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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더그아웃에 전자기기를 허하라

최민규 입력 2022. 08. 0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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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안과 밖] 더그아웃의 노트북을 금지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판정 항의와 사인 훔치기 때문이었다. 전자는 시효가 다했고, 후자는 새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다.
미국 MLB는 2015년부터 ‘더그아웃 앱’이 설치된 태블릿 PC를 지급했다. ⓒ한국야구학회 제공

지금은 사라진 프로야구 경기장의 ‘풍물’이 있다. 더그아웃의 노트북 컴퓨터다. 2009년까지 구장 더그아웃에는 노트북 컴퓨터가 비치돼 있었다. 각 구단은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더그아웃에 노트북 컴퓨터를 반입했다. 구단 기록원이 경기 기록을 입력하는 용도였다. 정리된 기록은 구단 기록 시스템에 통합돼 분석과 연봉 고과 자료로 활용된다. 그 이전에는 기록원이 수기로 기록지를 작성했고, 다시 전산시스템에 재입력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구단들은 나중에 노트북 컴퓨터 디스플레이 반대쪽 면에 광고를 부착해 수입도 올렸다. 경기 중계 화면에 노트북이 자주 잡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노트북 반입을 금지했다. 당시 캐치프레이즈였던 ‘클린베이스볼’의 일환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KBO 리그 규정 제26조는 경기 중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 행위’를 금지한다. 당시 규정에는 무전기, 휴대전화, 전자기기 등 사용을 금지했지만 노트북은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 정금조 KBO 사무차장은 당시에 대해 “일부 구단에서 불공정 정보를 전달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심판진도 금지를 희망했다. 2009년 6월 오찬 모임에 참가한 심판들이 유영구 당시 총재에게 노트북 사용 금지를 요청했다. 노트북으로 실시간 중계 영상을 확인한 구단들이 판정 어필에 활용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2010년부터 규정 26조가 노트북을 포함해 일체의 정보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강화됐다.

판정 항의 문제는 이제 시효가 다한 명분으로 보인다. KBO는 2009년부터 비디오 판독으로 심판 판정을 뒤집을 수 있도록 했다. 첫해에는 홈런/파울 판정에 국한됐지만, 올해는 외야 타구의 페어/파울, 포스/태그플레이에서의 아웃/세이프 등 13가지 플레이가 비디오 판독 대상이다. 각 구단의 판독 요청 기회는 9이닝 기준 최대 세 번이다.

메이저리그에선 비디오 판독 때 구단 비디오룸에서 챌린지를 해도 될 플레이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보를 더그아웃으로 전달한다. 하지만 KBO리그에선 규정 26조에 따라 정보 전달이 금지된다. 올해 KBO리그의 비디오 판독 번복률은 23.3%이지만 메이저리그는 48.6%로 훨씬 높다. 비디오 판독은 리그 전체로는 경기 판정의 정확도를 높이고, 리그 소속 구단에게는 오심을 바로잡아 승리를 불공정하게 날릴 가능성을 낮추는 순기능이 있다. 구단이 좀 더 정확한 어필을 할 수 있도록 노트북 등을 이용한 실시간 영상 확인을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면 ‘불공정 정보’의 문제가 남는다. 규정은 ‘불공정 정보’라고 점잖게 표현하지만, 직설적으로는 ‘사인 훔치기’다. 사인 훔치기의 역사는 야구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야구 사인은 1888~1902년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청각장애 선수 윌리엄 ‘더미’ 호이를 위해 고안됐다는 게 정설이다. 처음에는 3루 코치가 좌타자 호이에게 주심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알려주기 위해 수신호를 했다. 이후 투포수 간 구종 전달과 벤치의 수비 및 주루 작전 지시에 사인이 활용됐다. 사인이 도입되면서 이를 간파하려는 시도가 곧바로 일어났다. 상대 의도를 안다면 승부에서 이길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진다.

ⓒ한국야구학회 제공
올해 MLB 경기에서 피치컴 장비 사용이 승인됐다. ⓒ한국야구학회 제공

피치컴 장비로 ‘사인 훔치기’ 해결

1899~190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홈구장 베이커볼 중앙 스탠드에 관측소를 설치한 뒤 3루 코처스 박스까지 전선을 매설했다. 코처스박스 아래에는 신호가 울리는 장치가 매설돼 있었다. 관측소에서 백업 모건 머피가 외야 쌍안경으로 상대 사인을 훔친 뒤 전선을 통해 코처스박스 쪽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후 2017~2018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까지 장비를 이용한 사인 훔치기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일본프로야구(NPB)에서는 1967년 한큐 브레이브스가 홈구장 스코어보드 쪽에서 상대 포수의 사인을 캐치한 게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 사례로 꼽힌다. 이 일은 1972년 〈슈칸베이스볼〉 보도로 알려졌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65~1973년 일본시리즈 9연패(V9)를 달성하는 위업을 세웠다. 당시 한 멤버는 “당시에 사인 훔치기를 하지 않았던 구단은 없었다. 요미우리도 고라쿠엔 야구장 외야석에서 쌍안경으로 사인을 훔쳤다. 단, ON(오 사다하루와 나가시마 시게오)은 사인을 알려주면 더 타격이 안 된다며 거절했다”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1960년부터 1982년까지 NPB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활약했던 돈 블레이싱게임은 메이저리그의 사인 훔치기 기법을 전파한 인물로 꼽힌다.

가장 최근 사례는 1998년 다이에 호크스의 사인 훔치기 스캔들이다. 이해 12월 〈니시니혼신문〉이 특종 보도를 했다. 이 사건 이후 NPB는 1999년에 ‘경기 중 정보전달 행위의 금지’라는 규정을 신설해 더그아웃 전자기기 반입을 금지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듬해 구단 발송 메모 형식으로 같은 조치를 내렸다. KBO가 뒤를 따랐다.

7월17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야구학회 학술대회는 ‘KBO리그는 경기 중 스마트 디바이스 사용을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다. 사회를 맡은 신동윤 야구학회 이사는 “규정 26조는 기술을 이용한 속임수를 막기 위한 포괄적인 금지 조치다. 하지만 속임수를 막기 위한 카운터 기술을 도입한다는 발상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문제 제기를 했다.

올해 메이저리그가 경기 중 사용을 승인한 피치컴 장비가 그런 시도다. 포수 팔목에 차는 사인 발신기와 투수가 머리에 착용하는 골전도 수신기로 이뤄진 시스템이다. 100년 넘도록 사인 훔치기가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사인이 상대방의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피치컴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사인’으로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다. 그렇다면 굳이 더그아웃에서 전자기기를 금지해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기술 발전을 기량과 팀 성적 향상에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메이저리그는 2015년부터 사무국이 제공하는 ‘더그아웃 앱’이 설치된 태블릿 PC를 지급하고 있다. 외부 인터넷 연결은 제한되지만 선수들이 경기 중 각종 영상과 그래픽, 수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토론에 참가한 대니얼 김 전 ESPN 해설위원은 “처음에 태블릿 PC 사용에 거부감을 느낀 선수가 일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 선수가 환영한다”라고 소개했다.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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