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구종 노출? SK 산체스의 갑작스런 난타에 대한 추론

조회수 2019. 10. 16. 08: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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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태의 130㎞짜리 슬라이더였다. 코스가 어정쩡했다. 제이미 로맥의 스윙이 바람을 갈랐다. 타구에 100마일(161㎞)의 속도가 붙었다. 29.7도의 발사각도로 125미터를 날았다. 좌측 관중석에 꽂혔다. (2회, 1-0 SK 리드.)

다음은 한동민이다. 이번에도 슬라이더(134㎞)였다. 쉽지 않은 몸쪽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정확했다. 훨씬 낮은 발사각도(22.5도)로 우중간 펜스를 넘었다. 노수광까지 불러들이는 2점짜리였다. (3회, 3-0 SK 리드.) 관중석은 환호로 뒤덮였다. 한 여성팬은 눈물을 훔쳤다.

압도적이었다. 적어도 3회까지는 그랬다. 완벽한 홈 팀의 분위기였다. 어디 공격 뿐인가. 마운드도 마찬가지다. 앙헬 산체스는 뜨거웠다. 만지면 델 것 같은 속도였다. 150㎞ 넘는 것들이 개스처럼 발사됐다.

1회 안타(이정후)가 유일했다. 그것도 2사 후였다. 그것 말고는 깨끗했다. 이렇다할 위기조차 없었다. 김하성, 박병호, 제리 샌즈, 김웅빈, 서건창. 무려 5명이 KO됐다. 폭발적인 구위였다.

그런데 웬걸. 4회부터 달라졌다. 180도 딴판이 됐다. 원정 팀의 공격력 말이다. 3회까지 침묵은 거짓말 같았다. 휘두르면 안타였다. 그것도 대충 맞는 타구가 아니다. 총알같은 정타들이었다. 위아래 가릴 것도 없다. 하위 타선도 맹렬하게 터졌다.

4~5회, 두 이닝에 9안타(홈런 1개)가 쏟아졌다. 3-0은 금세 3-6으로 뒤집혔다. 사실상 이날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4회의 급전직하, 산체스의 남다른 글러브

급전직하다. 3회와 4회가 하늘과 땅 차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분명 무시무시했다. 손대기 힘든 구위였다. 그런데 한순간에 무너졌다. 한두개가 아니다. 무수한 집중타를 맞았다. 9피안타, 6실점으로 넉아웃됐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게 야구라는 게임이다. 하지만 미심쩍다. 의아함은 당연하다.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한다. 이상한 게 있으면, 탐구가 필요하다. 뭘까. 일감은 구종 노출이다. ‘혹시 뭔가를 읽힌 것 아닐까.’ 오늘 <…구라다>의 메뉴다. 그런 의구심에 대한 추론이다.

다만, 전제가 필요하다. 다룰 얘기는 짐작에 불과하다.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 지 모른다. 흔한 말로 합리적 의심에 불과할 뿐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부분이다. 이게 히어로즈에 대한 폄하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현대 야구는 치밀함을 추구한다. 연구와 분석은 기본이다.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전력의 요소다. 더 잘 준비하고, 실전에 적용했다는 의미로 해석돼야한다.

각설하고.

이 경기는 SBS-TV가 중계했다. 집중타에 대한 해설도 뒤따랐다. 이순철 위원은 산체스의 발 위치를 지적했다. 극단적으로 1루 쪽 끝을 밟는다는 얘기였다. 그럼 타자의 특정한 코스를 공략하기 어렵다. 그런 얘기였다.

맞는 말이리라. 이 위원의 깊이와 해박함은 이미 정평이 났다. 다만, 이 경우 코스 문제는 핵심이 되기 어렵다. 물론 (몸쪽/바깥쪽을 안다면) 도움은 된다. 하지만 그보다 결정적인 건 구질이다. 빠른 볼이냐, 변화구냐. 그걸 파악하는 게 키 포인트다.

그런 점에서 <…구라다>가 주목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산체스의 글러브다. 그는 좀 ‘다른’ 걸 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투수용이 아닌, 일반 야수용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이 필요하다. 간단한 장비 설명이다. 글러브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포지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포수와 1루수의 미트는 아예 특별하다. 외야와 내야의 차이도 있다. 하다못해 같은 내야라도 2루수, 3루수, 유격수도 세밀하게 분류된다. 프로 레벨이라면 크기, 무게, 포켓의 깊이 같은 것들이 차이난다.

투수용도 마찬가지다. 몇가지가 구별된다. 목적은 하나다. 그립(공 잡는 손가락)을 감추기 위해서다.

① 포켓이 깊다. 그러니까 (공 잡는) 손이 완전히 가려질 정도라야 한다.

② 엄지와 검지 사이의 웹(webㆍ망)이 완전히 막혀있다. 역시 틈새 노출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류현진의 글러브. 웹이 완전히 막혀있고, 검지 커버가 있다.

투수 글러브, 검지 커버의 유래

그리고 또 하나 차이가 있다. 검지 부분의 커버다. 손가락이 그 속에 들어가게 돼있다. 그런 장치가 왜 필요할까. 멋있으려고? 손가락 보호 때문에? 아니다. 역시 구종 노출과 관계있다.

예전엔 그런 게 없었다. 1990년대 말부터 생겼다. 그걸 처음 사용한 사람이 있다. LA 다저스의 전설적인 투수 오렐 허샤이저였다. 지금은 류현진 경기의 해설자(SportsNet LA)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잘 몰랐어요. 거의 선수생활 말년이 돼서야 알았죠. 누가 그러더군요. ‘이봐 자네가 커브 (그립) 잡을 때 왼쪽 검지가 달라. 평소랑 다르게 구부러지더라구.’ 그 말에 아차했죠. 어쩐지 유인구에 꿈쩍도 안하더라니…. 그 다음부터 신경이 쓰였죠. 그런데 게임하다보면 깜빡할 때가 많아요. 고민하다가 결국 글러브 만드는 회사에 요청했어요. 검지를 감추도록 뭘 씌워달라고 말이죠. 그러니까 내가 처음 발명한 사람이예요. 그 때 특허나 내놓을 걸. ㅎㅎㅎ”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그러니까 이런 거다. 투수는 포수의 사인을 받는다. 구종이 결정되면 글러브 안에서 그립을 바꾼다. 이 때 어딘가에 티가 나기도 한다. 허샤이저의 경우는 그게 검지였던 것이다. 혹자는 그럴 지 모른다. ‘그냥 손가락을 글러브 속에 넣으면 되지.’ 그렇지 않다. 오랜 습관 탓에 어색해진다. 그게 투구 밸런스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아무튼 그 뒤로 검지 커버는 일반화됐다. 이제 대부분의 투수용 글러브에는 장착된 채 생산된다. 그런데 산체스는 아니다. 맨숭맨숭한 손가락이 그냥 드러난 채다. 혹시 거기서 어떤 힌트가 제공된 건 아닐까.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어제(15일) 실전을 돌아보자. 정확히 타순이 한 번 돈 뒤였다. 두번째 턴에서 확연히 달라졌다. 마치 알고 치는 것 같았다. 확신에 찬 스윙들이 나왔다. 주로 패스트볼이 공략 대상이었다. 김하성의 홈런(149㎞)도, 김규민의 2루타(154㎞)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직구가 얻어맞았다. 집중타 9개 중 7개가 패스트볼 계열 구종이었다. 산체스의 주무기인 속구들이다.

제구 난조? 패턴을 읽혀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50㎞짜리 공에 그렇게 완벽하게 반응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노출을 의심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ALDS에서 글래스노의 예

며칠 전이다.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시리즈(ALDS) 때다. 5차전에 탬파베이의 선발(타일러 글래스노)이 난타당했다. 1회부터 5안타를 맞고, 4실점했다. 피해자는 나중에 깨달았다. 경기 후 미디어 인터뷰 때 이렇게 밝혔다.

“세트 모션에서 폼이 조금 달랐어요. 직구를 던질 때는 글러브가 높고, 커브 때는 낮았죠. 정규 시즌 때도 종종 그랬는데, 이번에 또 문제가 나타난 거죠. 클럽 하우스에서 투구 장면을 리플레이 해봤어요. 확실히 달랐어요. 휴스턴 타자들이 그 차이를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는 (투구폼이) 명백하게 달랐던 것 같아요.”

우주인들이 인정했을까? 그들은 부인한다. 이런 건 업무상 기밀이다. 설사 그렇다해도 절대 함구한다. 기자들이 질문하자 고개를 젓는다. “아니예요. 그 친구(글래스노)가 얼마나 까다로운 투수인데요. 그냥 한가지 구종만 노리는 접근법이 통했던 거에요.” (휴스턴 애스트로스 3루수 알렉스 브레그먼)

그러나 몇가지 장면들은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준다. 안타 뒤에 귓속말, 타격 코치가 덕아웃에서 글러브 위치를 흉내내는 모습 등등이 여전히 커뮤니티를 떠돌고 있다.

글러브 위치가 달랐던 글래스노의 투구 폼.                        mlb 네트워크 캡처

물론 추론에 불과하다. 짐작이고, 억측이다. 게다가 노출이 난타의 100% 요인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실마리일 뿐이다. 알고도 못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런 게 있다. 커다란 댐을 무너뜨리는 건 작은 틈 하나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았을 지 모른다. 그러나 가을 큰 승부에서는 다르다. 이런 것들이 결정적이다.

다시 한번 ALDS의 피해자 글래스노의 얘기다. “작은 부분이었죠. 그런데 큰 무대에서 나왔다는 게 문제였어요. 결국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죠. 변명하는 건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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