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 당돌한 탁구신동 "박새로이 말고 '이승수 스타일'이라 불러주세요"[진심인터뷰]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스포츠 현장에서 가슴 뛸 일이 수없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백미는 예고없이 등장하는, 보석같은 어린 재능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지난 1월, 전통과 권위의 남녀탁구종합선수권대회였다. '이승수'라는 이름 세 글자가 경기장 곳곳에서 회자됐다. 1m40 남짓한 키, 열한 살 이승수(대전 동문초)는 첫 128강에서 '카데트 톱' 최지욱(대광중)을 3대0(11-9, 11-6, 11-8)로 완파하더니 64강선 실업팀 형을 3대0(12-10, 11-8, 11-8)으로 돌려세웠다. 32강서 '국대 맏형' 이상수(32·삼성생명)를 만났다. 그런데 뜻밖에 듀스 대접전까지 펼쳤다. 비록 0대3(10-12, 11-4, 11-9)으로 패했지만 기죽지 않았다. 목표를 묻는 '대선배' 이상수를 향해 '패기만만 초딩' 이승수는 "세계 1위!"를 외쳤다.

새학기 5학년이 된 이승수는 한체대 선수 출신 아버지 이수기 코치가 운영하던 성남의 탁구장을 떠나 '탁구 명문' 대전 동문초등학교로 전학왔다. 대전시체육회의 적극적인 영입 노력이 통했다. 아버지 이 코치는 대전시 탁구클럽 '해피핑퐁' 지도자로 일하게 됐다. 동산고 체육관에서 아버지는 생활체육 동호인들을 가르치고, '신동남매' 이승수와 예서(8)는 탁구 국가대표의 꿈을 키운다. 봄기운이 피어오르는 3월말, 전국남녀종별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대전 동산고 체육관에서 형들과 포어드라이브 훈련에 몰입 중인 '막내 에이스' 이승수의 발놀림은 더없이 경쾌했다.

▶"탁구는 계급장 떼고 선수 대 선수로 붙는 것"

2011년생 이승수는 2019년 교보컵 초등대회 1~2학년부 단식 우승 이후 동급 최강으로 인정받아온 될 성 부른 떡잎이다. 지난해 초등연맹 회장기 에이브로스배 대회에서 5~6학년 형들을 줄줄이 꺾고 우승했고, 유소년연맹 주최 주니어오픈 11~13세부 1차전 우승, 왕중왕전에선 준우승했다. 파워, 기술, 체격과 구력을 모두 요하는 탁구에서 초등학생이 실업선수를 이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아홉 살 때 대학생 언니를 돌려세우며 스타덤에 오른 '탁구신동' 신유빈 사건 이후 오랜만에 탁구계가 다시 술렁였다.

'21살 위 베테랑 국대' 이상수와의 맞대결, 정작 이승수는 "하나도 쫄지 않았다"고 했다. 경기 후 칭찬에도 "별 느낌이 없었다"고 했다. "그저 아쉬웠어요. 1게임 듀스를 이기고, 한 세트 더 따고, 더 타이트하게 했어야 하는데…. 이겼으면 좀 더할 수 있는데… 지고 나서 그 생각밖에 안났어요"라고 했다. "물론 잘 하는 형이지만 어차피 탁구는 선수 대 선수로 계급장 떼고 붙는 거잖아요. 실력이 중요한 거죠."

'아테네 챔피언'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진단한 대로 '타고난 강심장'이다. 종합선수권 스타덤 이후 채널A '슈퍼DNA 피는 못속여', tvN '올탁구나' 등 예능 프로그램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새학기 '전학생' 승수는 학교에서 스타가 됐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연예인이라면서 막 사인받으러 와요"라며 싱긋 웃는다.

열한 살에 스타가 되는 기분은 어떨까. "뭐 딱히 좋거나 그런 건 없어요. 똑같아요. 재미있기도 하고, 자신감이 더 생기고, 탁구를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건 있지만 솔직히 부담은 전혀 없어요. 이기면 좋고, 져도 뭐 그만이고…."

▶"목표는 올림픽 개인단식 금메달 2개"

이승수는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한치 망설임 없이 '중국 에이스' 마롱을 꼽았다. "판젠동이 잘하긴 하지만 저는 마롱이 좋아요. 마롱은 올림픽 금메달을 2번 따고, 세계선수권도 3연패했잖아요. 나이도 있는데 계속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게 좋아요. 그렇게 잘 하는데 파이팅도 크게 하고 겸손하기까지 하고 정말 멋있어요."

이승수는 어리지만 주관이 뚜렷한 선수다. 목표를 묻는 질문에 "마롱 처럼 올림픽 단식 금메달 2개"라며 두 손가락을 펴보였다. 10대 또래들을 많이 봤지만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계획이 서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2년 후 2024년 파리올림픽 때는 중1이니까 일단 그때쯤 국가대표가 되는 게 목표예요. 2028년 LA올림픽 땐 고등학생이니까 첫 올림픽에 도전하고, 2032년 올림픽, 스물한 살 때 첫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그리고 그 다음 올림픽도 나가고 싶고. 꼭 단식 2연패를 하고 싶어요. 금메달 하나도 대박이지만 저는 역사에 진짜 오래 남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금메달 5개는 불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2개는 뭐…."

이승수는 31일부터 내달 6일까지 광주여대시립유니버시아드체육관에서 열리는 전국남녀종별탁구선수권에 초등부(U-13)가 아닌 중등부 (U-16)로 '월반'해 출전한다. "중학교 형들하고 붙게 되는데, 다 이기고 싶어요. 긴장도 되지만 자신 있어요. 해봐야죠"하며 동그란 눈망울을 반짝였다. "종합선수권을 통해 배운 건 집중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실업팀이든 누구든 '하면 된다'는 게 정말 재미있고 짜릿해요."

강력한 백 드라이브가 장기인 이승수는 요즘 포어드라이브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아버지 이 코치는 "어릴 때 백 훈련을 많이 했다. 포어드라이브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있고, 밸런스를 위해 포어드라이브도 열심히 훈련중"이라고 설명했다.

탁구대 앞에만 서면 눈빛이 돌변하는 열한 살 소년. 화끈한 탁구 스타일처럼 시원시원한 인터뷰, 똘망똘망 코멘트는 인상적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탁구 외에도 좋아하는 게 많다. "영화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해요. 그런데 수학은 진짜 최악이에요. 곱셈, 나눗셈이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수학 빼곤 전과목 다 '매우 잘함'이에요."

이어진 사진 촬영, 유독 짧은 헤어스타일에 시선이 머물렀다. 아버지 이 코치는 "주위에선 제가 시킨 줄 아는데, 승수가 원하는 스타일이에요. 탁구할 때 거슬린다고 더 짧게 하려는 걸 말리고 있어요"라고 했다.

"이런 머리 스타일 하려면 잘 생겨야 하는데" 섣부른 농담에 '탁구신동'은 "운동 잘하면 잘생겨지더라고요"라고 맞받아쳤다. "박새로이(드라마 이태원클라쓰) 스타일인데" 했더니 이내 치고 들어오는 묵직한 드라이브 한방. "박새로이 말고 '이승수 스타일'이라고 불러주세요." 순식간에 0대2 완패. 할 말을 잃었다. 이 당돌하고 똘똘한 탁구소년의 내일이 진심 궁금해진다.
대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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