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걷히자 드러난 여자배구 민낯..조송화-IBK 사태, 어디까지 가나

이재상 기자 입력 2021. 11. 25. 16: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탈했던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부임
IBK기업은행 주전 세터와 코치의 팀 무단 이탈에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이 경질되는 등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사니 임시 감독대행이 23일 오후 인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1-2022 V리그 흥국생명과의 경기에 앞서 몸을 푸는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2021.11.2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의 선수 이탈 및 감독 경질 사태와 관련한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장 관계자들은, 겉은 화려해 보였지만 안으로 곪아있던 여자배구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고 한숨을 짓고 있다.

기업은행의 세터 조송화는 최근 구단에 일방적인 통보 후 팀을 떠나 물의를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세터코치였던 김사니 코치도 구단 측에 사퇴 의사를 밝히고 팀을 나갔는데, 구단의 설득으로 19일 팀에 복귀했다.

문제는 이후 구단이 조송화 이탈에 따른 내홍의 책임을 서남원 감독에게 물어 사령탑과 단장 동시 경질을 발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한 배구 관계자는 "어느 팀이나 불화는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감독이 아닌 선수편을 드는 IBK기업은행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른 관계자도 "감독에게 항명하고 나간 코치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사인데 심지어 그대로 감독대행 권한을 줬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최악을 택한 IBK의 악수…진실 공방까지?

IBK기업은행은 서 감독을 경질한 뒤 팀을 이탈했던 김사니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앉히고 지난 23일 인천 흥국생명전(3-0 승)을 치렀다.

김사니 대행은 이날 사전 기자회견에서 "훈련 과정에서 서남원 감독과 조송화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 모든 선수와 스태프가 있는 상태에서 내게 화를 내며 책임지고 나가라고 했다. 모욕적인 말과 폭언이 있었다"고 해 논란을 키웠다.

나아가 경기 후 인터뷰에 나온 베테랑 선수들도 '폭언'에 대해 공감하는 멘트를 해 김 대행에 힘을 실어줬다. 김수지는 "폭언이 있었다. 우리가 느끼기에 조금 많이 불편한 자리였다"고 했다.

서남원 전 IBK기업은행 감독. (한국배구연맹 제공) © 뉴스1

하지만 뉴스1과의 통화에서 서남원 감독은 단언컨대 폭언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송화가 훈련 중 대답을 하지 않아서 그것과 관련해 강하게 이야기 한 적은 있지만, 욕설이나 폭언은 없었다"고 말했다. 세터 코치였던 김 대행에게 질책을 했지만 폭언이나 욕설은 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진실공방이 벌어졌지만, 쉽게 결론이 내려질 것 같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이미 서남원 감독은 경질됐고, 팀을 떠난 사람이다.

내부에서 어떠한 결론이 내려질지 모르지만, 구단과 감독대행은 떠난 지도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모습으로 팬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 임의해지 거부한 조송화, IBK 새 사령탑 선임도 난항

IBK기업은행의 상식 밖의 일처리도 비판을 받고 있다. 선수의 서면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임의해지(구 임의탈퇴)를 한국배구연맹(KOVO)에 신청했다가, 서류 미비로 반려돼 망신살이 뻗쳤다.

IBK 관계자에 따르면 조송화는 애초 구두로 임의해지에 합의했지만, 이후 마음이 바뀌면서 서면계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있다.

IBK 관계자는 "임의해지를 본인이 계속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이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단은 문제를 일으킨 조송화와 함께 갈 수 없다는 뜻을 확고히 한 만큼, 계약해지 등도 검토하고 있다.

IBK기업은행 세터 조송화. (한국배구연맹 제공) © 뉴스1

계약해지가 된다면 조송화는 자유신분선수(은퇴)가 된다. 만약 이렇게 되더라도 잔여연봉 지급 등을 두고 법적다툼이 벌어질 소지가 있다. 조송화는 2020-21시즌을 앞두고 FA 계약을 했고, 2022-23시즌까지 계약이 돼 있다.

안팎의 내홍을 겪는 기업은행이 새로운 수장을 구하는 것도 사실상 쉽지가 않다. 항간에 이미 내정된 사령탑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돌았지만, IBK는 부인했다.

구단 관계자는 "신속하게 새 감독을 선임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시즌 중이라 쉽지 않다.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다. 김사니 코치가 감독대행이 된 것도 그런 연유다. 팀을 나갔다 온 것에 대한 귀책사유는 분명히 있지만 구단도 팀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를 찾기 힘들어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단의 말을 종합해보면, IBK는 당분간 김사니 대행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여자배구 아닌 프로배구 전체에 닥친 위기

여자배구는 2020 도쿄 올림픽을 통해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안겼다, 하지만 이번 IBK기업은행 사태로 인해 싸늘하게 '팬심'이 식어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쉽게 봉합될 여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 김사니 대행을 선임한 IBK기업은행이 새 사령탑을 데려오고 김 대행을 내보내거나, 문제를 일으킨 조송화를 전격적으로 계약해지 처리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는다.

김사니 기업은행 감독대행이 23일 오후 인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1-2022 V리그 흥국생명과 기업은행의 경기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2021.11.2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김 대행은 "새로운 감독이 오면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구단은 "사퇴하는 것이 감독대행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지, 팀을 떠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추가 설명했다. 계속 논란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여자배구가 아닌 프로배구 전체의 위기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갑자기 높아진 인기 속에 가려져 있던 거품이 걷히고,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여자배구가 아닌 전체 프로배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도 "이번 사태가 안타깝다"면서 "이제 막 흥행이 시작된 V리그가 다시 침체기를 겪을 수도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

alexei@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