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괴물' RYU는 더그아웃에서 수첩을 보고 있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2020. 8. 1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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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류현진이 18일 볼티모어전 팀 공격 때 더그아웃에서 수첩을 살펴보고 있다. MLB TV 중계화면 캡처

류현진(33·토론토)이 시즌 2승째를 따낸 18일 볼티모어전,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3회말 수비에서 나왔다.

3회초 토론토 타선이 랜들 그리칙의 3점홈런 등으로 4점을 따냈고 류현진은 남은 이닝을 틀어막아야 할 숙제를 안았다. 득점 뒤 바로 실점하는 흐름이 만들어지면 경기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류현진은 3회말 더욱 신중하게 공 1개 1개를 선택했다.

2사 뒤 안저 알베르토와의 승부였다. 알베르토는 볼티모어에서 가장 활발한 타격을 하는 타자였다.

류현진은 초구 투심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2구째 체인지업으로 파울을 끌어내 볼카운트 0-2로 몰아붙였다. 이후 속구 2개가 모두 파울이 됐고, 커브가 땅에 꽂히며 1-2가 됐다. 6구째 체인지업도 알베르토가 파울로 걷어냈다.

7구째 승부를 앞두고 사인 교환이 길어졌다. 류현진과 배터리를 이루는 대니 잰슨이 계속해서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류현진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토론토 경기를 중계하는 스포츠넷 중계진은 “잰슨이 아주 괴로운 경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류현진이 던질 공의 사인을 내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중계진은 “방금 잰슨이 커터 안쪽, 커터 바깥쪽, 속구 안쪽, 속구 바깥쪽 등 모든 구종의 사인을 다 냈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이날 특히 더 신중한 경기 운영을 했다. 잰슨과 사인을 교환하는 시간이 길었다. 주전 유격수의 부상, 전날 더블헤더 연패 등으로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다시 살려야 하는 숙제가 에이스의 어깨에 놓였기 때문이다.

한참이 걸린 뒤 류현진이 선택한 공은 몸쪽 속구. 류현진은 90.5마일짜리 속구를 알베르토 몸쪽으로 찔러넣었고, 알베르토는 꼼짝 못하고 루킹 삼진을 당했다. 해설을 맡은 벅 마르티네스는 이 장면을 두고 “완벽한 투구(perfect pitch)”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하는 투구를 골랐고, 이를 완벽한 코스로 찔러넣었다.

류현진이 18일 볼티모어전에 선발 등판해 공을 던지고 있다. AP연합

류현진이 지난해 메이저리그 평균자책 1위 투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5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능력 뿐만 아니라 이 구종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에 있었다. 상대 타자를 분석하고, 약점을 찾아내 효과적인 구종으로 그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 성공요인이다. 풀타임 2년차 포수 잰슨의 볼배합으로는 아직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류현진은 앞선 화상기자회견에서 “혼자서 경기를 준비하는 방식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잘 안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올시즌 메이저리그는 사인 훔치기를 막기 위해 경기 중 비디오 분석을 금지시켰다. 이 과정에서 경기 전 준비 과정에도 어려움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류현진은 대신 새로운 길을 찾은 듯 하다. 이날 류현진은 경기 중 수첩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자주 잡혔다. 수첩을 통해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적용함으로써 상대를 틀어막았다. 벅 마르티네스는 류현진이 수첩을 보는 장면이 나오자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라며 “좋은 선수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류현진을 에이스로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분명 노력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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