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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선수들에게도 테니스는 '신사의 스포츠'로 느껴질까?

김홍주 입력 2021. 09. 20. 06:29 수정 2021. 09. 20.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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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객원기자] 테니스는 대표적인 신사의 스포츠로 불리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테니스가 중세 프랑스 사회의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랑스의 왕 중에는 테니스로 인해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루이 10세는 테니스를 과하게 즐긴 후 오한으로 사망했으며, 찰스 9세는 경기 중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사망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1세는 자신을 살해하려던 자객을 피해서 달아나다가 막혀있는 배수로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배수로를 막아놓은 이유가 테니스 공이 배수로로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왕족들의 테니스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테니스가 신사의 스포츠인 또 다른 이유는 선수와 관중들에게 요구하는 매너에도 있다. 관중들은 게임 중에는 소리를 내어 선수들의 플레이를 방해하지 않는다. 게임 중에 관중들은 자리를 움직일 수 없으며, 엔드 체인지를 할 때 빠르게 이동한다. 자신이 응원하는 상대 선수가 실책할 경우 손뼉을 치는 것도 매너에 맞지 않는다.

한편 선수들에게도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은 룰북에 규정되어 엄격하게 준수해야만 한다. 대표적으로 선수들이 경기 중 라켓을 부수는 행동이나 과격한 언행을 금하고 있다. 심지어 윔블던 대회는 선수의 복장과 운동화의 색상까지 ‘흰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축구, 농구와 같은 단체 경기에서 볼 수 있는 관중들의 자유로움과 선수들의 격한 몸싸움을 생각한다면 테니스가 신사의 스포츠로 간주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치열한 승패의 각축장에 놓인 선수들에게도 테니스는 신사의 스포츠일까? 사실 테니스는 사각 링 안에서 처절한 혈투를 벌이는 복싱과 많은 점이 닮아있다. 사각의 코트 안에 놓인 두 선수는 코트 위에 올라선 이상 승패를 결정지어야 한다. 한 명이 승자가 되면, 다른 한 명은 반드시 패자가 되어야 한다. 테니스에는 공동 우승이나 무승부 같은 낭만은 없다. 

복싱은 상대방에게 유효한 타격을 많이 가하거나, 상대를 쓰러트려야 승자로서 게임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테니스도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해서 굴복을 시켜야만 패자가 아닌 승자가 될 수 있다. 상대의 다리에 근육경련이 일어나서 움직임이 불편한 것 같으면 공을 좌우로 더 돌리거나, 드롭샷을 놔서 승부를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상대에게 자비를 베풀고 여유를 준다면 곧 다시 살아나서 역공을 퍼부을지 모른다. 테니스는 단지 좀 더 규율이 많은 격투기와 다름없다. 대회에서 승리는 살아남는 것이고, 패배는 죽음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랜드슬램에서의 패자 
테니스 선수라면 누구나 어릴 적부터 그랜드슬램 우승의 꿈을 키우며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막상 어렵게 랭킹 포인트를 따고 챌린저 대회에서의 좋은 성과로 세계 100위 안에 들어도 그랜드슬램은 커녕 투어 대회의 우승컵 하나를 들기 어렵다. 세계에서 가장 테니스를 잘하는 100명에 들었는데도 말이다. 그랜드슬램 타이틀은 가장 재능 있는 선수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몇 명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랜드슬램 준우승도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랜드슬램 우승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준우승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랜드슬램 준우승자도 결국 ‘패배자’가 된다. 실질적인 대우에도 차이가 크다. 그랜드슬램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상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2021년 대회 기준 우승자는 19~35억원을 받는 반면 준우승자는 우승자의 50% 정도인 10~17억원을 받는다. 

물론 준우승자의 상금도 그랜드슬램 아래 단계인 ATP 1000시리즈 우승 상금이 3억 원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하지만 사람은 비교를 할 때 자신보다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과 비교를 한다. 사실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기량이 상금 차이만큼 크지 않은 경우도 많다. 결정적인 포인트에서 자신의 몇 번의 실수 혹은 상대의 행운의 샷에 의해서 승패가 나누어지기도 한다. 몇 번의 샷이 10~15억원을 추가로 획득할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 랭킹 포인트, 우승자에 대한 후원, 광고 수입까지 생각해 본다면 그 차이는 수십억원 이상이 될 수 있다. 

근소한 차이의 패배와 처우에서의 엄청난 차이는 준우승자에게 패배 경험을 극복하기 어렵게 만든다. 머릿속에서 같은 포인트를 끊임없이 되뇌며, ‘그 상황에서 내가 샷 결정을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떨쳐지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그랜드슬램 결승전을 치르며 실수를 하는 반복적인 악몽을 꾸게 되는 것이다. 선수로서의 꿈과 명예까지 생각한다면 고통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선수들에게도 테니스는 '신사의 스포츠'일까?

글= 김홍주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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