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테니스 '10대 돌풍' 속 암흑기 헤매는 한국, 왜?

이정호 기자 2021. 9. 1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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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테니스, 꿈나무에 투자하라"

[경향신문]

정현. 연합뉴스
주니어 육성 시스템의 부재 탓
정현·권순우 같은 스타 안 나와
어린 선수 세계 진출 지원 없어
선진 테니스 못 접해 성장 한계

지난 1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여자 단식 결승은 전 세계 시선을 사로잡았다. 결승에서 만난 19세 동갑내기인 에마 라두카누(영국)와 레일라 페르난데스(캐나다)는 큰 무대에서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멘털을 유지하면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줬다.

한국 테니스는 그 경기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했다. 동호인 인구만 놓고 보면 인기 종목임에도 한국 엘리트 테니스는 여전히 변방에 있다. 현재 남녀 테니스 세계 랭킹 톱 50위 안에서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남자 단식 권순우(당진시청)의 83위, 여자 단식 한나래(인천시청)의 260위가 가장 높은 순위다.불과 3년도 채 되지 않은 정현의 2019년 호주오픈 4강 역사가 멀어 보일 만큼 먹구름이 짙다. 권순우가 꾸준히 톱100 선수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투어 본선에서 한국 선수의 활약 소식을 듣기란 쉽지 않다. 새 얼굴도 나타나지 않는다.

주니어 육성 시스템의 부재 탓이다. 정현, 권순우는 한국 테니스계에서 주니어 선수 지원이 가장 활발했던 2010년대 초반에 급성장했던 세대이다. 조동길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은 재임 말기이던 2012년부터 협회에 주니어 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프로그램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더그 매커디 국제테니스연맹(ITF) 교육개발 담당이사를 초빙해 선진 훈련 프로그램으로 선수들을 가르쳤고, 꾸준히 해외 대회 출전 기회도 부여했다.

권순우. 연합뉴스

이때 발굴된 선수가 2015년 호주오픈 주니어 준우승자 홍성찬과 2015년 US오픈 주니어 단식 4강 정윤성, 그리고 권순우 등이다. 2013년 윔블던 주니어에서 준우승한 정현과 이덕희 등은 기업 후원을 통해 꾸준히 해외에서 뛰었다. 그러다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선 2016년부터 사실상 지원이 사라졌고 주니어 테니스도 내리막을 걷고 있다. 현재 ITF 주니어 랭킹에서 남녀를 통틀어 100위권 이내 선수는 남자 1명뿐이다.

테니스 매니지먼트 라이언컴퍼니 최형진 대표는 “지금은 한국 테니스의 암흑기라 할 만하다”며 “협회는 외면하고 있고, 테니스 꿈나무들은 사실상 홀로 세계 문을 두드리거나 국내에서 뛰면서 안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형택 이후 남자 세계 주니어 랭킹 1위에 올랐던 김선용은 큰 기대를 받았다. 김선용은 고교 2학년이던 2005년 호주오픈 주니어대회에서 복식 우승, 단식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활약한 전웅선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김선용과 라이벌이자 복식조였다. 외국 선수들과 견줘도 손색없는 체격조건까지 갖춘 둘은 주니어 시절에는 현재 세계 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 앤디 머리(영국)에게도 밀리지 않았지만 성인 무대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정윤성, 홍성찬 등도 주니어 시절에는 스테파노스 치치파스(그리스),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 데니스 샤포발로프(캐나다) 등 현재 톱랭커 등과 경쟁했다.

결국 좋은 자질을 갖춘 선수들을 빠르게 변하는 세계 테니스 트렌드에 적응시키지 못한 결과다. NH농협스포츠단의 박용국 단장은 “테니스 선진국에서는 협회 차원에서 재능 있는 유망주를 찾아 육성한다. 일본, 중국도 주니어 유망주가 나오면 일찍 미국이나 유럽의 아카데미로 보내 선진 테니스 적응력을 키워준다”며 협회 주니어 육성책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최형진 대표는 “현재 중학교 여자 선수들에서 좋은 재목들이 많이 보인다. 그 선수들에게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면 몇 년 뒤엔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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