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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40km/h 던지는 투수가 100명" 고교야구 '스피드 인플레이션' 가속화 [배지헌의 브러시백]

배지헌 기자 입력 2022. 05. 20. 09:22 수정 2022. 05. 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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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강속구 투수의 기준이었던 140km/h, 더는 강속구 기준 아니다
-올해 고교야구는 강속구 우완 풍년..140km/h대 투수 넘쳐난다
-신체조건 향상, 야수의 투수 전향, 최신 훈련법 도입해 구속 향상 효과
-구속 외에 회전수, 변화구, 커맨드 등 다른 요소 중요성 거쳐
서울고 김서현. 150km/h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다(사진=베이스볼 코리아)

[스포츠춘추=목동]


한때 한국야구에선 140km/h가 강속구 투수의 척도였다. 신인투수가 어쩌다 스피드건에 ‘140km/h’만 찍어도 코칭스태프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면서 큰 화제가 됐다.


옛날야구에서 ‘140km/h’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1992년 고 이종남 기자가 쓴 신문 칼럼의 한 대목에 잘 나타난다. ‘아따! 볼 빠르다고 다 투수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오프시즌 동안에는 스포츠신문에서 유행어처럼 등장하는 말이 ‘시속 140km대’다. 유망주다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140km를 넘나드는 직구스피드를 가졌다는 얘기다. 그게 사실이라면 국내야구의 수준이 그만큼 향상됐다는 뜻일 텐데 실제 프로경기에서 140km가 넘는 스피드를 자랑하는 선수는 몇이나 되던가.”


“140km/h 던지는 투수가 100명” 올해 고교야구는 파이어볼러 풍년

고교 최대어 심준석과 김서현(사진=스포츠춘추 DB)

그러나 30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140km/h는 더는 강속구 투수의 기준이 되지 못하는 시대다. 올시즌 KBO리그 투수 평균구속은 144km/h. 우완 오버핸드만 따로 떼어놓고 집계하면 144.9km/h다. 2015년 141.3km/h였던 평균구속이 해마다 빨라져 어느새 140km/h 중반에 도달했다.


여기엔 강속구 외국인투수 영입과 유희관 은퇴의 영향도 있겠지만, 리그 전반에 걸쳐 투수들의 공이 빨라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례로 데뷔시즌 평균 140.9km/h를 던졌던 롯데 박세웅은 올해 146.6km/h를 뿌리는 광속구 투수가 됐다.


키움 안우진도 첫해 148.4km/h에서 계속 빨라져 이제 평균 152.8km/h를 던진다. 신인 시절 평균 138.1km/h 투수였던 키움 하영민은 올해 145.5km/h를 기록 중이다. ‘투수의 구속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속설이나 ‘구속 향상과 제구력은 반비례한다’는 통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비슷한 흐름은 아마추어 야구에서도 나타난다. 몇 해 전만 해도 고교 경기에서 스피드건에 140km/h 이상을 찍는 투수가 나오면 스카우트들의 관심이 일제히 집중됐다. 그러나 지금은 140km/h 정도로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140km/h 이상 던지는 투수가 너무 흔해졌기 때문이다.

세광고 에이스 서현원(사진=베이스볼 코리아)

5월 19일 개막한 제76회 황금사자기 대회에서도 올라오는 투수마다 줄줄이 140km/h 이상 빠른 볼을 던졌다. 마산고-세광고 경기에선 최고 147km/h을 뿌리는 마산고 이한서와 슬라이더 구속이 140km/h인 서현원이 대결했다. 강릉고-전주고 경기에서도 양 팀 2학년 선발들이 가볍게 140km/h 중반을 던졌다.


“올해 지명대상 투수 중에 140km/h 이상 던지는 우완 투수만 거의 100명 정도 된다.” 한 지방구단 스카우트의 말이다. 과장인가 싶어 다른 구단 스카우트에게 물어봐도 “거의 그 정도 될 거다. 140km/h 던지는 투수가 팀마다 최소 2~3명은 있다”고 했다.


신인드래프트는 10명씩 11라운드에 걸쳐 총 110명을 뽑는다. 110명 뽑는 드래프트에 140km/h 이상 던지는 지명 대상자가 100명이다. 야수와 대학 선수를 감안하면, 140km/h대를 던지면서도 프로에 지명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구속의 상향 평준화, 스피드 인플레이션 현상이다.


140km/h을 넘어 150km/h대를 던지는 투수도 많다. 덕수고 심준석, 서울고 김서현, 경남고 신영우 등이 대표적인 150km/h대 파이어볼러. 라온고 사이드암 박명근은 173cm 작은 키로 150km/h 광속구를 뿌린다. 이제는 140 후반, 150km/h은 던져야 강속구 투수로 관심을 받는 분위기다.


신체조건 좋아진 고교 투수들, 최신 훈련법 받아들여 스피드 향상

강릉고 학생선수들이 운동역학 연구소 SSL를 찾아 생체 데이터 관련 측정을 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김근한 기자)

여러 스카우트와 아마야구 관계자는 고교 투수들의 구속 향상 비결로 ‘신체조건’을 언급한다. 지방구단 스카우트는 “최근 몇 년 새 고교 투수들의 체격과 신체조건이 크게 좋아졌다. 요새는 180cm는 기본이고 190cm 이상인 선수도 많다. 올해 1라운드 후보군만 봐도 대부분 180cm 후반대 장신”이라 전했다.


수도권 팀 스카우트는 “이런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거의 인종 개량에 가까운 수준으로 선수들의 체격이 좋아졌다. 어떤 선수는 멀리서 보면 외국인 선수처럼 보인다”면서 “과거 몇몇 장신 선수 사례처럼 키만 큰 게 아니라 몸의 밸런스나 스피드, 운동능력도 대부분 뛰어나다”고 했다. 예전엔 프로야구에서만 하던 트레이닝을 고교 선수들이 하면서 근력, 가동성 등이 향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수 유망주의 투수 전향도 강속구 투수가 많아진 원인. 앞의 수도권 스카우트는 “올해 우완 투수 자원은 차고 넘치는데 좌완투수, 야수 자원은 부족하다”면서 “야수 자원들이 일찌감치 투수로 전향해서 생긴 현상”이라 했다.


19일 경기 승리투수가 된 마산고 이한서는 2학년 때까지 타자로 뛰다 투수로 전향한 사례다. 지방구단 스카우트는 “올해는 포수 자원과 휘문고 김민석 정도를 제외하면 1라운드에서 뽑을 만한 야수 자원이 마땅치 않다. 너무 우완투수 쪽에 쏠리는 경향이 있어서 아쉽다”고 했다.

강릉고 학생선수들이 운동역학 연구소 SSL를 찾아 생체 데이터 관련 측정을 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김근한 기자)

야구 과외와 새로운 훈련법의 도입도 구속 인플레를 불렀다. 한 지방 야구교실 관계자는 “최근 대부분의 야구 아카데미에서 미국 드라이브라인의 훈련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우리도 웨이티드 볼과 플라이오케어를 사용하고, 투수가 의도를 갖고 공을 강하게 던지는 훈련을 진행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새로운 훈련법을 독학하는 선수도 많다. 고교 야구부에 프로 출신 젊은 코치가 많아지면서 프로구단 훈련법을 고교 선수에게 전수하기도 한다. 그 결과 다른 시대였다면 130km/h 후반대에 머물렀을 투수들이 140km/h를 가볍게 던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수도권 팀 스카우트는 “전반적인 스피드 상향 평준화로 이제는 스피드가 아닌 다른 능력의 중요성이 커졌다”며 “과거에는 공만 빠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명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공만 빨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수도권 스카우트도 “같은 140km/h라도 회전수나 회전효율 등을 따져본다. 변화구 구사능력, 커맨드, 캐릭터 등 과거에는 구속보다 뒷전이었던 여러 부면을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아따! 볼 빠르다고 다 투수여!’라는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140km/h 던진다고 다 좋은 투수가 아니다. 이제는 그 이상이 요구된다. 구속 인플레 시대가 가져온 변화다.

배지헌 기자 jhpae117@spoc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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