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스코어냐"..은색 군번줄로 조롱당한 한국 축구

박린 입력 2021. 8. 1. 16:15 수정 2021. 8. 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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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6대3 한국의 패배로 끝났다. 4강 진출이 좌절된 한국 이동경과 황의조가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요코하마의 비극.’

일본 언론들은 한국 축구의 도쿄올림픽 8강 탈락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은 지난달 31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8강전에서 멕시코에 3-6 참패를 당했다. 종료 직전 황의조(보르도) 만회 골이 없었다면, 1996년 이란전 스코어(2-6)가 재현될 뻔했다. 축구 팬들은 ‘테니스 조코비치 스코어냐’ ‘축구 대신 김연경의 배구 한일전 TV 중계를 해야 했다’며 성토를 쏟아냈다.

축구대표팀은 6골을 내주고 짐을 쌌다. 이는 1964년(아랍연합공화국전 0-10패) 이후 올림픽 최다 실점이다. 김학범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온두라스와 3차전(6-0승)처럼 공격으로 맞불을 놨다. 높은 위치부터 프레싱에 들어간 게 패착이었다. 멕시코는 온두라스가 아니었다. 개인기가 뛰어난 멕시코는 한국 수비를 가지고 놀았다. 중앙 수비 박지수(김천)와 정태욱(대구)이 앞만 보고 덤비는 동안 뒷공간은 뻥뻥 뚫렸다.

이는 ‘김민재 집착’으로 인해 예견된 참사였다. 김학범 감독은 6월 30일 최종 명단 와일드카드(25세 이상)에 중앙 수비 김민재(25·베이징 궈안)를 넣었다. 그러나 소속팀이 차출을 반대했고, 보름 넘게 질질 끌다가 그의 합류가 끝내 불발됐다. 대체 선수 박지수는 일본 출국 전날 부랴부랴 합류했다. 박지수는 뉴질랜드와 조별리그 1차전 막판에 출전했다. ‘차라리 박지수를 일찌감치 뽑아 수비 조직력을 끌어올렸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올림픽축구대표팀 박지수(오른쪽)가 득점한 멕시코 마틴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김학범 감독은 지난달 13일 아르헨티나와 평가전 때 전력 노출을 최소화하겠다며 베스트 멤버를 가동하지 않았다. 소중한 평가전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을 이뤄낸 홍명보 감독은 6월 말 최종 명단을 확정한 뒤 조직력을 다졌다. 하지만 김학범호는 6월에 30명 이상을 소집해 1·2차 소집 훈련을 거쳐 18명을 추렸다. 축구계 관계자는 “긴 선발 과정이 선수들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본 숙소 엘리베이터에서 한국 선수들을 만났는데 깜짝 놀랐다. 혈기왕성한 20대들이 너무 조용하더라”며 팀 분위기를 전했다.

신태용 2016년 리우올림픽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실력에서 졌다. 멕시코의 기량이 워낙 좋았다. 선수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타이밍, 택배처럼 정확한 패스에 무너졌다”며 “다만 김민재는 수비가 불안한 상황에서 감독으로서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었을 거다. 결국 결과론”이라고 했다.

토트넘에서 올림픽 차출 허락을 받았던 손흥민을 뽑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온다. 다만 손흥민을 뽑았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조기 탈락했다면 더 큰 비난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한 네티즌은 ‘한국축구가 도쿄에서 은메달을 땄다’며 은색 군번줄 사진을 올렸다. 올림픽 동메달 이상에 주어지는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지나친 야유이지만, 한국축구의 씁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도쿄=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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