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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유도, 최초에 그녀가 있었다

김상윤 기자 입력 2021. 12. 06. 03:03 수정 2021. 12. 06.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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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女대표팀 첫 女감독 김미정
세계선수권·바르셀로나 올림픽 한국 女유도 사상 최초로 금메달
복근에 ‘왕’자 선명… “선수들에게 솔선수범 보여야죠” - 한국 유도 사상 최초로 여성 사령탑에 오른 김미정 여자유도대표팀 감독은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추구한다. 선명한 복근은 “노력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김미정 감독 제공

“훈련은 엄하게 하되, 쉴 때는 마치 엄마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MZ 세대’ 선수들한테는 그런 게 필요하다고 봐요.”

지난달 한국 유도 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김미정(50) 감독은 최근 본지 통화에서 앞으로 선수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얼마 전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김 감독은 “여성 지도자로서 ‘금남의 집’인 선수촌 숙소 관리에도 신경 쓰려고 한다”며 “여자 선수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겪는 신체 변화나 체중 조절 등 문제에 대해 편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김 감독에겐 항상 ‘선구자’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는 유도 여자 대표팀의 전성기를 연 스타 선수였다.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유도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스물셋이던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끝으로 은퇴했다. 김 감독은 “당시 여자 선수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선수를 그만두는 게 당연시됐고, 또 최고 위치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은 생각이 있어 미련 없이 일찍 은퇴를 택했다”고 떠올렸다.

그에겐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도 많았다. 유도 세계선수권자 출신인 김병주(현 공군사관학교 교수)와 1994년 말 결혼한 그는 1996년 말 대표팀 첫 여성 코치로 뽑혔다. 하지만 대회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가 입덧 등으로 임신 사실을 알게 돼 선임 한 달 만에 그만뒀다. 출산 및 육아와 유도를 병행하던 그는 2012년 다시 여자 대표팀 코치로 선임됐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코치로 나서 대표팀의 좋은 성적(금3·은1·동3)에 이바지했다.

김 감독이 이번에 국가대표 사령탑에 도전하게 한 데는 가족의 응원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남편이 ‘나이를 더 먹고 열정이 식기 전에 여자 대표팀을 이끌어보라’고 권했다”며 “내년 고3이 되는 막내를 비롯한 세 아이도 ‘우리는 알아서 잘 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 부부의 큰아들 김유철(22)은 남자 90㎏급 유도 선수로 올림픽 출전을 꿈꾼다.

한국 여자 유도는 1996 애틀랜타올림픽 조민선 이후 금메달이 없다. 특히 올해 도쿄올림픽에선 ‘노 메달’에 그쳤다. 김 감독은 “그동안 침체된 여자 대표팀을 쭉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여자 유도 부활’을 위해 가장 급한 과제에 대해 “체력과 정신력”이라고 답했다. 당연하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그가 그간 지도자 생활을 하며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해온 부분이기도 하다.

“전 초등학교 때 육상을 하고 중학생 때 투포환을 했어요. 고등학교에 가서야 유도 기술을 뒤늦게 배웠지만 어릴 때 다진 체력과 정신력으로 유도를 했죠. 은사님이 ‘네 오기가 금메달을 따게 했다’고 할 정도로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받쳐줘야 두려움을 없애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김 감독은 입촌 첫날 선수들에게 “지금까지 했던 거하곤 많이 다를 거야”라고 공언했다고 한다. 선수들이 “정말 장난 아니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훈련 강도를 높였다는 소문이 들린다.

“선수촌에서 훈련을 시켜보니 확실히 선수들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정신력을 기대하기엔 분위기도 너무 가라앉아 있었고요. 선수들에게 ‘너희 탓이 아니다. 앞으로 내가 책임질 테니 믿고 따라오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새 분위기는 많이 ‘업’된 것 같네요.”

김 감독이 그저 선수들을 다그치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그가 한 달여 전 찍어서 메신저 프로필에 내건 ‘보디 프로필’ 사진에는 나이를 무색게 하는 어깨·팔 근육과 복근이 선명하다. 선수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인 셈이다. 김 감독은 “무릎에 물이 차고 체중이 늘어서 헬스장에 다녔는데, 여성이고 동갑인 원장님이 ‘함께 준비하자’고 제안해서 찍게 됐다”며 웃었다.

3년 뒤 파리올림픽에서 명예 회복을 노리는 대표팀은 먼저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다. 김 감독은 “당장 메달보다도 여자 유도가 꾸준히 발전할 기반을 만들겠다”면서도 “목표는 당연히 커야 한다”고 했다.

“제 손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최소한 한 명을 만드는 게 대표팀 감독으로서 목표입니다. 그렇지만 당장 메달 따기에 급급해 선수들에게 채찍을 때리기만 하고 싶진 않아요. 저희 때도 올림픽 금메달 나올 때까지 10년은 걸렸거든요. 혹시나 제가 해내지 못하더라도, 이 선수들이 계속 커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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