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근육 없는 오른팔로 버틴 10년..KT 안영명, 현역 은퇴 최종 결정[스경x인터뷰]

김은진 기자 2022. 6. 15. 17: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른손 투수 안영명(38·KT)은 오른팔에 콤플렉스가 있다. 누군가 오랜만에 만나 “잘 지내냐”며 오른 팔을 잡으면 습관적으로 얼른 피하곤 한다.

안영명의 오른팔에는 근육이 거의 없다. 10여년 전 어느날, 갑자기 가벼운 웨이트 기구조차 들지 못하게 되면서 알게 된 병명은 상완신경총 손상이었다. 신경 손상으로 오른 팔에 혈액 순환이 되지 않는 증세에 안영명은 군 입대와 함께 2013년 조용히 수술을 받았다. 오른팔과 연결되는 신경을 누르고 있던 목의 근육을 잘라내는 수술이었다. 처음 발병 당시 “이제 야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에 오기로 버틴 안영명은 수술 하면서도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듣고 더 독기를 품었다. 매일 팔을 단련시키며 10년을 버텨왔다.

보란듯이, 수술 이후 안영명은 최고의 시즌을 몇 번 보냈다. 한화에서 뛴 2015년에는 6년 만에 두자릿승수(10승)를 거뒀고 2018년에는 중간계투로 8승(2패) 8홀드를 기록하며 한화의 가을야구 진출을 이끌었다. 한화에서 방출된 뒤 KT에서 다시 출발한 2021년에는 역시 중간계투로 알찬 활약을 하며 KT의 첫 우승에 힘을 보탰다.

좋았던 시즌에는 구속이 시속 150㎞ 가까이 올라가며 강력한 구위로 던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다시 구속이 10㎞ 정도 느려지고 힘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9년 전 수술받으며 “재발할 것”이라고 했던 안영명의 오른팔은 2년 이상 지속적으로 버티지를 못했다. 지난해 좋았던 안영명은 올해도 다시 어깨의 힘이 떨어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안영명은 지난 5월15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4월27일 1군으로 가서 4경기에서 3.1이닝을 던진 뒤 고졸신인 박영현이 등록되면서 2군으로 다시 이동하게 됐다. 엔트리에서 제외된 날 안영명은 조용히 감독실을 찾았다.

안영명이 지난 10년 가까이 함구하고 있던 오른 어깨의 비밀을 아는 이는 야구계에도 거의 없다. 가족 외에는 알리지 않았던 이야기지만, 이강철 KT 감독은 알고 있다. 처음 증세가 생겼을 때 당시 소속 팀이었던 KIA의 투수코치로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엔트리 제외와 함께 더는 1군에서 뛰기 어려우리라고 예감한 안영명은 조심스럽게 이강철 감독에게 은퇴 의사를 전했다. 안영명이 그동안 어떻게 버텨왔는지 잘 알기에 이강철 감독은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후 한 달이 지난 15일 오후, 안영명은 모든 마음을 정리하고 수원 KT위즈파크를 찾아 이강철 감독과 구단에 정식으로 마무리 인사를 했다. 안영명은 20년 간의 선수 생활을 마치기로 최종 결정했다.

안영명은 “지금도 팔이 아픈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은퇴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만큼 상태는 좋다. 그런데 던지는 힘이 없다. 팔이 충전돼 있어야 하는데 1년 잘 하면 다음해 뚝 떨어지고 그런 상황이 반복돼왔다. 다 핑계인 것 같기는 하지만…이제 더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1년 조금 넘게 뛴 KT에서도 안영명은 후배 투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은퇴를 만류하는 후배들과 만나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이미 가졌다. 안영명은 “KT에서 1년밖에 있지 않았는데 후배 투수들이 많이 의지해주고 좋아해줬다. 그래서 이렇게 중간에 후배들 두고 나가게 된 것이 정말 많이 미안하고 가장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아무리 웨이트를 해도 안영명의 오른팔에는 근육이 생기지 않았다. 아프지만 않을 뿐 왼팔과 완전히 달라져버린, 근육 없는 오른팔로 던져온 안영명은 이제 좀 쉬려고 한다. 오른팔로는 들어안아줄 수도 없었던 세 자녀와 당분간 충분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안영명은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있는데 시원한 쪽이 더 큰 것 같다. 후회는 없다. 부족했던 20년이었는데 그래도 내 능력보다 오랜 시간 야구했고 그 부족함에 비해 모두에게 사랑받는 선수였던 것 같다. 그동안 받은 은혜를 앞으로 어떻게 돌려드릴지에 대해 차츰 생각하면서 마음 속의 뜨거웠던 열정을 조금씩 식히면서 지내보겠다”고 말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