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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대하는 선수들의 방법 - 비외른 보리

김홍주 입력 2021. 09. 23. 06:56 수정 2021. 09.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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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윔블던 결승에서 매켄로에게 패한 경기는 보리의 테니스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사진 GettyimagesKorea)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리, 26세에 은퇴
[이준석 객원기자] 1970년대 비틀즈만큼 많은 소녀팬을 보유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스웨덴의 전 세계 1위 비외른 보리다. 벌써 50년 전의 일이라서 그를 아는 동호인은 나이가 좀 있거나 진정한 테니스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1973년에 16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한 보리는 우드 라켓 시대에는 보기 어려운 톱스핀과 양손 백핸드, 그리고 항상 상대를 능가하는 체력, ‘아이스 맨’이라는 별명과 같이 차분한 멘탈로 코트를 지배했다. 그의 인기 덕분에 1970년대 테니스 팬층은 두터워졌고, 대회 상금은 올라갔다. 1979년 보리는 테니스 선수 최초로 한 해 동안 1백만 달러 이상의 상금을 획득한 선수가 되었다.

보리는 여섯 차례 프랑스오픈 우승(1974~75, 1978~81), 다섯 차례 윔블던 우승(1976~80)을 이루어 총 11회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 당시에는 전체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가 위대한 선수의 척도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리는 호주오픈에 단 한 차례(1974)를 제외하고 모두 출전하지 않았다. 그 당시 잔디 코트에서 열렸던 호주오픈에 참가했더라면 더 많은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차지했으리라 생각된다.

비록 프랑스오픈 우승 기록은 나달에 의해, 윔블던 우승은 샘프라스와 페더러에 의해 경신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클레이 코트와 잔디 코트에서 동시에 5회 이상 우승하지는 못했으며, 그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 

보리는 1980년 US오픈, 1981년 윔블던과 US오픈에서 세 번 연속 매켄로에게 타이틀을 넘겨준 뒤에 더 이상 그랜드슬램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그랜드슬램이 된 1981년 US오픈 패배 뒤에는 시상식과 언론 인터뷰에도 참석하지 않고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1982~83년 대회 참가가 거의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1983년 26세에 은퇴를 선언했지만 실질적인 은퇴는 24세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로 승리에 대해 강박적인 면을 들 수 있다. 그의 첫 번째 부인 마리아나 시미오네스쿠는 인터뷰에서 보리는 경기에서 패배하면 사흘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대회에서는 극도로 절제된 루틴을 따른다. 수면 스케줄을 지키고, 경기 전 항상 같은 음식을 먹고, 숙소에서 대회장까지 같은 길로 다니고, 수염을 깎지 않고, 머리 손질에 오랜 시간을 들이고, 대회 전 라켓 텐션을 예민하게 체크하고, 부부관계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물병에 집착하는 나달의 예민함은 경미한 수준이다. 

보리는 이른 나이에 프로 데뷔하여 절제된 생활 속에 부담감을 이겨내고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하지만 프랑스오픈, 윔블던 우승은 연승이 쌓여갈수록 다음 대회는 더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매켄로를 상대로 한 잇따른 패배는 충격과 함께 안도감을 안겨주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보리는 “1980년 윔블던 결승에서 치열한 5세트 접전 끝에 매켄로에게 승리했지만, 처음으로 패배의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서서히 나의 우위가 끝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1981년 윔블던 결승에서 매켄로에게 패배한 후에 충격적인 일은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승부욕이 강한 내가 윔블던 결승에서 패하고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보리는 1983년 은퇴 선언 후에 34세가 된 1991년 테니스 대회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며 돌연 복귀를 선언한다. 하지만 대회 준비를 위한 이렇다 할 연습 없이 과거 사용하던 우드 라켓과 긴 머리 스타일을 하고 코트에 복귀한 그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1993년 다시 은퇴한 뒤에 은퇴선수들의 투어인 챔피언스 투어에서 활동했다. 

보리의 뒤늦은 복귀는 그의 이른 은퇴가 자신에게도 아쉬움을 남겼음을 의미한다. 패배를 극도로 싫어한 보리는 스스로를 혹독하게 통제하며 연승을 이어갔다. 하지만 연승의 굴레에서 본의 아니게 벗어나자 휴식을 갈구하게 된 것이다. 보리가 자신의 승리에 대한 부담감과 패배에 대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다면, 나달과 페더러가 경신하지 못할 기록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비외른 보리와 존 매켄로의 승부를 그린 영화 ‘보리 vs 매켄로’(2017)를 보면 보리의 치열한 내면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세 번째 부인 패트리샤에게서 얻은 아들 레오 보리가 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다. 실제로 레오 보리는 현재 18세 주니어 테니스 선수로 ITF 주니어 랭킹 2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레오 보리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조언은 ‘테니스 경기는 마지막 포인트가 끝날 때까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라’는 것이다.


1980년대 라이벌이었던 매켄로와 보리(오른쪽)는 이제 레이버컵에서 월드팀과 유럽팀의 감독으로서 지략 대결을 펼친다.

글= 김홍주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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