)-비센테 델 보스케(스페인)-마르첼로 리피(이탈리아) 등 한때 월드컵 우승까지 차지했던 세계 최고의 명장들도 과거의 영광과 경험에 안주하다가 훗날 참혹한 결과를 맞게된 것은 축구계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그리고 김학범 감독 역시 자만과 독선이라는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김학범호를 둘러싼 위험신호는 이미 올림픽을 코앞에 둔 시점부터 조금씩 감지되고 있었다.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연기되었고 김학범호도 오랫동안 실전을 치르지 못하여 선수점검이나 조직력을 다지는 과정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했다. 물론 이런 사정은 타 국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김학범호로서는 한창 상승세를 이어가던 좋은 흐름이 끊기는 결과로 이어졌고, 지난 1년간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이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크게 성장하지도 못했다. 원두재, 이동준 등 기량이 크게 향상된 선수들의 경우, A대표팀에도 부름을 받기 시작하면서 선수차출 문제로 잡음이 일기도 했다.

김학범 감독에게도 책임이 있다. 김감독은 그동안 원 팀과 조직력을 강조해왔지만 올림픽이 점점 다가오면서 성적부담 때문인지 선수 선발 과정에서부터 잇단 무리수를 거듭하며 혼란을 자초했다. 상호 협의가 필요한 선수차출 문제에서 언론을 통하여 A대표팀과의 갈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언플'을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내부 경쟁을 이유로 올림픽 최종엔트리 확정을 지나치게 지연한 것도 선수들에게 과도한 체력적-정신적 스트레스만 주고 결속력 강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않았다는 평가다.

와일드카드를 둘러싼 논란도 치명타였다. 본인이 먼저 올림픽 차출을 공개적으로 원했던 손흥민이 힘겹게 소속팀의 동의를 얻어오자 정작 혹사 우려를 이유로 명단에서 제외하며 '말바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수비수 김민재는 소속팀의 동의도 얻지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차출을 강행했다가 끝내 합류가 무산되며 박지수를 대체발탁했지만. 결국 훈련과 실전에서 한번도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올림픽에 나서야했다. 황의조를 와일드카드로 발탁하면서 그를 대체하거나 보좌할 백업 공격수를 단 한명도 선발하지 않은 것도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았다.

올림픽은 아시아와는 전혀 다른 무대였다. 김학범호는 올림픽을 앞두고 이미 평가전에서부터 그리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불안감을 드리웠다. 우려한대로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뉴질랜드의 견고한 수비벽에 막혀 0-1로 덜미를 잡히면서 이미 비효율적인 선수구성과 플랜B의 부재라는 김학범호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물론 루마니아(4-0), 온두라스(6-0)을 대파하며 무난히 조 1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냉정히 말해 이 경기들은 상대가 예상보다 약했고 일찌감치 자책골과 PK, 퇴장 등으로 자멸한 경기들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역대 최상의 올림픽 조편성'이라는 분석 자체는 맞았지만 이것이 토너먼트 이후의 김학범호에게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조별리그에서 한 수라애의 약팀들만 상대하며 수비적으로 큰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김학범호에 대한 과대평가와 더불어 진짜 실력과 문제점을 가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멕시코는 올림픽에서 한국이 만난 가장 강한 상대였고 평가전에서 한국이 1-2로 패했던 프랑스를 조별리그에서 4-1로 대파했던 강팀이었다. 김학범 감독은 조별리그의 2연속 대승에 도취되어 공격력이 뛰어난 멕시코와도 맞불 전략을 놓았으나 이는 결정적 패착이 됐다. 멕시코도 공격에 비하여 수비가 뛰어난 팀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한국의 수비는 말 그대로 자동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데 있다. 한국은 멕시코 선수들의 스피드와 개인기에 농락당했고 중원과 측면 모두 탈탈 털렸다.

경기 기록을 보면 총 슈팅수는 15대14로 한국이 오히려 1개 더 많았고 유효슛은 양팀이 똑같은 10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멕시코는 10개의 유효슛으로 무려 6골(마르틴-코르도바 2골, 로모, 아기레 각 1골)을 기록한 반면, 한국은 그 절반인 3골(이동경 2골, 황의조)에 그쳤다. 멕시코가 한국에 비하여 훨씬 효율적인 경기를 펼쳤다는 증거다.

수비력은 그래도 주축 선수들이 3년 가까이 함께 호흡을 다져왔고 와일드카드 박지수까지 가세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 무기력했다. 원래부터 불안요소로 지적되었던 측면 수비는 재앙이었고 측면 공격수들도 공격에만 치우치느라 라인 유지와 수비가담이 제대로 되지않았다. 조별리그부터 잦은 실수로 불안감을 드러냈던 골키퍼 송범근의 집중력도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축구에서는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멘탈 유지다. 양팀이 1-1 동점 상황에서 1-3으로 벌어진 전반 30분과 39분(2~3번째 실점) 사이, 2-3까지 추격했다가 다시 2-5로 벌어진 후반 9분과 18분(4~5번째 실점) 사이, 한국이 불과 10분도 안되는 간격에 실점후 바로 연속골을 내주는 장면들이 전후반에 걸쳐 나왔다는데 주목할만하다.

이 과정에서 멕시코 선수들이 소수의 선수들로 빠르게 침투할 때마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 편하게 공간을 내주고 끝까지 슈팅을 저지하려는 악착같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경기에 익숙하지않은 우리 선수들이 점수차가 벌어지자 '패닉' 상태에 빠져서 집중력을 잃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축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이번 대회에 합류하지못한 손흥민이나 김민재, 강상우, 혹은 오세훈이나 조규성같은 선수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을 떨칠수 없다. 물론 결과 자체는 바뀌지않았을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참사까지는 피할수 있었을 것이다.

김학범호의 와일드카드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패로 끝났다. 박지수는 멕시코전 6실점만으로도 더 할말이 없고, 2선 공격수 권창훈도 이동경-이동준에 비하여 대회 내내 특출한 모습을 보여주지못하여 떨어진 경기감각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다.

황의조는 4골을 넣으며 표면적으로 역대 올림픽 한국 선수 최다골 신기록을 세웠지만, 이중 3골이 일방적으로 점수차가 벌어진 온두라스전에서 몰아친 득점이었고 그나마 2골은 PK였다. 나머지 1골은 이미 승부가 기운 멕시코 전 경기 막판에야 나왔다. 아시아무대와 달리 황의조는 대회 내내 최전방에서 자주 고립되는 모습을 드러냈고 이강인이나 이동준을 제로톱으로 기용하는 플랜B는 제대로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요코하마는 한국축구에 있어서 당분간 '수난의 땅'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지난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전에서 기록적인 0-3 참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바 있다. 그로부터 불과 4개월만에 이번엔 올림픽팀 동생들도 같은 장소에서 굴욕의 역사를 다시 썼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야구, 배구, 농구, 핸드볼 등 각종 구기종목중에서도 메달 획득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았던 축구였기에 팬들이 느끼는 실망감도 더 크다.

올림픽팀은 한국축구의 미래로 꼽힌다. 올림픽팀이 배출한 선수들중 상당수가 A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자리잡는게 일반적이다. 허정무-홍명보-신태용까지 올림픽팀을 이끌었던 감독들이 자연스럽게 A대표팀 사령탑까지 영전한 사례도 많았다. 그러나 멕시코전의 흑역사로 인하여 김학범호는 어느 때보다 쓸쓸하게 역사속으로 퇴장하게 했다. 누구보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가장 참혹했던 김학범호의 안타까운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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