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축구가 미국에서 인기 없는 이유②

김식 2022. 1. 2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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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알아본 축구가 미국에서 인기를 못 얻는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축구는 시간 계산이 부정확하다. 둘째, 미국인들은 무승부로 끝나는 경기를 싫어한다. 셋째, 점수가 많이 나는 경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세계인이 제일 사랑하는 스포츠인 축구가 유독 미국에서는 그러한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본 칼럼에서 언급한 순서는 임의로 정한 것이다. 즉 순서가 앞에 있어도 더 중요한 이유는 아니라는 얘기다.

넷째, 축구는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큼 격렬하지 않다. 스포츠 관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 접촉(physical contact)은 미국 스포츠 팬들에게 중요하다. 다시 말해 미국인들은 경기 중 선수들 간에 접촉이 많고, 과격한 경기를 좋아한다는 말이다.

공격성이 증가할수록 시청률도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이, 스포츠 팬들은 폭력에 대한 갈증이 있다. 미국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는 미식축구(NFL)는 덩치가 큰 선수들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몸을 부수는 것과 같은 강력한 태클에 팬들은 환호하고 즐거워한다. 격렬한 경기를 보면서 그들은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간접적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거친 몸싸움과 스피드로 유명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색다른 재미를 팬들에게 제공한다. 경기 중 자주 벌어지는 강한 바디체크로 자극받은 선수들은 종종 주먹다짐을 벌인다. 이러한 싸움은 부상당한 동료에 대한 보복, 팀의 단결, 경기 흐름의 전환, 상대방을 위협하기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반복하여 나타난다.

NHL은 팀마다 주먹질이 전문인 ‘꾼’들을 보유하고 있다. 인포서(enforcer)로 불리는 이들은 하키 실력은 떨어지지만 큰 체구와 거친 인상으로 무장하고 팀의 싸움을 도맡아 한다. 인포서는 상대의 거친 플레이를 저지하고, 상대 팀 스타 선수에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 [USA투데이=연합뉴스]

NHL은 장갑을 벗어 던지고 합의하에 선수가 1대 1로 벌이는 맨 주먹질을 용인한다. 싸움이 시작되면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와 경기장 분위기는 한껏 올라간다. 심판은 선수가 위험에 빠지거나 빙판에 넘어질 경우, 혹은 주먹이 나오지 않고 시간만 끄는 경우 싸움을 중지시킨다. 주먹질에 가담한 선수는 단지 5분 퇴장 페널티만 부과된다. 하지만 넘어진 선수를 때리거나 스케이트 날 같은 위험한 도구를 이용한 경우에는 벌금 및 출장 정지 등의 징계가 내려진다. 마치 무슨 격투기 종목의 규칙 같지 않은가?

싸움을 근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은 팬들이 이런 주먹다짐을 즐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싸움을 도맡는 인포서(enforcer)가 상대방 선수를 링크에 눕히면 관중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스타 대접을 해준다. 하키경기보다 주먹질이 더 재미있다는 팬들이 많은 곳이 바로 NHL이다.

야구팬들은 투수가 시속 100마일의 강속구를 타자 머리에 던지고, 이어 벌어질 벤치 클리어링으로 양 팀의 선수들이 모두 나와서 뒤엉키는 것을 기대한다. 나스카(NASCAR) 팬들은 자동차의 화려한 충돌에 열광한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포츠 중 하나가 치열한 격투로 인해 피가 낭자한 종합격투기(MMA)다.

이런 미국 스포츠 팬들에게 축구는 체스같이 밋밋하다. 액션도 부족하고, 점수도 조금 나고, 극적인 역전도 드문 축구는 미국인들 눈에 지루한 전술(예를 들면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0-0을 목표로 전원 수비만 하는 경우)을 가진 스포츠일 뿐이다.

다섯째, 공격적이고 피지컬한 스포츠 문화를 좋아하는 미국에서 작은 접촉에도(혹은 접촉이 전혀 없었는데도)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축구 선수는 남자답지 않은 겁쟁이로 보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러한 행위를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흔히 플라핑(flopping)이라 칭한다. 플라핑 혹은 다이빙(diving)은 선수가 발레리나처럼 팔을 공중에 뻗고 넘어지는 속임 동작으로 심판의 파울 콜을 유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선수는 페널티 킥을 얻거나, 시간을 지연하고, 상대 선수에게 카드를 안길 목적으로, 혹은 동료 선수들의 휴식을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그라운드에 픽픽 쓰러진다.

블리처 리포트에서 4위를 차지한 네덜란드의 축구 스타 아르연 로번은 대표적인 다이버(diver)다. 사진은 2014 월드컵 16강전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로번이 넘어지는 장면. 이 경기에서 로번은 다이빙을 3번 했고, 결국 후반 추가 시간에 페널티킥을 끌어내 네덜란드는 2-1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 후 로번은 전반전에 한번의 다이빙을 했다고 시인했다. [연합뉴스]

플라핑은 축구에서 흔하다. 흥미로운 점은 문화에 따라 이러한 행동을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영어 문화권은 선수의 과장된 행위를 ‘기만 행위(act of deception)’로 규정하지만 라틴 문화권은 이를 ‘기만의 예술(art of deception)’로 해석한다. 즉 누군가는 플라핑을 보고 격분하지만 이를 경기의 일부로 보는 문화권도 있다.

남유럽과 중남미 국가 출신 선수들은 확실히 플라핑에 능하고 이를 더 많이 시도한다. 2011년 미국의 스포츠 매체 블리처 리포트는 다이빙을 가장 잘하는 선수 15명을 선정했는데, 거의 항상 다이빙을 한다는 아르헨티나의 앙헬 디 마리아가 1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포르투갈의 호날두와 나니 그리고 브라질의 네이마르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며, 리스트의 73%를 남유럽과 중남미 국가 선수들이 장악했다.

미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와스프(WASP, 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는 엄격한 교육과 예의범절을 강조한다. 따라서 정직함이 중요한 미국 사회에서 축구의 플라핑은 스포츠맨십에서 벗어난 속임수일 뿐이다. 미국의 스포츠 팬들은 “연기가 보고 싶을 때는 경기장이 아니라 극장에 간다”고 항변한다.

축구는 ‘아름다운 경기(the beautiful game)’로 불린다. 하지만 그림 같은 장면을 종종 연출하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아름다운 경기는 플라핑으로 인해 빛을 잃고 있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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