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스포츠춘추

"롯데는 미워할 수 없는 악마".."'차라리 시민구단으로 운영했으면' 욕하다가도 팀 성적 좋으면 '우리 롯데' 하는 게 부산팬들" [엠스플뉴스 기획 '나는 팬이다]

박동희 기자 입력 2021. 10. 27. 15:15 수정 2021. 10. 27. 15:30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40년 동안 롯데가 부산 사람들에게 참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줘. 그 즐거움과 기쁨보다 수십 배는 많은 괴로움과 슬픔을 줘서 문제지만” 
-“역대 선원노련 리더들 가운데 조합원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리더들의 공통점, 하나같이 쓴소릴 허투루 듣지 않았다는 것. 롯데가 항상 신경써야할 이야기”
-“작년까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는지 않는 한 향후 10년간 롯데 우승은 어렵다’고 생각. 올 시즌 후반기 들어 조금씩 미래에 대한 기대 생겨”
-“‘차라리 시민구단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욕하다가도 롯데 성적이 좋으면 ‘우리 롯데’ 하는 게 부산 팬들” 
 
'열혈 롯데팬' 한국선원노련 이유승 본부장. 프로야구 출범 이후 야구를 지켜온 이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사랑에 빠졌거나 술에 취했거나 공직에 출마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게 뭘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그 말을 막으려고 하는 건 대부분 헛된 시도로 끝난다는 점이다. 
 
여기서 더 추가할 사람이 있다. 바로 성난 롯데팬이다. 조합원 7만 명의 한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에서 본부장으로 근무 중인 이유승 씨가 대표적이다. “1984년 가을 잠실야구장에 안 갔어야 했는데…무슨 바람이 불어서 거길 가는 통에 평생 롯데팬이 돼가꼬, 완전 인생이 꼬였어요. 꼬였어.” 이 본부장의 얘기다. 
 
1984년 가을, 20대 청년이던 이 본부장은 한국시리즈 7차전이 열리는 잠실구장을 찾았다.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에 올랐다는 얘길 듣고 ‘한 경기는 직접 봐야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잠실야구장이었다. 
 
거기서 그는 마운드에서 마른 장작처럼 끝까지 자신을 불태운 최동원의 역투를 봤고, 지금은 전설로 기억되는 롯데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생생하게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그때 전 선원노련에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었어요. 뭐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죠. 한국시리즈 우승도 참 쉬워 보이더라고(웃음). 내가 환갑 정도 되면 롯데가 한 20번은 우승하겠다 싶더라고. 그런데 이게 웬걸. 1992년 우승 한번 더하고, 2021년이 되도록 우승 근처에도 못 가고 있으니(웃음). 20대 앳된 청년이 이제 환갑을 넘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정년퇴직이에요. 롯데 우승 다시 보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이 본부장의 얘기다.
 
우리 사회 다양한 곳에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야구팬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엠스플뉴스 기획 ‘나는 팬이다]’의 이번 편은 한국 선원 노동운동의 산증인이자 열혈 롯데팬인 이유승 씨 이야기다. 
 
“40년 동안 롯데가 부산 사람들에게 참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줬다. 그 즐거움과 기쁨보다 수십 배는 많은 괴로움과 슬픔을 줘서 문제지만”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를 우승으로 이끈 고 최동원(사진=롯데)
 
선원노련 관계자가 그러더군요. “이유승 본부장이야말로 선원노련의 산증인”이라고. 언제부터 선원노련 일을 한 겁니까.
 
지금도 선원노련 입사일을 안 까먹는다고. 1984년 5월 21일.
 
2년 있으면 40년 근속인데요. 선원노련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수산 전문고를 함께 다녔던 친구가 졸업하고서 동남아 원목선을 탔어요. 결혼도 일찍 해서 와이프가 임신을 했어요. 하루는 전화가 왔는데…(눈시울이 붉어지며)그 친구가 죽었다는 거야.
 
아.
 
배가 계절풍을 만났다는데, 얘길 들어보니까 배가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더라고. 그때만 해도 여기저기 빵구 난 중고선을 많이 들여왔어요. 검사도 제대로 안 했다고. 진심으로 가슴 아팠던 건.
 
네.
 
친구 와이프 배 속에 있던 애가 태어났는데 아빠가 없으니까…해외에 입양 보냈다고 하더라고.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그날로 선원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됐어요.
 
같은 선원노련 관계자가 그러더군요. “대한민국 선원 가운데 이유승만큼 야구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요. 야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아기는 태어나면 무조건적으로 아빠, 엄마를 따르게 돼 있어요. 그렇죠?
 
그렇죠. 
 
같은 이치로 부산에서 태어나면 무조건 야구를 좋아하게 돼 있어요(웃음). 가뜩이나 제가 다닌 초교 야구부가 무척 유명했어요. 양상문, 박상국, 김호곤 같은 선수들이 그때 전부 우리 학교 멤버들이었으니까.
 
‘부산에서 태어나면 무조건적으로 야구를 좋아하게 돼 있다’라, 많은 분이 공감하실 내용입니다. 매우 웅장한 운명론적인 시각인데요. 하지만, 같은 의미로 ‘부산에서 태어나면 무조건적으로 롯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견줄 만한 비극적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프로야구 시작하고 40년 동안 롯데가 부산 사람들에게 참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줬어요. 그 즐거움과 기쁨보다 수십 배는 많은 괴로움과 슬픔을 줘서 문제지만(웃음). 그래도 우짜겠습니까. 미워도 싫어도 부산 롯데인데. 저 같은 경우는 고향이 부산인 것도 있지만, 1984년 한국시리즈가 절 평생 롯데팬으로 만들었어요.
 
최동원 혼자서 4승을 따내며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었는데요.
 
맞아요.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을 잠실구장에서 직접 봤어요. 유두열이 3점 홈런 치고, 최동원이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고 환호하던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본 거예요. 그땐 ‘앞으로도 이런 장면을 많이 보겠구나’ 싶었다고. 휴우-그땐 참 순진했지 뭐야(웃음).
 
“역대 선원노련 리더들 가운데 조합원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리더들의 공통점, 하나같이 쓴소릴 허투루 듣지 않았다는 것. 롯데가 항상 신경써야할 이야기”
 
2020년 10월 25일 제42회 순직 선원 위령봉안 및 합동위령제에서 위패 24위가 봉안되는 장면(사진=선원노련)
 
선원노련 조합원이 꽤 많은 거로 압니다.
 
조합원만 총 7만 명이에요. 부양가족까지 합치면 30에서 40만 명 정도가 선원 가족입니다.
 
과거엔 조합원이 10만 명을 넘었다고요?
 
그땐 해외 송출선 선원만 5만 명이 넘었어요.
 
해외 송출선이 뭡니까.
 
우리나라 선원이 다른 나라 소유 배에서 일하는 게 ‘해외 송출선’이에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선박회사 소유 배가 거의 없었거든. 그나마 범양상선 소유 배가 있긴 했는데 얼마 되지 않았어요. 나머지는 전부 다른 나라 소유 배였지. 
 
파독 간호사와 광부, 중동에서 땀 흘려 돈을 벌던 건설 인력들처럼 많은 선원이 해외 송출선에서 번 돈을 고국으로 보내왔습니다. 진정한 산업역군이었는데요. 하지만, 그런데도 파독 간호사와 광부, 중동의 건설인력 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외화벌이를 액수로 따진다면 우리 선원들을 따라올 사람들이 없을 거예요. 망망대해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고스란히 고국으로 보냈어요. 대한민국 발전에 정말 큰 공헌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들의 고생과 헌신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혹시 부산 태종대 가보셨습니까?
 
네, 몇 번 가봤습니다.
 
다른 분들에겐 그곳이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일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 선원들에겐 그곳이 우리 선원 선·후배의 영혼이 잠든 성지에요. 해난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령을 모신 유령탑이 태종대에 있습니다.
 
해외송출선의 경우 한국인 선원들이 해상에서 실종됐을 때 많은 설움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국적선이든 해외송출선이든 정부 차원에서 우리 선원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과거엔 해외송출선을 탄 우리 선원이 실종되면 그 누구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어요. ‘아, 죽었구나.’ ‘보상금 얼마’ 이런 식으로 사건 자체가 끝나버리기 일쑤였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많이 좋아졌어요. 우리나라 소유 배도 많아졌고. 아쉬운 게 있다면 여전히 우리 선원들이 ‘반쪽 국민’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에요.
 
반쪽 국민이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선원들은 배를 타면 투표를 하지 못했어요. 부재자 투표 대상에서 빠졌어요. 우리 선원들이 산업역군에, 누구보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모범 납세자임에도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겁니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선원들이 계속 싸우고,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박영선 전 의원이 자기 일처럼 도와준 덕분에 그나마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에선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됐어요. 문제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 선원들의 선상 부재자 투표가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에만 해당할 뿐 재·보궐선거, 지방선거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행스럽게 선원노련 정태길 위원장이 고군분투하고,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관심을 갖고 도와준 덕분에 조만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유승 씨에게 야구는 가장 오래되고 친근한 여가생활이자 살아온 날을 추억할 수 있는 또 다른 앨범이다. 이유승의 헌신으로 선원노련은 해상노동자뿐만 아니라 전체 운수노동을 대표하는 중요 노동운동단체로 우뚝 섰다(사진=엠스플뉴스)
 
선상 부재자 투표와 관련해 선원 전체가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압니다. 조직이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면 지도부 입장에선 꽤 수월하겠습니다.
 
(손을 가로저으며) 전혀 아니에요. 조합원마다 제각각 생각이 달라요. 지도부 결정을 찬성하는 조합원이 있는 반면 사사건건 쓴소릴 내는 조합원도 있어요. 특히나 대부분의 노조 위원장은 자기한테 쓴소릴 하면 무척 싫어합니다. 아, 역대 선원노련 리더들 가운데 조합원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리더들을 살펴보면 분명한 공통점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글쎄요. 
 
하나같이 쓴소릴 챙겨 들었던 분들이라는 점이에요. 롯데 구단 수뇌부와 코칭스태프도 팬들의 쓴소릴 허투루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 같은 경우 한동안 롯데 야구 안 보다가 제리 로이스터 감독 오고 나서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로이스터 감독 떠나니까 다시 야구를 안 보게 되더라고. 로이스터 감독은 그래도 팬들 목소릴 들어줬는데 다른 감독들은 ‘영’ 아닌 거 같아서.
 
“작년까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는지 않는 한 향후 10년간 롯데 우승은 어렵다’고 생각. 올 시즌 후반기 들어 조금씩 미래에 대한 기대 생겨” 
 
부산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사진=엠스플뉴스)
 
지금도 로이스터 감독을 그리워하는 롯데팬이 적지 않습니다.
 
로이스터 감독 시절 롯데 야구, 정말 화끈했어요. 롯데 타자들이 타석에 서면 큰 거 한방씩 쳐줄 것 같은 느낌을 ‘팍’ 받았거든(웃음). 상대팀이 3점 내도 롯데는 언제든 4점 낼 거라는 확신 같은 게 느껴졌어요. 몇 점 차로 지고 있어도 9회 끝날 때까지 집에 가질 않았다니까. 
 
로이스터 감독 이후 양승호 감독은 어땠습니까.
 
양 감독은 상대팀이 3점 내면 역전까지는 아니어도 동점까진 따라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 감독부턴 상대팀이 3점 내면 그걸로 끝나겠구나 싶더라고. 뭐랄까. 로이스터 감독 떠나고 과거의 변하지 않는 롯데 야구로 다시 돌아갔다고 할까.
 
‘변하지 않는 롯데 야구’, 정확히 어떤 야구를 말하는 겁니까.
 
롯데는 프로 근성이 대단한 팀이었어요. 19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때가 대표적이에요. 삼성 팬들이 (펠릭스) 호세한테 라면 국물 던졌을 때 롯데 선수단이 얼마나 똘똘 뭉쳤습니까. ‘박정태’라는 리더가 얼마나 근성 있게 팀원들을 하나로 묶었냐고. 당시 롯데 선수들은 지금처럼 삼진당했을 때 의욕 없는 눈으로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분한 눈빛으로 상대 투수를 노려봤지. 
 
로이스터 감독 이후 롯데 선수들에게서 그런 근성을 엿보지 못했다는 뜻이군요.
 
(고갤 끄덕이며) 맞아요. 대신 선수들에게서 어쭙잖은 스타 의식을 느꼈어요. 최근 10년간 롯데 선수들이 그라운드 안에서 얼마나 팀을 위해 헌신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제 말에 동감을 표할 롯데팬이 많을 겁니다. 그리고 롯데 선수들이 그라운드 밖에서 팬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상기한다면 제 말에 더 공감하실 거예요. 근성 없는 스타 의식은 자의식의 낭비일 뿐이에요. 무엇보다 팀 성적은 둘째고, 자기 성적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선수들의 스타 의식은 비웃음의 대상일 뿐입니다.
 
로이스터 감독 이후 야구장에도 발길을 끊었겠습니다.
 
당연하지. 최근 몇 년간 누가 야구장 가자고 하면 제가 항상 그랬어요. “내가 야구장 갈 때마다 롯데가 항상 진다”고. 그럼 상대방이 그래요. “이야, 이상하네. 나도 내가 야구장 갈 때마다 롯데가 항상 지던데”. 우리가 재수 없는 사람들이라서 롯데가 졌겠습니까.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원체 많은 팀이다 보니까 누가 가든 졌던 거지(웃음).
 
그러다 다시 야구를 보기 시작하고, 야구장에도 가기 시작한 게.
 
올해부터예요. 시즌 초반만 해도 롯데 야구를 안 봤어요. 팀 성적도 성적이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롯데 야구를 하더라고. 그러다 외국인 감독이 사령탑이 되고부터 다시 봤어요.
 
래리 서튼 감독이요?
 
감독 바뀌고서 팀이 좀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작년까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는지 않는 한 향후 10년간 롯데 우승은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올 시즌 삼성과 KT, SSG 하는 거 보니까 롯데가 환골탈태하면 10년까진 걸리지 않겠다 싶더라고.
 
롯데가 환골탈태하려면 가장 크게 노력할 게 뭐라고 봅니까.
 
이대호에요.
 
이대호요?
 
롯데 팬들에게 이대호는 경탄과 아쉬움을 동시에 부르는 선수예요. 이대호의 개인 성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죠. 지금 우리 나이로 마흔인데도 정상급 활약을 펼치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선수라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 못하면 결국 그 선수는 ‘잘했던 선수’지 ‘위대한 선수’론 기억되지 못해요. 그런 의미에서 은퇴하기 전에 이대호가 롯데 우승컵을 쥐는 장면을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구단은 이대호 이후의 롯데를 잘 준비했으면 좋겠고. 이대호 개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팀이 될 때 롯데가 더 근성 있는 강팀이 될지 몰라요. 
 
“‘차라리 시민구단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욕하다가도 롯데 성적이 좋으면. ‘우리 롯데’ 하는 부산 팬들”
 
젊은 시절 이유승 씨가 아들을 데리고 부산 사직구장을 찾은 사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사직구장을 찾았던 어린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 이제 직장인이 됐다. 그리고 과거의 아버지처럼 삶이 지칠 때면 혼자서 조용히 야구장을 찾고 있다. 무엇보다 자기 삶보다 타인의 삶을 더 중히 여기는 아버지처럼 아들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있다(사진=이유승)
 
현재 롯데에도 근성 있는 선수가 꽤 보입니다.
 
누구요? 손아섭 빼고 또 누가 있나요? 다시 롯데 야구 보면서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 선수가 바로 손아섭이에요. 손아섭은 ‘마지막 근성 가이’에요. 평범한 땅볼을 치고도 1루까지 전력 질주하는 선수죠. 롯데가 성공하려면 손아섭 같은 선수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NC 다이노스 생기고 적지 않은 롯데팬이 NC로 응원팀을 갈아타기도 했는데요. 그런 유혹을 느낀 적 없습니까.
 
NC가 생겼을 때 롯데와 함께 부산을 공동 연고지로 쓰길 바랐어요. 그래야 롯데가 정신 차리고 더 발전할 거라고 믿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만약 NC가 롯데와 함께 부산, 마산을 공동연고지로 삼는다면 두 팀 야구가 더 한층 발전할 거라고 믿습니다.
 
본부장께 롯데는 어떤 존재입니까.
 
미워할 수 없는 악마죠. 제가 젊었을 때 친구한테 작은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요. 그 친구 잡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어요. 그러다 결국 잡았죠. 그 친구 잡고서 제가 뭐랬는지 아세요?
 
글쎄요.
 
“밥은 묵었나?”가 첫마디였어요. 그리고서 “야, 이놈아. 내가 니 잡으려고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아나. 그런데 니 보니까 내가 널 미워할 수가 없다”고 했죠. 돈은 두 번째고, 그 친구와 함께 동고동락한 시간이 원체 길다 보니까 좀체 미워할 수가 없더라고요. 제게 롯데가 그런 존재 아니겠나 싶어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웃음). 
 
많은 분이 공감하실 듯합니다.
 
간혹 보면 ‘고마 이제 롯데는 야구에서 손 떼라’ 하는 분도 계세요. ‘차라리 시민구단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시고. 하지만, 그렇게 욕하다가도 롯데 성적이 좋아봐요. ‘우리 롯데’ 그러지(웃음). 그게 고마 부산 사람들의 한계 아니겠나 싶습니다(웃음).
 
박동희, 이근승 기자 dhp1225@mbcplus.com 
 
 
 
박동희 기자 dhp1225@mbcplus.com
 
 

이 시각 인기영상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