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스포츠한국

[당객열전] 성남을 대표한 '재야의 고수' 고상운

홍성완 기자 입력 2022. 08. 05. 17:19 수정 2022. 08. 05. 17:20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팀서 방출 아픔 딛고 우승 향해 다시 '도전'
프로당구 선수 고상운이 스트로크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당구가 본격적으로 스포츠 산업으로 발전하기 이전인 1990년대까지는 각 지역마다 정식 선수는 아니지만 선수급 실력을 자랑하는 '재야(在野)의 고수'들이 즐비했다. 

2000년 이후 3쿠션 세계선수권이나 월드컵대회가 국내에서 개최되는 등 본격적으로 당구 붐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로당구가 출범하기 전만 해도 아마추어 당구 선수로 등록해도 생계가 막막해 본격적으로 선수 활동에 뛰어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각 지역의 도시를 중심으로 은둔형 고수들이 동호회 대회나 오픈 대회를 통해 종종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성남시는 재야의 고수들이 많은 편이었다. 엄상필, 김남수, 이미래, 김상아를 비롯해 이종주·임정숙, 신기웅‧오수정 부부 등이 성남시에서 아마추어 강자로 활동했다. 

PBA가 출범하기 전 이들과 함께 명성을 얻은 선수가 바로 고상운(40‧휴온스헬스케어레전드) 선수다. 비록 PBA에서는 아직까지 4강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으로 크게 두각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당구의 메카'라고 부를 만한 성남시의 당구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한 선수였다.

성남시를 대표하던 재야의 고수 고상운을 서울 강남구 브라보캐롬클럽 PBA스퀘어점에서 만났다.

◆ 아버지의 임종, 그리고 당구인이 되기 위한 결심

고상운은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당구장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재미 삼아 당구나 한 번 쳐보자고 간 당구장에서 그는 당구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구 인생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들하고 다 같이 당구를 한 번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당구장에 갔어요. 그냥 너무 재미있었어요. 당구에 빠지면 잠들기 전에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다고 하잖아요. 제가 정말 그랬어요. 머릿속에서 당구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죠. 자고 일어나면 '당구장 가야지', 학교 끝나면 '당구장 가야지'…. 하교 이후 집에 가기 전에 늘 당구장에 들렀어요. 정말 푹 빠져버렸죠. 당연히 성적은 안 좋았습니다.(웃음)"

프로당구 선수 고상운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고상운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자 더욱 당구에 빠져들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 본격적으로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용돈은 당구장이나 다른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내기 당구도 즐겼다. 그러다가 26살 때 성남시 당구동호회와 연을 맺고 새롭게 당구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성남시 동호회에는 지금 PBA·LPBA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동호인 대회에서도 몇 차례 우승도 하면서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성남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엄상필 등 정상급 고수들과 함께 실력을 키워 온 고상운은 25살 때 이미 경기도 남양주에서 열린 동호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참가하는 동호인 대회마다 상위권에 올랐다.

"성남시 동호회에서 오래 활동했어요. 그러다가 30살 초반에는 다른 일도 하면서 취미로 가끔씩 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동호회 활동을 하다 보니 다른 지역 동호회 사람들하고도 자연스럽게 친분이 맺어졌죠. 그렇게 친분을 맺은 동호인 중에서 가끔씩 동호회 대회를 나가자고 해서 몇 번 나가기도 했어요. 동호회에 소속이 아니어도 특정 당구장 소속으로 나갈 수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용병 같은 생활을 했었죠."

고상운은 당구를 너무 사랑했지만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그는 30살 무렵 당구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양한 일을 전전하면서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고상운의 마음 속에는 항상 당구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당구가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전문 당구 선수가 되기 전에는 일상 생활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어요. 항상 당구 생각이 났거든요. TV를 켜면 자연스럽게 당구 방송만 봤고요. 동호인 활동 10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데 적어도 당구와 관련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죠. 그리고 생업으로 택한 서비스업에서 종사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혼자서 많은 고민을 했죠. PBA가 출범하기 전 당구 선수는 두 가지 선택사항이 있었어요. 정말 돈 없이 생활하면서 당구를 치거나 아니면 다른 일을 하면서 당구를 겸하거나.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가끔 동호인들하고 당구를 치고, 다시 다른 일을 하는 이런 생활을 반복했죠. 7~8년 전에도 사실 본격적으로 다시 당구를 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때도 포기했어요. 당시 아버지가 편찮으시기도 했고 현실의 벽이 높게만 느껴졌거든요."

마음의 방황을 이어가던 고상운이 당구 선수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다.

"2017년 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부족하더라도 그냥 이제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자'라고 결단을 내렸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당구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이은석 성남시당구연맹 회장이 직접 찾아와 고상운에게 선수 등록을 권한 것이다. 본격적인 당구 선수의 길이 열린 것이다.

프로당구 선수 고상운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2018년 화려한 등장과 PBA 직행 그리고 아쉬운 성적

고상운은 2018년 6월 선수로 등록하자마자 첫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바로 그해 7월 춘천에서 열린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전국당구대회'에서다.

그는 선수 등록 직전인 2018년 1월에 열린 '제7회 대구 캐롬연합회장배 국제식 3쿠션대회'와 2월에 열린 '2018 인제 캐롬3쿠션 전국 당구아마추어 최강자전'에서 잇따라 정상을 차지했다. 그때부터 이미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2018년 화려한 성적에 힘입어 그의 랭킹포인트는 꾸준하게 상승했다. 이에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기에 이른다. 그 덕에 인지도도 꾸준하게 올라간 그는 2019년 PBA 출범과 함께 곧바로 프로생활을 선언했다. 주위의 기대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선수로 등록하고 처음 전국대회에 나가자마자 우승했어요. 동호인 대회 때도 첫 시합에 나가서 우승했고요. 저에게 처음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대회마다 우승하는 기분 좋은 징크스였습니다. 그런데 PBA에서 그 징크스가 깨졌어요."

고상운은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에 비해 지난 4년 간 PBA 성적은 아쉽기만 했다. PBA 출범 첫 해 5차 대회인 '메디힐 PBA 챔피언십' 4강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다. 그 이후에는 16강에 두 번 정도 오른 것이 전부일 뿐 대부분 32강 이전에 탈락하고 말았다.

"제 스스로 못했다고밖에 할 말이 없어요. PBA에 와서 시합을 하면 연습 때보다 잘 안 됐어요.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죠.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2019년 5차 대회의 4강 탈락이 가장 기억에 남기도 해요. 엄상필 선수한테 졌거든요. 성남시 동호회 형님이라 친분도 있었고, 늘 제 앞에서 끌어주었던 선배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이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 때 준우승만이라도 차지했다면 부담감이 덜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2년간 SK렌터카 팀 소속이었던 고상운은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결국 팀에서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곧바로 휴온스헬스케어레전드팀이 그를 영입하면서 8월 5일부터 열린 팀리그에서 김세연, 하비에르 팔라존, 김봉철, 최혜미, 오성욱 선수 등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SK렌터카에서 방출됐을 때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금방 털어냈어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잘했으면 방출되지 않았겠죠. 제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절 다시 휴온스에서 뽑아줬을 때는 정말 좋았어요. 사실 팀에 있다가 방출되는 것과 계속 팀소속을 유지하는 건 차이가 커요. 그래서 누구보다 대표님한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사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생각에 팀리그를 앞두고 부담감도 많아요. 이 부담감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최종적으로는 우승으로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요. 성적으로 보여주는 것 말고는 감사함에 답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SK렌터카에서 팀 생활을 오래해 온 만큼 그때 경험을 살려 팀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프로당구 선수 고상운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후진 양성에 큰 관심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팀성적에 비해 개인 성적이 부진했던 고상운은 고된 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동호인 시절과 아마추어 시절을 생각하면 분명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선수라는 점에서 주변의 기대와 아쉬움이 크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고상운은 오로지 연습을 통해 기본기에 더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박빙으로 흐른 경기를 놓치는 경우의 대부분이 비교적 쉬운 공의 공략에 실패한 경우이다. 점수를 확실하게 따야 할 배치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기본적인 연습에 매진하는 것이다. 집중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체력 향상도 도모하고 있다. 근력 운동은 물론 감각 향상을 위해 게임량도 늘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프레드릭 쿠드롱 선수나 토브욘 브롬달 선수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두 선수를 보면 기본기도 좋고 시원시원하면서도 감각적인 부분들이 돋보여요. 제가 추구하는 당구 스타일이 '고상운은 공격적이고 시원시원하게 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보니 더 그런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특히 쿠드롱 선수는 샘이 날 정도예요. 이 선수들의 장점들을 배우기 위한 연습도 꾸준하게 하고 있습니다."

고상운은 당구를 사랑하는 만큼 당구계의 미래를 위한 후진 양성에도 관심이 많다. 본인 역시 많은 선배들의 도움으로 실력을 키워 당구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성남에서 당구를 배운 사람들에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선수가 바로 임철 선수예요. 철이 형 덕분에 제 당구 실력이 많이 늘었죠. 정말 고마운 형이에요. 보통 자기 기술을 남들에게 알려주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철이 형은 자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알려줬어요. 지금은 선수 생활을 하지 않지만 후진들을 많이 양성하시거든요. 저도 그래서 철이 형처럼 후진들을 양성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저부터 실력을 키워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겠죠."

◆ 꿈 이뤄준 PBA의 출범, 꾸준한 성적 내는 것이 목표

오랜 시간 당구인의 길을 꿈꿔오던 고상운에게 PBA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긴 방황 끝에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당구를 생업으로 삼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그만큼 PBA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는 것이 그가 자신에게 가장 바라는 모습이다.

"PBA로 인해 제가 좋아하는 당구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언젠가는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몰랐으니까요.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문 당구 선수 생활 1년 만에 PBA가 출범했으니까요. 그리고 이듬해에 팀 리그도 생겼고요. 정말 본인만 잘하면 온전히 당구를 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거예요. 그러니 더 잘해야죠. 정말 잘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단 우승이 목표지만 개인리그든, 팀리그든 꾸준하게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홍성완 기자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seongwan6262@gmail.com

ⓒ 한국미디어네트워크(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시각 인기영상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