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인천과 인생 역전 쓰는 김동민, "인정받고, 박수받고 싶었다"

서호정 기자 2022. 4. 2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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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2022시즌 K리그1 초반 구도를 흔든 인천유나이티드의 돌풍을 평가할 때는 여러 선수의 활약이 언급된다. 그 중 인천의 행보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는 수비수 김동민이다. 프로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중앙수비수 포지션에서 시즌을 치르고 있는 그는 인천 짠물 수비의 핵심이 됐다.


180cm를 살짝 넘는 키가 중앙 수비에는 맞지 않는다는 시선이 있지만 엄청난 활동량에서 나오는 뒷공간 커버, 투지 넘치는 맨투맨, 풀백을 긴 시간 봐 온 선수다운 안정된 볼 처리로 극복했다. 이탈리아의 명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를 연상시킨다. 8라운드까지 4실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저 실점팀이었던 인천은 공교롭게 김동민이 퇴장 징계로 나서지 못한 9라운드 제주전에서 올 시즌 처음 2실점을 했다. 지난 시즌 김광석의 가세 이후 달라졌던 것 이상의 수비 안정감을 김동민이 혜성처럼 등장해 보여주는 것이다. 


자연스레 평가도 달라졌다. 상무 입대 전이던 2019시즌 23경기에 나섰지만, 2017년 데뷔 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김동민은 뒤에서 출전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올 시즌 수원삼성과의 개막전 당시만 해도 그가 3백에 서자 인천 팬 대부분은 "김동민이 왜 거기에?"라는 반응이었지만, 이제는 김동민의 이름이 수비진에 없다면 가장 먼저 찾을 정도가 됐다. 


2022시즌 가장 놀라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팀의 구성원이자, 중심축인 김동민이 만든 인생 역전의 숨은 과정이 궁금했다. 그는 전지훈련지인 강원 고성에서 받은 전화 통화에서 "프로 6년차인데, 구단 인터뷰 빼고는 한 번도 기자 분과 인터뷰를 해 본 적이 없거든요"라며 쑥스러워 했다. 그리고는 질문에 대해선 막힘없는 답변을 시작했다. 올 시즌의 경기력처럼 그는 충분히 준비된 달변가였다. 


- 거두절미하고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동계훈련 동안 김동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을 거예요. 
음, 사실 별 다른 건 없었어요. 제가 상무에 입대한 뒤 조성환 감독님이 인천에 부임하셨죠. 감독님이 저에 대한 정보나 이미지가 없을 수 밖에 없으니까 전역하고 돌아가서 어필을 해야 되겠다 싶었어요. 사실 축구를 시작하고 처음엔 중앙 수비수를 봤어요. 그런데 키가 안 자라서 측면으로 포지션을 옮긴 케이스거든요. 선수로서 성장하며 중앙 수비로서 많은 걸 배웠고, 애착이 있었지만 다른 문제로 인해 풀백을 보게 됐죠. 하지만 그렇게 옮긴 풀백에서의 제 단점을 알고 있었어요. 현대 축구에서는 공격 가담이 중요한데 그 부분이 제가 약했어요. 그래서 여러 생각을 했죠. 조성환 감독님이 오시기 전의 인천은 주로 4백을 썼는데, 만일 3백을 쓴다면 내가 스위퍼나 스토퍼로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침 조성환 감독님 부임 후의 인천에선 3백이 주로 가동됐고, 제대하면 감독님께 포지션을 바꾸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천에 돌아오고 감독님이 면담 중 어느 포지션 보고 싶으냐고 물어보셨어요. 기다렸다는듯 "3백 중앙 수비로 도전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마침 감독님도 "좋은 생각 같다"고 답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포지션이 바뀌었고 거기에 맞게 준비를 해 왔어요. 인천 복귀 후 형들과 운동하는데 '내가 형들보다 못한다, 경쟁에서 밀린다'는 생각이 안 들고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동계 전지훈련 때부터 좋은 모습 보이고 싶었고, 휴가 기간부터 열심히 운동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연습 경기에서 괜찮은 모습을 나왔던 것 같아요. 개막전에서 (오)반석이 형과 델비(델브리지)가 빠지면서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네요. 


- 센터백 포지션은 언제까지 봤나요?
초등학교 때 축구 시작하고 중학교 때까지 계속 중앙 수비를 봤어요.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측면으로 가야 한다고 지도자 분들이 정해주셨죠.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키가 185cm 정도는 돼야 센터백을 볼 텐데, 그때 제 키는 178cm 정도였거든요. 하지만 저는 항상 의문을 가졌어요. 키 작은 선수는 왜 중앙 수비를 못 본다고 할까? 180cm도 안 되는 칸나바로도 있는데 왜 키를 중앙 수비수의 기준으로 볼까? 그런 생각을 프로에 와서도 갖고 있었죠. 그러다 2019년에 우연히 인천에서 센터백을 본 적이 있어요. (※ 임중용 감독대행 체제에서 치른 제주 원정에서 부노자가 부상으로 교체되자 풀백을 보던 김동민이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 다음 성남전에는 아예 선발로 출전했었다)  그때 가능성을 조금 본 거 같아요. 저는 '포백에서 할만한데 스리백이면 더 편하게 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작년에 김천상무에서 FA컵 대구전 때 스리백 중앙을 봤는데 정말 괜찮았거든요. 그래서 그 자리가 나한테 맞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 입대 전엔 호리호리 했는데 지금은 단단한 암석 같아요. 상무에서 경기를 많이 못 뛰었지만 그만큼 다음 단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상무에는 국가대표에 뽑히는 좋은 선수들이 많이 오잖아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 몸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몰랐어요. 웨이트 방법도 모르고,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함께 생활하는 선수들이 하는 걸 보면서 자연스레 따라하게 됐죠. 제대할 즈음 몸이 좋아지면서 효과를 느꼈어요. 잘하는 선수들은 이런 관리를 하면서 만들어지는구나, 그 노하우를 배우고 나왔죠. (심)상민이 형한테 제일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좋아하던 선수고, 당시엔 같은 포지션에서 본받을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상민이 형이 작은 키인데 몸이 정말 단단하거든요. 지금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서 저 역시 몸 상태를 잘 관리하려고 합니다. 


- 전역하면서 인천으로 돌아왔을 때의 심정이 궁금하네요. '내 자리가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을 거 같습니다. 
하... 제가 인천에 있으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드린 건 아니었으니까요. 상무에 갈 때만 해도 새로운 팀에서 최대한 많은 경기를 뛰며 발전하고 돌아오고 싶었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못 됐어요.(상무에서 리그와 FA컵 포함 총 10경기 출전)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이전과 같은 모습 보여드리면 안 된다고 마음을 많이 잡았죠. 일반적으로 선수의 목표라면 경기를 많이 뛰고,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건데, 2022시즌의 제 목표는 '인정'이었어요. 선수로서 인정받고, 과거의 저를 향한 시선을 바꾸는 것. 제가 인정을 받아야 더 힘이 나서 뛸 수 있으니까 올해는 무조건 인정 받는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시즌에 돌입했어요. 


- 동계훈련 시작하던 날 조성환 감독에게 혼났다고 들었습니다. 
아, 혼난 것까지는 아니고요. 제가 추위를 잘 타는 편이에요. 운동하기 전에 다 모이거든요. 그때 제 얼굴이 추워서 떠는 표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동민아 춥냐?"라고 말을 꺼내셨어요. 아시겠지만, 조성환 감독님은 투지를 강조하시니까 저를 언급하며 그런 것도 이겨내야 한다고 하신 거죠. 저도 정신이 들었고요. 사실 감독님이 재미난 분이시거든요. 요즘 표현으로 츤데레 스타일? 그거죠. 상무에 있을 때 인천 구단 유튜브로 팀 분위기를 살피는데 감독님이 혼내시는 걸 봤어요. 그때만 해도 '와 무서운 분이다' 싶어서 긴장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엄청 정감 있고, 장난도 많이 치시더라고요. 가끔은 감독님이 귀여워요. 여성스러운 면도 있어요. 얼굴이 험한 사람들이 마음이 여리거든요. 저도 그렇고. 그게 문제죠. 감독님께는 감사한 마음이에요. 만일 조성환 감독님마저 김동민은 키가 작으니까 측면을 계속 봐야 한다고 하셨으면 포지션 변화를 제 바람으로 끝났을 거예요. 오히려 감독님이 그걸 긍정적으로 보고 받아주셨죠. 키라는 편견을 빼고 온전한 경쟁력으로 저를 봐주신 지도자는 중학교 이후 처음 만났고 그게 조성환 감독님이죠.


- 인천 팬들조차 개막전 선발라인업을 보면서 김동민이 왜 저기에 있냐고 했습니다. 그 절호의 기회 앞에서 어떤 마음이었나요?
작년에 잘했던 기존의 수비라인이 저보다 먼저 기회를 얻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대신 기회가 오면 그때는 무조건 잡겠다고 마음먹고 기다렸습니다. 그 기회가 생각보다 일찍 온 거죠. 프로에선 그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무조건 이걸 잡고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나갔어요. 경기 중에도 계속 암시를 걸었어요. '막을 거고, 이길 거고, 무조건 인정 받을 거다.' 스스로 각인 효과를 되새긴 거죠. 그 뒤에도 마찬가지에요. 1라운드가 끝나고는 이제 겨우 한 경기 한 거고, 2라운드 끝나면 이제 두 경기했을 뿐이다는 식의. 몇 경기 잘하는 게 아니라 시즌 전체를 잘 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요.


- 3백의 중앙에서는 어떤 부분을 많이 생각하며 플레이 하나요? 
포지션마다 역할을 수행하는 요소가 다르잖아요. 3백은 좌우의 스토퍼가 무너지면 스위퍼가 커버를 가줘야 하니까 그 역할을 계속 생각해요. 가운데 서면 반석이 형과 델비의 뒤를 제가 무조건 책임져야 해요. 항상 두 사람에게 얘기해요. 나 믿고 상대 선수와 적극적으로 부딪히라고. 뒤가 무너지면 그건 무조건 내가 책임지겠다고. 그러니까 두 선수가 더 잘해주고, 오히려 위험한 상황이 줄어들죠. 거기가 뚫리면 그때는 제가 무조건 막는다는 생각으로 가고요. 빌드업도 신경써야 하니까 앞쪽으로 패스를 더 잘 주려고 해요. 


- 울산전에서는 숨기지 못한 풀백의 크로스 본능도 나왔는데요.
(웃으며) 그건… 다행히 경기 중 측면으로 이동하자마자 그게 나와서 다행이죠. 만일 크로스가 짧거나 길었다면 경기 막판에 동료들이 수비로 복귀하기 위해 체력 소비가 더 많았을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제가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는데, 상무에서 노력한 게 빛을 본 거 같아요. 입대 전에는 공격이 늘 아쉬워서 지적을 받았으니까 상무에서는 어떻게든 크로스 능력이 나아져 돌아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부대에서 팀 훈련이 끝나면 개인 훈련으로 크로스를 계속 시도했어요. 상민이 형한테 노하우를 물어봤고, 그렇게 터득했는데 그 감각과 기억을 살려서 한 시도가 잘 된 거죠. 지금도 인천에서 크로스 연습 때는 일부러 왼쪽으로 이동해서 하거든요. 정말 기분 좋았어요. 그 동안 연습한 게 그때 나왔고, 인천 입단 후 처음 어시스트를 했고, 그것도 홈 팬들 앞에서 했으니까요. 



- 대구 원정에서는 퇴장을 당하며 좋았던 흐름이 일시 중단됐습니다. 경기 후 팀원들은 극적인 승리에 기뻐하는데 홀로 눈물을 흘렸죠. 
당시 퇴장 판정은 제 기준에서는 아쉬웠죠. 명백한 득점 상황을 저지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가슴을 맞고 공이 흐르면서 팔을 맞았으니까요. 처음부터 팔을 맞은 게 아니었으니까 더 아쉬웠죠. 그때 흘린 눈물의 의미는 책임감, 미안함 그런 거였어요. 퇴장을 당하고 라커룸에서 경기를 보는데, 팀원들이 정말 고생했어요. 후반에 반석이 형이 경합하고 떨어지다 발목을 다치고, (김)준엽이 형은 무릎을 다치고, (강)민수 형은 개막전에 이어 또 머리를 다칠뻔 하니까 정말 다 저 때문인 거 같았어요. 내가 퇴장만 안당했으면 그런 상황들이 안 나왔을 건데, 너무 미안했어요. 경기 끝나고 계속 그게 생각나니까 미안했고, 그런데도 이겨줘서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왔어요. 전반 끝나고 명주 형이 저한테 와서 자기가 그런 패스를 줬으면 안 됐는데, 그게 빌미가 돼 퇴장까지 당했다며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뒤늦게 안 건데 제가 나가고 남은 선수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는데 반석이 형이 우리가 무조건 버텨서 동민이 미안하지 않도록 하자고 했다더라고요. 누가 그 얘기를 꺼낼 때마다 저는 울컥해요. 그 전의 인천에도 좋은 선배, 형들이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 더 뭉치자, 누군가를 위해 버티자며 분위기를 이끈 적은 거의 없었거든요. 지금 팀에 돌아와서 보니까 왜 인천이 작년에 잘했고, 점점 좋아지고, 팀이 강해지는데 베테랑의 중요성이 큰지를 확실히 느끼고 있어요. 


- 이젠 상대팀의 가장 위협적인 스트라이커를 수비라인 최후에서 상대해야 합니다. 어떤 선수가 특히 어렵던가요? 
역시 (조)규성이 같아요. 후임이긴 한데 상무 시절 때 같이 운동하면서도 피지컬적으로는 도저히 못 이기겠더라고요. 빠르죠, 힘 있죠, 슈팅력 있죠. 결국 힘대힘의 승부인데 그 부분에서 한수 위였어요. 팀에서 훈련할 때는 무고사와 (이)용재 형이 좋은 파트너가 돼요. 정말 어려운 상대들이에요. 무고사는 너무 똑똑한 선수죠. 슈팅 코스가 없으면 가랑이 사이로 차요. 용재 형은 많이 뛰는 스타일이라 그걸 쫓아가야 하는데 힘도 좋으니까 버거워요. 용재 형이 어서 실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잘 됐으면 좋겠어요. 용재 형에게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겠지만, 훈련 과정에서 정말 잘 준비하고 있으니 팬들께서 그 시간을 기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광석 선수가 돌아온다고 해도 김동민 선수가 그 자리에서 쉽게 밀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선수로서는 경쟁을 먼저 생각해요. 하지만 광석이 형님은 경쟁과 동시에 제가 배울 수 있는 지금 포지션의 가장 확실한 롤모델이죠. 제 기준에서 볼 때 광석이 형은 대단한 선수거든요. 저 나이에 저렇게 축구를 잘하시는 것만 해도 엄청난 거 같아요. 상황에 따라 함께 뛸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같이 운동하면서 '아 이래서 롱런하는구나, 수비를 정말 잘 할 수 있구나'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 학창 시절에도 대학 무대에 와서 빛을 본 대기만성형이었습니다. 프로에서도 비슷한 경로를 가는 것 같네요.
프로에 와서 많이 힘들었죠. 잘하고 싶은데 마음만큼 다 되지 않는 게 축구였고요. 욕도 많이 먹었죠. 정말 힘들 때가 있었는데, 제가 공을 잡는데 야유를 보내는 인천 팬 분들이 계셨어요. 그만큼 제가 못미더우셨겠지만, 저 역시 잘 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팀이고, 그런 인천을 좋아해주시는 팬들이니까 원망보다는 자극이 되더라고요. 그걸로 독기가 생겼어요. 저 분들에게 반드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도 강해졌고요. 지금도 가장 부러운 선수는 팬들이 인정해주는 선수에요. 그게 상무 입대를 기점으로 큰 동기부여가 됐죠. 대구전이 끝나고 인천 팬들이 제 이름을 외치며 박수 쳐 주시더라고요. 정말 울컥했어요. 퇴장을 당해서 팀에 해를 끼쳤는데 저를 찾고, 인정해주셨다는 게… 정말 프로에 와서 경험하고 싶었던 순간이거든요. 그렇게 팀에 대한 충성심이 생기는 거 같더라고요. 더 잘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강해지고요. 제가 쑥스럼을 많이 타서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2019시즌이 끝나고 사비를 털어서 저를 아껴주시는 몇몇 팬들과 함께 연탄 나눠 주는 봉사를 하며 추억을 쌓은 게 팬들에게 다가간 유일한 추억이네요. 그래도 최근에는 인천 팬들 50명 넘는 분들이 대구전 끝나고 SNS 메시지로 격려를 해주시더라고요. 내가 잘하면, 팬들이 먼저 다가온다는 걸 배웠어요. 


- 지금처럼 계속 잘해주고, 인천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면 무고사 동상 옆에는 김동민 동상이 생길 지도 모르죠. 
아하하, 저는 아직 그런 얘기 나올 단계는… 그런데 상상만 해도 멋진 거 같아요.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를 위해 경기장에 그런 게 생긴다면 좋네요. 무고사는 세워줘야 하는 게 맞고요. 그 다음은 (김)도혁이 형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천 내에서 명언제조기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최근에 '피드백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던데. 
모든 분야에서 서로 피드백을 해주잖아요. 사람은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 실력을 향상시키길 원하죠. 연습경기를 하고 나서 팀 동료들이 서로에게 피드백을 해주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 나눈 얘기를 동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더라고요. 내가 미쳐 알지 못하던 걸 남들이 다른 시각으로 얘기해주고, 그걸 수용해서 수정하면 더 좋은 선수와 사람으로 성장하니까요. 누가 제게 피드백을 보내주면 그건 저를 성장시키기 위한 거라 감사히 생각할 거예요. 그렇게 인천이 함께 성장하자고 한 얘기였어요. 


- 우연히 SNS를 봤는데 축구 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고민도 깊은 거 같더라고요. 
누군가의 기준에서 저는 무명 선수였고, 그 설움이 있었거든요. 나름 프로 몇 년을 뛰고 있는데 사람들은 제 이름도 모르고, 인터뷰도 못해 봤어요. 울산전이 끝나고 처음으로 라운드 베스트11에 뽑혔어요. 그거 남들이 받을 때 너무 부러웠거든요.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가는 것도 부러웠고. 시즌이 끝나고 좋은 평가와 대우를 받고 싶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찰나에 우연한 기회에 원했던 포지션에서 뛰게 됐고, 힘든 시간을 버티고 노력하며 한발씩 전진하다 보니 좋은 상황이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더 기분 좋고, 더 잘 하고 싶어요. 아버지께서 나이가 많으셔서 지병이 있으세요. 그 전에 축구 선수 아들이 경기도 잘 못 나오는 걸 보며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셨는데 올해 잘 되니까 기분 좋아지시고, 몸 상태도 나아지셨어요. 제 여자친구도 가까이서 저의 힘든 모습을 봤는데 지금은 같이 행복해해요. 여자친구 부모님도 함께 좋아라 하시고요. 저 하나로 인해 주변 사람이 힘낼 수 있다는 걸 보니까 더 잘해야 할 이유가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리그 초반이니까 여기 안주하지 않고 시즌 끝날 때까지 유지해야죠. 반짝하다가 못하면 금세 사라지는 게 프로잖아요. 


- 인천이라는 도시, 그리고 팀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 김동민과 인천이 모두 긴 시간 기다린 놀라운 비상을 하기 시작했어요. 
예, 저 인천 정말 좋아해요. 본가도 여기고, 고등학교 시절 빼고 다 인천에서 지냈고, 친구들도 대부분 인천에 있어요. 인천유나이티드라는 팀도 좋아요. 코칭스태프는 인간적이고, 산후배들은 저를 '(동)요미'라고 놀리지만 그게 다 친근한 표현이고, 구단 관계자 분들도 잘해주세요. 좋으니까 여기서 잘 됐으면, 이 팀이 잘했으면 좋겠어요. 신기해요. 인천에 온 뒤 늘 팀이 아래에 있는 게 익숙했거든요. 우리는 언제쯤 올라갈 수 있을까 했는데, 지금 2위에 있으니까 너무 신기해요. 우리가? 인천이 2위야? 그래서 더 이 자리를 지키고 싶어요. 해 보고 싶어요. 이길 경기 다 잡았으면 1위도 가능했다는 아쉬움이 생기는데 그런 욕심이 동기부여가 돼요. 팀이 뭉쳐지는 힘 같아요. 휴식기 이후도 잘 하겠습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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