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작두 탄 7회, 맷 감독의 신들린 승부수

조회수 2020. 8. 9. 06: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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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입조심이다. 섣불리 꺼내면 안될 말이다. 애꿎은 이닝 보드가 고생이다. 힐끔힐끔. 자꾸 보게 된다. 아래쪽 홈 팀은 가지런하다. 질서정연한 '0'의 행렬이다.

6회 말. 박찬호의 타구는 안타성이다. 그걸 우익수(나성범)가 슬라이딩으로 잡았다. 주저앉았던 투수는 금세 표정이 펴졌다. 반면 타자는 맥이 풀린다. 느린 화면에 입 모양이 선명하다. 그럴 리는 없지만, 왠지 식빵이 생각난다. 하긴, 시장할 시간이다.

그렇게, 어느덧. 7회가 됐다. 김선빈의 직선타가 또 잡혔다. 뭔가 심상치않다. 이제 남은 아웃은 8개 뿐이다. 홈 팀 덕아웃에 먹구름이 잔뜩이다.

프레스턴 터커 차례다. 스트라이크 2개로 시작했다. 하지만 실랑이가 된다. 파울을 걷어내며 승부를 끌고간다. 풀 카운트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타자의 계산은 쉽다. 여기서 유인구 던질 투수는 없다. 평생의 기록을 향한 길목이다. 무조건 스트라이크다. 그것도 빠른 볼 확률이 절대적이다.

'하나, 둘, 셋.' 현장에서 쓰는 말이다. 오로지 직구 타이밍만 잡는다. 그런 뜻이다. 7구째 스윙이 그렇게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윤수범(윤석민+김현수+나성범)의 7구째는 포심 패스트볼이다. 147㎞짜리가 어중간한 벨트 높이다. 발사각 29.2도의 타구는 115미터를 날았다. 챔피언스 필드 이닝 보드에 낯선 숫자 '1'이 새겨졌다.

SBS Sports 중계화면


터커의 한 방은 컸다. 0의 행렬을 끝내며, 흐름을 바꿨다. 그렇다고 승부가 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원정 팀의 우세고, 선발 투수는 건재하다.

다만 여지가 생겼다. 그게 문제다. 그 때까지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 해볼 게 아무 것도 없는 탓이다. 그런데 달라졌다. 이렇게, 저렇게. 기술이 들어갈 틈이 생겼다. 변화를 구하는 벤치의 흔들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바로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다.

7회, 4번 타자를 빼고 대주자를 넣다

홈런에도 식지 않았다. 윤수범은 최형우를 침묵시켰다.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다음은 나지완 타석이다. 웨이팅 서클의 전략이 적중했다. 초구 빠른볼에 반응했다. 강한 타구는 아니지만 방향이 좋았다. 나비처럼 사뿐히, 좌중간에 내려앉았다.

여기서부터 뜻밖이다. 컷 사인이 나왔다. 벤치에서 교체 신호다. 1루에 대주자 투입이다. 당사자도 긴가민가다. 발 보호대를 풀려다 만다. 덕아웃을 보며 확인을 요구한다. 곧바로 새내기가 달려나온다. 강릉고 출신 홍종표다.

전혀 의외다. 어찌 보면 과한 선택이다. 겨우 2사 1루다. 뭔가를 기대하는 건 확률이 너무 낮다. 스코어는 여전히 1-2다. 설령 2루타가 나왔다치자. 그래서 대주자가 성공했다치자. 그래봐야 2-2다. 최소한 9회말에 4번 타순은 또 돌아온다. 그걸 포기하면서 대주자를 넣는다. 명백한 오버 액션이다.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웬걸. 작은 빗방울은 곧 장대비가 된다. 이리저리 차고 넘치며, 급기야 큰 둑을 무너뜨렸다.

이어지는 김민식의 짧은 안타다. 그냥이라면 2사 1, 2루다. 그러나 20살짜리 대주자다. 3루는 겨우 한걸음이다. 그래서 1, 3루다. 이건 분위기가 다르다. 수비쪽에 커다란 압박이다. 물에 젖을라. 얄팍한 1점 리드에 노심초사다.

풀려버린 변화구 2개

유민상 타석이다. 유심히 볼 게 있다. 볼배합이다. 포수(양의지)의 핵심 메뉴는 슬라이더(커터)다. 꺾이면서 떨어지는 변화구다. 중요한 대목마다 그 공이다. 그 타석에만 3개였다. 그 중 정확한 건 4구째 하나 뿐이다. 예리한 낙차로 헛스윙을 끌어냈다.

반면 2개는 실패했다. 회전이 풀리며 먼쪽으로 볼이 됐다. 이유는 아마도 압박 때문이리라. 유인구의 생명은 낮게 떨어지는 날카로움이다. 그러나 늘 리스크가 따른다. 폭투다. '여기까지 왔는데. 공짜로 2-2라니.' 독하게 채지 못한 2개 탓에 풀카운트다.

이쯤이면 타자도 느낀다. 풀리는 변화구 2개를 봤다. 다음 예측은 뻔한 것 아닌가. 투수가 던질 건 하나뿐이다. 아니나다를까. 바깥쪽 패스트볼이다. 정확히 마중나간 배트가 공을 반송시켰다. 배송지는 좌중간이다.

여기서 핵심은 1루 주자의 득점이다. 보통 카운트에는 1루수가 견제 위치를 잡는다. 반면 2사 후 풀카운트에는 수비 위치로 간다. 마크가 풀리는 셈이다. 어차피 투구와 함께 스타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베이스를 오픈시키면 (1루수가 떨어져 있으면) 스타트가 훨씬 쉽다. 견제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탓이다. 곧 한 발이라도 일찍 출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전 결과를 보시라. 김민식의 득점은 간발의 차이였다.

만약 풀카운트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1루수가 베이스 옆에 붙었다면. 리드 폭도 줄고, 스타트도 그렇게 빠를 수 없다. 즉, 동점까지는 몰라도 역전은 어려웠다. 그게 바로 대주자로 인한 1, 3루의 파급 효과다.


SBS Sports 중계화면


다이빙도 필요 없는 호령존 타구

또 하나의 결정적 장면이다. 기분 좋은 역전 직후다. 대주자는 임무를 다했다. 이제 수비 때는 배역이 바뀐다. 외야수들의 인사 이동이다. 중견수에 김호령이 투입됐다. 최원준은 좌익수로 발령났다. 그리고 5분 뒤. 여기서 또한번 결정적인 순간이 탄생한다.

1사 후 모창민이 볼넷을 얻었다. 다이노스도 대주자(김성욱)를 기용했다.

그 다음 초구. 이원재의 타구에 모두가 침묵했다. 담장을 향한 맹렬한 비행이었다. 다들 직감했다. '빠졌다.' 1루 주자는 이미 2루를 돌았다. 그런데 아뿔사. 타구는 너무도 쉽게 중견수 글러브 속으로 잠들었다. 김성욱은 부랴부랴, 귀루하기 바빴다. 동점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 장면의 감상 포인트다. 스타트의 기민함이다. '딱' 소리와 동시다. 김호령의 첫 발이 움직인다. 더 놀라운 건 추적 경로다. 가장 어렵다는 머리 위 타구다. 10명 중 9명은 곡선 주로를 택한다. 약간 옆으로 가면서 후진하는 경로다. 그런데 그는 아니다. 정확히 직선을 이룬다. 최단 거리로 쫓는다는 뜻이다. 때문에 아슬아슬한 다이빙도 필요없다. 넉넉한 캐치로도 충분하다.

압권은 시크함이다. 팬들은 환호한다. 그라운드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투수(홍상삼)는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한다. 야수들도 엄지 척을 선사한다. 정작 본인은 심드렁하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런 덤덤함이다.


SBS Sports 중계화면


맷 감독의 예언 같은 경기 전 멘트

승부사의 시간이 있다. 경기 후반, 조금 지고 있을 때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틈이다. 보통 사람 눈에는 띄지도 않는다. 아니. 설마 틈이라고 생각지도 못한다. 그걸 파고, 헤집는다. 흔들기다.

2사 후 대주자다. 겨우 1루일 뿐이다. 그걸로 4번 타자를 7회에 뺀다. 9회가 맴도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갸웃거린다. '너무 앞서 가는데?' 그런 마음들이다. 그런데 아니다. 일은 조금씩 커진다. 결국 판 전체를 뒤집어버린다. 급기야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놀라운 흔들기다.

대주자, 대수비. 딱 2번의 교체였다. 그게 역전의 결정적 요인이다. 이럴 때 야구인들의 말이 있다. "신내렸다." 또는 "작두 탔다."

신내림, 작두. 맷 감독이 그런 말 알 리 없다. 다만 어제(8일) 경기전에 그런 멘트가 있었다. 마치 예언같았다. "기회란 왔을 때 잡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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