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회장은 어떤 문서 받고 '이순신 현수막' 내렸나

박린 2021. 8. 1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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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 금지 IOC에 확인해보니..
"정치적 표현 금지 재확인했을 뿐"
체육회 "외교적 성과" 주장과 배치
가이드라인 없어 논란 재연 우려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걸었다가 IOC 요청으로 철거되는 이순신 장군 패러디 현수막. [연합뉴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도쿄올림픽 기간 금지했는지를 두고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 8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포츠 외교의 큰 성과라면 앞으로 경기장에서 욱일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IOC로부터 문서로 약속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날 무토 도시로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에서 “IOC에 확인했더니 ‘지금까지 입장과 달라지지 않았고, 사안에 따라 판단한다’고 밝혔다. (욱일기를) 금지하겠다고 말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같은 날 일본 교도통신도 “IOC가 욱일기를 금지했다는 한국 측의 설명을 부정했다”고 보도했다.

IOC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IOC 홍보 담당자는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논의 시작부터 일관되게 말했듯, 올림픽 헌장 제50조 2항에 따라 정치적인 표현은 없어야 한다. 경기 중 우려한 사항이 발생하면 사안별로 적용한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IOC는 대한체육회에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서신을 보냈다. 추가적인 발언이나 해석은 포함되지 않았다(without making any further statement or interpretation). 규칙 이행을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밝혔다.

IOC가 대한체육회에 문서를 보낸 건 사실이지만, ‘욱일기 금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IOC 답변에 따르면 일본 측이 주장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연합뉴스]


김보영 대한체육회 홍보실장은 “우리가 받은 레터에 ‘욱일기 사용 금지’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IOC가 우리에게 50조 2항 위반을 이유로 현수막 철거를 요청한 것처럼, 모든 경기장에서 욱일기 사용에 대해서도 50조 2항을 적용해서 판단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욱일기’란 주어가 추가되긴 했지만, IOC가 원론을 재확인하는 수준으로 읽힌다. IOC는 수년 전부터 ‘사안별로 적용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다.

IOC로부터 문서를 받기 전, 대한체육회는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사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철거했다. ‘경기장 내 욱일기 사용에도 똑같이 적용하겠다’는 약속을 IOC로부터 받았다는 게 이유였다. IOC 홍보담당자는 “현수막은 대한체육회가 철거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IOC가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측 주장에 반박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대한체육회는 “현수막을 내릴 때 공식 입장을 냈고, 일어나지 않은 상황(욱일기 등장)에 대해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난 5일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남자 결선 볼더링에서 욱일기 형상의 인공 구조물이 보였다. 외신과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은 이를 “일본의 라이징 선(욱일)”이라고 설명했다.

욱일기를 연상케하는 일본 골프 대표팀 유니폼과 관련해서도 대한체육회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기흥 회장은 “지나친 확대 해석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김보영 실장은 “그렇게 따지면 욱일기 형상이 너무 많아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의 성화봉송 지도에는 독도가 일본 땅인 것처럼 작은 점이 찍혀 있다. 대한체육회는 대회 기간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가 ‘이순신 현수막’을 걸었다 내린 뒤 스포츠 외교에서 실익 없이 물러났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으로 개최됐기 때문에, IOC가 욱일기 응원을 금지한다는 약속은 애초부터 실효성이 없었다. 2024년 파리올림픽 경기장에서 욱일기가 등장할 경우 IOC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욱일기 퇴치와 독도 수호 운동을 벌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한일 양국이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지 않았나 싶다. 그보다 IOC가 어디까지가 정치적인 표현인지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한 게 문제다. 대한체육회가 적극적으로 항의할 기회였는데, 문서를 받아 놓고 활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파리올림픽 관중석에 욱일기가 등장하면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도쿄올림픽 욱일기 금지 진실공방

「 7월14일 체육회, 선수촌에 ‘이순신 현수막’ 설치
7월17일 IOC 요청에 체육회가 현수막 철거
7월19일 이기흥 “욱일기 관련 약속 문서 받았다”
8월 7일 이기흥 “스포츠 외교 큰 성과”
8월 8일 무토 일본 사무총장 “사실 아냐. IOC에 확인”
교도통신 “IOC, 욱일기 금지 한국측 설명 부정”
8월13일 IOC “정치적 표현 금지 재확인했을 뿐”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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