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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년전 실책 '고마워요 사토'.."막걸리 마시며 한일전 중계, 엉엉 울었다"

도쿄/양지혜 기자 입력 2021. 08. 05. 14:52 수정 2021. 08. 0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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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G.G사토가 2008 베이징 올림픽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전에서 8회말 뜬공을 놓친 실수를 재현했다. 야구공이 없어서 막걸리 병으로 대신했다. 유니폼은 당시 입었던 옷이다./도쿄=양지혜 기자

2008년 8월 22일, 한국과 일본의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전. 한국이 4-2로 앞선 8회 2사 1루. 일본 외야수 G.G.사토가 고영민의 평범한 플라이 타구를 놓쳤다. G.G. 사토의 실수 덕분에 한국은 쐐기 1점을 뽑았고, 결승에 진출해 쿠바를 꺾고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G.G사토는 지난 13년간 어떻게 지냈을까.

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에서 고영민의 뜬공을 놓치는 G.G.사토./마이니치신문

2021년 8월 4일, 한국과 일본의 도쿄올림픽 준결승전. G.G.사토는 베이징 올림픽 때 입었던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일본 도쿄 긴자의 한 인터넷 방송국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역할은 야구 해설자. 그는 NHK중계를 틀어놓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소리치고 울부짖었다.

한국과 일본이 2-2로 맞선채 돌입한 8회초. G.G.사토가 말했다.

4일 일본 도쿄 긴자의 한 인터넷 방송국에서 도쿄올림픽 한일전을 중계하는 G.G.사토(유니폼 입은 사람)./도쿄=양지혜 기자

“8회가 시작되니까 약간 두려워지네요. 베이징 올림픽 때도 한국이 8회에 대량 득점으로 역전해서 이겼는데요. 덕분에 제가 한국의 영웅이 됐죠. 지금 한국의 조선일보도 제가 13년만의 역사적인 일한전(한일전) 재대결을 중계하는 걸 보기 위해 와있습니다.”

“콘도 켄스케 선수, 오늘 ‘G.G. 콘도’가 될 위기입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저처럼 됩니다! 정신차리세요! 연관검색어로 ‘실수’가 뜨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일본 좌익수 콘도 켄스케는 일본이 0-2로 앞선 6회초 박해민의 타구 처리를 실수해 2루까지 내줘 2-2 동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제와 말하는건데, 베이징 올림픽 때 한국 응원단이 ‘대~한민국’ 하는 응원소리가 엄청 싫었어요. 부담감을 엄청 가중시켰어요. 그런 의미에선 무관중도 나쁘지 않네요. 일본 선수들 집중할 수 있고.”

중계 도중 흥분해서 일어난 G.G.사토./도쿄=양지혜 기자

한국은 8회초를 무득점으로 끝냈고, 8회말 일본의 공격이 시작됐다.

“지금 투수(고우석) 공 무척 빠르네요. 역시 한국은 투수가 좋네요. 불펜이 강합니다”

“콘도, 정신차리라고! G.G. 콘도가 정말 되고 싶은거야?”

(콘도가 8회말 1사1루에서 병살타를 쳤는데 비디오 판독으로 1루 세이프 판정이 나서 살았다.)

“야마다, 부탁해, 야마다, 부탁해…. 아아아아아아아악 잘했어 야마다!!!”

(야마다 테츠토가 2사 만루에서 3타점 2루타를 쳤다)

“오늘 G.G.사토는 없네요. 역시 G.G.는 나 한명뿐입니다!”

일본이 8회말 싹쓸이 2루타로 앞서가자 기뻐하는 G.G.사토./도쿄=양지혜 기자

일본이 5-2로 앞선 상황에서 돌입한 한국의 9회초 공격.

“일본 부탁해, 이겨줘, 3점 리드잖아. G.G.도 없는데 이젠 이길 수 있어”

“(대타로 등장한 박건우를 보고) 한국 선수들은 역시 다 피부가 하얗네요. 역시 미용 관리 강국인 한국이니까. 선수들 중에 BTS 멤버도 있는거 아니야?”

“호시노 감독님, 지금 하늘에서 보고 계십니까! 13년 걸렸습니다. 오늘 일본이 이겼습니다!”

그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여러분 그동안 정말 미안했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감동했습니다. 선수들 대단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역시 강하네요. 끝까지 아슬아슬했습니다. 만만한 투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일본이 승리하자 눈물을 흘리는 G.G.사토./도쿄=양지혜 기자

중계가 다 끝난 뒤 G.G.사토를 만났다. 막걸리로 한껏 오른 취기와 눈물이 더해져 벌겋게 된 눈동자와 마주했다.

G.G.사토의 본명은 사토 다카히코(佐藤隆彦)이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노안이라서 친구들이 ‘노인 같다’는 뜻의 지지쿠사이(ジジくさい)로 놀렸던 별명에서 예명 ‘G.G.’를 따왔다.

1978년 일본 치바현 이치카와시 출신. 올해 43세. 호세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싱글A팀에서 3년간 뛰다 귀국했다.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즈(2004~2014)와 치바 롯데 마린즈(2013~2014)에서 활약했고, 이탈리아 리그(2012년)에서도 잠시 뛰었다. 그의 야구 인생은 2008년 베이징의 그 여름 전까지 평탄했지만, ‘세기의 낙구(世紀の落球)’로 불리는 그 실수 이후엔 굴곡진 험로였다.

G.G.사토는 일본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한국의 막걸리를 열심히 마셨다./도쿄=양지혜 기자

막걸리는 오늘 왜 마셨습니까?

“한국을 이기자는 뜻에서 마셨네요. 일본 문화에 ‘상대를 마신다(相手を飲む)’는 표현이 있어요. 대결하는 상대방의 음식을 삼키고 마셔버리면 그 기운으로 이길 수 있다는 의미로요. 오늘 제가 마신 막걸리 덕분에 일본이 한국을 이긴 것 아닐까요.(웃음)”

오늘 야구 어떻게 보셨나요?

“베이징의 그 준결승 이후 13년만에 재대결이 실현됐는데, 시합 내내 기쁘면서도 긴장했습니다. 옛날 생각도 많이 났고요.”

한국에서 별명이 ‘고마워요 GG사토’인 것을 알고 있습니까

“몰랐는데 최근 도쿄올림픽 야구에 관련해 응했던 인터뷰에서 어떤 일본 기자가 알려줘서 알게 됐습니다. 당신, 한국에서 ‘G.G. 땡큐’로 불리는 것 알고 있냐면서.”

베이징 그 경기 이후 한국에서는 상대 선수가 한국 팀의 승리를 도와주면 ‘고마워요 000’ 하는게 유행이 됐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콘도 오늘 위험했네! ‘고마워요 콘도’가 될 뻔했으니. 그런데 한국인들이 저를 많이 알고 있다니, 너무 신기합니다. 한국어로 트위터 같은 것을 해볼까요? 그럼 인기가 있으려나?”

G.G.사토는 막걸리 덕분에 한일전을 이겼다고 매우 기뻐했다./도쿄=양지혜 기자

오늘 한국 팀에 고마웠던 선수가 있습니까

“한국 선수들은 오늘 다들 실수없이 잘했습니다. 마지막에 투수가 조금 아쉬웠을지 모르겠지만, 투수가 아무리 힘껏 던져도 타격이 터지지 않으면 이기기 어려우니까요. 감히 고맙다고 말할 그런 한국 선수는 없네요.”

“아, 고우석 선수가 야마다 테츠토 선수를 8회에 정면 승부를 해준 것은 고맙습니다. 배짱있게 멋졌어요. ‘코짱’ 고마워요”

“하지만 솔직히, 한국 선수들을 전부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흠 잡고 싶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한국 선수들이 도쿄올림픽에 나와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대만처럼 코로나 때문에 아예 불참한 나라들도 있는데. 참가해 줘서 고맙습니다.”

오늘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국 선수는 누구입니까

“5번 타자로 나섰던 김현수. 그는 최고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봤던 기억이 생생한데 오늘도 엄청난 활약을 해줬습니다. 오늘도 일본 상대로 2안타나 쳤고요. 베이징 때 스무살로 국가대표 뛰었던 선수가 이제 30대 중반 베테랑이 되어서 5번 타자를 맡아 활약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긴 시간 꾸준히 활약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초(超) 리스펙트’ 입니다.”

이번에 낯익은 다른 한국 선수들도 있습니까

“포수 강민호. 근데 오늘 경기는 안 나왔죠. 투수 오승환도 있고요. 그런데 이 두 선수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또렷하진 않은데 김현수에 대한 기억은 엄청나게 무지무지 또렷합니다. 아직도 다 기억납니다.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아, 한국의 감독도 당시와 같네요. 김경문씨.”

젊은 한국 선수 중엔 누가 인상적이었습니까

“이정후. 이종범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오늘 3번 타자로 나와서 너무 훌륭한 배팅을 보여줬습니다.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방송으로 보니 너무 잘생겼습니다. 한국에서 인기 아주 많을 것 같네요. ‘야구의 BTS’랄까, 그나저나 우리 딸이 BTS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 한국 방송만 틀어놔서 제가 힘들 정도입니다.(웃음) 맨날 BTS 타령만 해요. 신오쿠보 한류 거리도 자주 가고요.”

일본 이제 금메달 비원을 푸는 건가요?

“아직 결승전이 남았으니까 모르지요. 한국을 결승전에서 다시 상대할 가능성도 크고요. 오늘 준결승도 8회말에 승부가 날 때까지 어떻게 끝날지 몰랐던 경기였습니다. 일본은 미국전도 연장 끝내기로 겨우 이겼고요. 쉬운 시합이 없습니다.”

“사실 한국 선수들이 국제전에서 너무 강합니다. 갖고 있는 실력 이상을 발휘하는 강렬한 기세가 있어요. 병역 면제 때문이라고 하기엔 설명 불가능한 정말 대단한 기세가 있습니다. 일본 선수도 그런 점은 한국에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G.G.사토는 연신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신오쿠보에 가면 한식당에서 서비스를 많이 받는다"고 웃었다./도쿄=양지혜 기자

아까 베이징 올림픽 때 ‘대~한민국’ 응원 소리가 엄청 싫었다고 하던데요

“너무 너무 너무 싫었습니다. 긴장감과 압박이 그 응원 소리를 들으면 몇 배가 됐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측량 회사(그의 아버지가 오너다)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예능인처럼 방송 출연도 하고, NHK 대하드라마에서 연기도 해봤고, ‘실패학’ 강의도 다닙니다. 실패에 대해서 저처럼 제대로 깨우친 사람이 없으니까요.”

야구도 합니까?

“오늘처럼 해설자로는 꾸준히 활동하고 있고, 그리고 우리 회사 사내 야구팀에서 타자 겸 외야수로 종종 뜁니다. 거래처 회사의 팀과 경기할 때는 플라이 타구를 일부러 놓쳐줘요. 그럼 상대 팀이 ‘G.G. 역시 최고, 또 놓치다니 잘했어!’라고 아주 기뻐하면서 계약서에 사인해요. 영업 전략 차원에서 공을 놓쳐주는거죠.”

일본 언론에 소개된 G.G. 사토의 회사 생활 모습./G.G.사토 인스타그램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지만 2008년 당시에는 아주 힘들었을 텐데요.

“말도 못하게 괴로웠습니다. 아까 제가 일본이 이기고 우는 것을 봤나요? 정말 힘들었어요.”

일부러 재밌으라고 우신게 아닌가요?

“무슨요. 사실 그때는 죽고 싶었어요.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고, 가족에게까지도 엄청난 취재와 협박이 들어왔고요. ‘G.G. 죽어버려’ 소리 듣는 것은 예삿일이었고요. 전범 그 이상의 취급을 당했죠.”

그 때의 좌절을 딛고 일어선 비결이 뭡니까?

“글쎄…. 어려운 질문인데요. 사실 아직도 극복 못했습니다. 지금도 아주 분합니다. 마음같아서는 오늘 제가 저 요코하마 경기장에서 선수로 뛰어서 한국을 꺾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 때의 상처를 극복하진 못했습니다. 지금도 매우 분하고,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얼굴은 이렇게 웃고 있지만, 아직도 괴로워요. 한국의 김현수처럼 제가 오늘 저 경기장에서 뛰어서 이겼다면 그때의 기억이 잊혀질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일본이 이겼는데도 저는 아직도 분합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잊혀지지 않을 아픔일겁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사람에게 친절해졌어요. 실패한 사람이 느끼는 괴로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지금 제가 회사 부사장인데 사원들이 실패해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어요. 제가 계속 승승장구했다면 거만하게 살았을거에요. 아주 괴로운 일이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도 생각해요.”

NHK 대하드라마에 출연한 G.G.사토. 그는 은퇴 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G.G. 사토 인스타그램

‘실패학 강의’는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대학교에서 계속 요청이 들어옵니다. 보통 학기 때 1번씩, 1년에 최소 두번은 하는 것 같네요. 강의 내용은 ‘실패도 OK’ 입니다.”

“좀 더 말하자면, 살아가다보면 인생에는 좋은 일보다 실패나 실수가 더 많다. 실패를 어떻게 스스로 다루느냐가 중요하다. 실패가 나쁜게 아니다. 실패를 받아들여야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실패가 나쁜게 아니고, 실패를 안 하고 싶다고 안 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실패를 잘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래야 실패를 두려워않고 도전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아주 큰 실패를 했지만, 그걸 정면으로 받아들이니 지금 이렇게 오늘 야구 해설도 하고 있고 한국의 조선일보에서 취재도 오고 하잖아요. 그러니 실패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패에 대한 관념을 바꾸고 싶어요. ‘가끔은 과감하게 도전해! 실패해도 돼!’라고 말해주는게 필요해요.”

야구는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셔서 일곱살때부터 캐치볼하면서 야구를 시작했어요. 야구를 배우자마자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교 졸업 후 3년간(2001~2003) 미국 마이너리그에 있었는데, 그 땐 메이저리거가 되는게 꿈이었거든요. LA 다저스의 노모 히데오씨처럼. 아, LA 다저스에는 ‘박(찬호)’도 있었지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2003년을 끝으로 계약이 해지됐고, 일본으로 건너와 프로 테스트를 받고 입단했죠. 제가 마이너리그에서 뛸 때 한국 선수도 2명 있었는데…. 무슨 ‘김’이었는데, 김씨가 워낙 많아서 지금은 자세히 기억이 안나네요.”

사업가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G.G. 사토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곱살에 야구를 시작했다./G.G. 사토 인스타그램

야구만의 매력이 뭘까요.

“홈런 치면 영웅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게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가시마 시게오(일본 야구의 전설)씨처럼 모두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베이징 올림픽 출전은 어떻게 하게 된 건지요.

“사실 스스로 제가 올림픽에 나가게 되리라곤 생각도 안 해봤는데, 2008 시즌 초반에 제가 절정의 기량이었습니다(그는 당시 정규시즌 전반기에 20홈런 이상 쳤다). 그래서 뽑혔는데, 돌아보니 준비가 잘 안된거죠. 그래서 실수를….”

“프로야구에서도 매 경기를 긴장해서 하니까 ‘올림픽도 이렇게 하면 되곘지’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분위기가 천지 차이였어요. 특히 한국과 경기할 때는 너무 떨렸습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시합을 그 때 처음 했습니다. 대단한 분위기, 대단한 긴장감…. 그 때 한국에 훌륭한 선수가 많았어요. 이대호, 이승엽, 김광현 등등. 정말 강했어요. 특히 그 때 김광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공을 보고도 못 쳤어요. 지금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고 들었는데 훌륭합니다.”

그 때 한국 선수들은 전부 또렷하게 기억하십니까

“이름은 정확히 다 기억을 못하지만 얼굴은 전부 생생하게 다 기억합니다. 이용규씨, 그리고 잊을수 없는 2루수 고영민씨! 제가 고영민씨의 공을 떨어뜨려서….(웃음). ‘고영민’ 이란 이름은 절대 잊을 수 없죠. 고영민씨 요즘 잘 지냅니까, 고영민씨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우리 만납시다!”

지금 입고 있는 유니폼이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입었던 그 유니폼이 맞습니까

“한일전은 아니고요, 아마 그 경기는 짙은 색이었을 겁니다. 어쨌든 13년 전 그 유니폼 맞아요. 이 스파이크는 한일전 때 제가 신고 뛰었던게 맞고요.”

G.G. 사토가 2008 베이징 올림픽 한국과 준결승전에서 신었던 신발./도쿄=양지혜 기자

G.G.사토 씨가 주머니에서 꺼낸 ‘그때 그 스파이크(신발)’엔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의 흙이 아직도 질퍽하게 묻어있었다.

13년 전 유니폼을 아직도 변함없이 소화하는 몸매가 놀랍습니다. 운동을 엄청 많이 하십니까

“운동은 가끔 하고요. 매일 김치를 먹는데, 진짜로 그 덕을 보는 것 같아요. 김치가 밥 도둑입니다.”

“지금 체중은 90kg가량 나갑니다. 선수 때는 110kg였는데 은퇴하고 20kg를 뺐어요. 이유는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서’. 한국의 여러분께도 사랑받고 싶습니다! 선수 시절 소녀시대 노래 ‘Gee’를 타석 등장곡으로 썼어요. 지지지지~ 지지 사토!”

일본의 야구 인기는 여전합니까. 한국은 베이징 이후 정점을 찍었다가 요즘은 감소하는 추세입니다만

“일본도 한국처럼 조금씩 야구 인기 줄고있는 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주고 싶은데, 아이들이 별로 야구를 안 하고 대신 축구나 탁구, 럭비를 합니다. 럭비의 경우 2019 럭비 월드컵을 일본에서 개최했던 영향이 크고요. 아이들이 여러가지 스포츠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야구가 예전 같은 인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일본이 이번에 야구 금메달을 따서 다시 야구 인기가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제 올림픽 야구는 도쿄를 끝으로 보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잖아요.”

“제가 2008년에 ‘G.G.버블’로 한국 야구를 부흥시켰으니, 이번엔 일본 야구에 버블을 만들어줘야하지 않겠습니까.(웃음)”

13년 전 베이징에서 공을 놓치고 좌절하던 모습을 재연한 G.G. 사토. 야구 공을 막걸리 병으로 대체했다./도쿄=양지혜 기자

도쿄올림픽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열렸습니다.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요

“그동안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선수들에게는 워낙 소중한 기회이니 만큼 이걸 잃어버린다면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무관중으로 대회를 연다고 해서 처음에는 ‘이러면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올림픽이 시작하니 경기 그 자체로 감동을 주고 있어요. 지금은 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도 이번 도쿄 올림픽의 경험이 전해져서 잘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에 와본 적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가보고 싶네요. 코로나 사태가 끝난다면 한번 꼭 가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여러분들, G.G.사토가 간다면 반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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