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화의 사람 '人']아티스틱스위밍의 김연아를 꿈꾸는 허윤서(상)

정태화 2022. 1. 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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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티스틱스위밍의 특급 유망주 허윤서를 아시나요?’

불모지나 다름없는 아티스틱스위밍에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특급 유망주가 등장해 수영계가 술렁이고 있다. 만 16살을 지나 이제 여고 2학년이 되는 허윤서(압구정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국내 무대에서 허윤서의 또래 적수는 없다. 이미 신사중 2학년 때인 2019년 11월 대학생, 고등학생이 모두 참가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당당히 2위에 오르며 첫 태극마크를 달았고 3학년이던 2020년에는 대한체육회 ‘뉴스타운동본부’에서 선정한 16개 종목 ‘스포츠 유망주 2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22년 국가대표선발대회에서 쟁쟁한 대학 언니들을 제치고 단 3명뿐인 국가대표 선수로 고교생으론 유일하게 선발될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첫 일본과 중국을 따돌린 허윤서
2019년 8월 31일 국제수영연맹(FINA) 제1회 세계유스아티스틱수영챔피언십대회가 열린 슬로바키아 샤모린에 있는 엑스-바이오닉 아레나.

전 세계 36개국 13~15살의 어린 선수들이 참가해 신설된 창립대회에서 14살의 허윤서가 예선에서 156.3156점(규정종목 77.6824점, 자유종목 78.6332점)으로 12명이 오르는 본선에 5위로 진출할 때만 해도 ‘이변’ 정도로 치부하고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선에서 허윤서는 더욱 빛을 발했다. 어두우면서 슬프기도 하고 때론 전쟁의 느낌으로 역동적으로 파워풀한 ‘어둠의 여신’이란 음악에 맞춰 고난도 기술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마무리하자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다리를 곧게 펴고 최대한 높이 떠올랐다가 물속으로 내려가는 부스트를 하면서 순간적으로 멈추었다가 스핀을 하는 고난도 기술을 완벽하게 연출하자 박수 소리와 탄성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본선에서 기술의 난이도, 표현의 예술성에서 예선 때보다 더 원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157.6492점으로 예선보다 더 높은 점수로 5위 자리를 지켰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 아티스틱스위밍 허윤서의 이름을 국제무대에 각인시키기에는 더없이 충분했다.

무엇보다 허윤서의 5위 입상은 이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 아티스틱스위밍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아티스틱스위밍에서 변방국에 불과했다. 당연히 세계 최강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구권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는 비교불가에 가까웠고 심지어 일본과 중국도 ‘넘사벽’이었다.

하지만 허윤서가 이 불명예를 단숨에 깨뜨렸다. 일본의 나아이타 기요노(154.9724·8위), 중국의 얀 페이쉐(153.8999·11위)를 제치고 아시아 선수중 유일하게 톱 5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면서 처음으로 일본과 중국 선수에 앞서는 새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아티스틱스위밍 1세대로 국내 및 국제심판위원으로 활동하며 허윤서의 성장과정을 지켜 본 박지영 한국여성스포츠회 부회장은 “윤서는 기술을 습득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표현력이 좋아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며 “세계선수권대회는 솔로가 있지만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는 솔로가 없고 듀엣과 팀 경기가 있는 만큼 파트너와 어떻게 호흡을 맞추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18개월 만에 발레, 6살에 수영에 입문해
국내에서 한때 ‘수중발레’,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Synchronized Swimming)이라고 불렀으나 2017년 FINA가 예술성을 강조하고 대중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이름을 바꾼 아티스틱스위밍(Artistic Swimming)은 발레, 수영, 체조를 조화시켜 만든 종합예술의 스포츠다.

땅(마루)에서 리본, 로프, 후프, 곤봉 등으로 연기하는 리듬체조, 얼음 위를 활주하며 악셀 러프 등 각종 기술을 연기하는 피겨스케이팅과 마찬가지로 아티스틱스위밍은 물속에서 펼치는 다양한 동작으로 기술의 정확성과 예술성을 함께 평가한다.

따라서 아티스틱스위밍은 단순히 수영만 잘 한다고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는 없다. 음악에 맞춰 물속에서 자유롭게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고 몸과 얼굴에서 표현해 낼 수 있는 예술적 감수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듯이 허윤서는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 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의사인 아버지 허성호-차상희 씨의 고명딸로 2005년 태어난 그녀는 갓난아기나 다름없을 때부터 피아노와 발레에 입문했다. 어머니 차상희 씨가 예술과 체육에 최소한 한 가지 특기는 가져야 한다는 지론 덕택에 피아노는 수준급 실력의 어머니 영향을 받았고 발레는 외할아버지(차성찬·사업) 덕분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음악과 발레를 좋아해 항상 외손녀을 무릎에 앉히고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세계 유명 발레단의 공연 영상을 많이 들려주면서 자연스럽게 발레를 접하게 했던 것. 이 영향으로 만 2살도 되기 전인 18개월 만에 발레 수업을 받았다. 첫 발레 수업에 들어가 다른 언니들이 두 다리를 180도로 쫙 펴는 모습을 보고는 아무 스스럼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한참 동안을 그대로 동작을 유지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6살 때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물을 좋아한 어머니의 배려였다.

“발레와 피아노를 계속하면서도 여자아이가 쉽게 배울 수 있는 운동이 없을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어릴 때부터 물을 엄청 좋아한 것을 떠올려 수영을 시킨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어머니 차상희 씨)

가족과 함께 풀장에 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물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은데다 어머니를 따라 실내수영장을 가서도 아예 킥판도 없이 혼자서 발차기를 하고 ‘물 밑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며 자신의 키의 2배도 넘는 수영장 바닥까지 내려간 적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영어유치원을 다니면서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운 덕분에 영어 회화가 능통하고 부모님을 따라 국내외 여행을 하는 동안 그 지역의 미술관 박물관 등을 찾은 것도 윤서가 예술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해 준 요인이 됐다.

특히 어릴 때 프랑스 파리로 여행하는 동안 매일 루브르미술관을 가서 지겨워하지 않고 세계의 명작들을 뚫어지게 감상하는가 하면 국내에서도 국립경주박물관, 예술의 전당 고호전 등 주요 박물관이나 미술전에도 데리고 가면 그렇게 좋아했다고.

결국 허윤서는 이미 6살 이전에 부모들로부터 아티스틱스위밍을 위한 기초를 물려받은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시작 6개월 만에 첫 공식 대회 출전
허윤서가 처음으로 아티스틱스위밍에 입문을 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2012년 3월 김영채 전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을 만나면서였다. 김영채 전 회장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여성 선수로는 최초로 하이다이빙에서 은메달을 따낸 여성 수영계의 대모다.

이 당시 김 전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딴 YC수영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때는 아티스틱스위밍이라고 부르지 않고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이라고 부를 때였다.

“처음에는 윤서가 너무 어려 수영을 완전히 배우고 난 뒤에 아티스틱스위밍을 해야 된다며 거절했는데 잠영을 시켜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보다 키도 더 크고 오랜 수영 경력을 가진 언니들도 50m 풀에서 잠영을 하면 중간에 힘이 들어 한 번쯤은 고개를 물 위에 드러내는데 윤서는 50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잠영을 했습니다. 더구나 옆 풀에 수심이 5m나 돼 밑이 환하게 보여서 성인들도 겁이 나서 뛰기를 주저하는 1m 스프링보드 다이빙대에 가서 너무 재미있다고 하며 몇 번씩이나 뛰어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런 아이는 큰 선수가 되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김영채 전 회장)

이뿐만이 아니었다. 수온이 26~27도로 따뜻해도 1~2시간 이상 물에서 훈련하면 한기를 느껴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더운물로 샤워를 하곤 하는데 윤서는 그냥 물속에서 나오지도 않고 코치들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렇게 첫 아티스틱스위밍에 입문한 뒤 6개월만인 이해 9월 회장배대회에 첫 출전, 듀엣에서 4위에 오른 데 이어 이듬해인 2013년 제6회 제주한라배전국수영대회에서 솔로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인 2014년 7월 MBC배 전국수영대회에서 솔로 부문 첫 1위를 한 뒤 이후부터는 또래 적수가 없는 독주를 이어가면서 그동안 스타 명맥이 끊겼던 아티스틱 스위밍계의 대표주자, 특급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아티스틱스위밍을 시작한 지 불과 2년 만으로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정태화 마니아타임즈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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