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민훈기의 스페셜야구] 강백호, 이정후, 이승호, 고우석

민훈기 입력 2019.11.17. 00:44 수정 2019.11.1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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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초반 크게 뒤지고도 마지막까지 대접전, 17일 결승 기대감 더욱 커져

하필이면 프리미어12 본선 마지막 경기가 승패와 결승진출이 전혀 무관하게, 미리 결승 대결을 결정지은 두 팀의 경기.

일본 현지에서도 흥행에 악재라는 기사도 나오고, 대회 내내 빈자리가 많았던 도쿄돔이 이날도 허전하지 않을까 우려를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6일 도쿄돔에는 4만6천석이 꽉 들어찼다니 역시 한국-일본 라이벌전은 양국의 팬들이 모두 관심을 쏟는 빅매치임을 다시 입증했습니다.


16일 일본전에 처음 선발 출전한 강백호는 3타점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김빠진 경기에 대한 우려는 일단 꽉 들어찬 뜨거운 관중석과 취재 열기로 지워졌고, 2회말 일본이 선취점을 뽑았지만 3회초 황재균이 동점포를 쏘면서 경기의 열기도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초반부터 고전하던 좌완 영건 이승호가 3회말을 버티지 못하면서 경기가 너무 일방적으로 흐르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만 20세 이승호는 1회에 두 명의 주자를 허용했고, 2회에는 2사 후에 연속 안타로 먼저 실점을 하며 고전했지만 그래도 버텼습니다. 그러나 1-1이던 3회말 5연속 안타를 내주며 크게 흔들렸습니다. 2회가 끝났을 때 이미 투구수가 46개로 많았고, 3회에는 무사 주자 2루에서 3번 마루의 희생 번트에 대처가 늦어 내야 안타를 만들어줬고, 4번 스즈키의 빗맞은 안타로 역전을 내주는 등 운도 다소 없었습니다.

이승호가 연속 안타를 맞자 이용찬이 급히 마운드에 올랐지만 몸이 덜 풀렸는지 밀어내기 볼넷과 희생플라이 등으로 실점이 이어져 3회말에만 대거 6점을 내주며 1-7로 크게 뒤지고 말았습니다.


이번 대회 한 경기 1이닝을 던진 게 전부였던 이승호의 선발 등판은 충분히 납득할 만합니다.

승패가 의미 없는 이날 경기에 양현종이나 김광현을 내세울 이유는 전혀 없었고, ‘일본 킬러 좌완’ 계보를 이어줄 후보인 이승호가 만약 이날 호투한다면 개인적으로는 물론 앞으로 국가대표 팀에도 큰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입에 쓴 약이 돼 앞으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후자의 결과가 나오고 말았지만 이승호에겐 아프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경험이 됐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표팀은 참 강했습니다.

별 의미 없는 경기에서 초반 1-7의 점수차라면 서둘러 경기를 마치고 내일 결승전을 대비하자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4회초, 그때까지 황재균에게 맞은 홈런이 유일한 피안타였던 일본 선발 키시 타카유키를 대거 6안타로 두들기며 5득점, 순식간에 1점차로 따라붙었습니다. 박건우, 김재환, 박병호의 연속 3안타, 이날 처음 선발 출전한 막내 강백호의 적시타, 그리고 2사 후에 8번 박세혁과 9번 김상수가 연속 2루타를 터뜨리면서 확 떨어졌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끌어올렸습니다.


흥미로웠고 다소 아쉬웠던 건 5회초였습니다.

두 번째 투수 오노 유다이가 영점을 잡지 못하며 연속 3개의 볼넷으로 무사 만루가 됐습니다. 그런데 선두 타자 박건우가 볼넷으로 걸어 나가자 김경문 감독은 이정후를 대주자로 세웠습니다. 일본에서 ‘훈남’으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는 이정후가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성이 술렁였는데, 사실 이 교체는 전혀 의외였고 놀라웠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 팀은 줄곧 주전으로 뛰던 이정후를 비롯해 김하성, 김현수, 양의지, 민병헌을 모두 뺐습니다. 아직 타격감이 조금 더 올라왔으면 하는 박민우, 김재환, 박병호, 최정 등은 경기 시작부터 뛰었지만, 예선부터 덜 뛰었던 다른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잡았습니다.


5회초 이정후의 대주자 투입은 두 가지 의미였습니다.

첫째는 내친 김에 경기를 잡겠다는 승부수였고, 또 경기 중후반에는 주전들을 교체 투입해 감을 놓지 않도록 하겠다는 계획이 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하성, 김현수, 양의지, 민병헌 등이 모두 교체 투입되며 이날 한국은 야수 전원이 경기에 투입됐습니다.


다시 5회초로 돌아가면 무사 만루에서 최정이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강백호가 끈질기게 파울을 친 끝에 우선상 쪽으로 뜬 공을 쳐냈습니다. 아주 깊지는 않았지만 이정후의 스피드면 충분히 동점이 되는 순간. 아, 그런데 여기서 이정후가 판단 착오를 하면서 뒤늦게 홈으로 뛰어들다가 태그아웃 당하고 말았습니다. 1점차로 추격한 가운데 무사 만루에서 동점도 만들지 못한 아쉬운 이닝이 됐습니다. 안타를 확신했든, 아웃카운트를 헷갈렸든 어쨌든 이정후에게는 절대 잊지 못한 아주 중요한 교훈의 이닝이 됐습니다.


아쉬운 5회초가 끝나고 곧바로 5회말 일본이 2점을 뽑아 9-6으로 달아나면서 이제 분위기는 정말 넘어가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7회초 선두 타자는 이정후. 마운드에는 바로 전 이닝 삼자범퇴를 K-K-K로 마친 야마오카 다이스케가 버텼습니다. 그러나 이정후는 앞선 주루플레이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치열한 의지와 함께 강력한 중전 안타를 치며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김현수, 박병호가 물러나며 투아웃이 됐고 이정후는 1루에 그대로 묶였습니다. 그러나 교체된 허경민이 좌측 깊숙한 땅볼 타구를 쳤습니다. 전력질주 이정후가 2루에 도달한 것과 송구가 도착한 것은 거의 동시, 이정후의 발이 살짝 빠른 느낌. 그런데 2루심 도밍고 폴랑코가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한국 벤치는 즉각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고, 전광판에 느린 그림이 나오자 도쿄돔의 일본 관중들이 조용해졌습니다.


판정은 번복됐고, 21세 이정후보다 한 살 어린 20세 강백호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3회에 이미 타점을 기록한 강백호는 까다로운 야마오카와 치열하게 맞섰습니다. 연속 4개의 파울볼을 치고, 유인구를 골라내고 풀카운트까지 간 강백호는 높은 변화구를 때려 중앙으로 타구를 보냈습니다. 중견수 마루 요시히로가 어떻게든 노바운드로 잡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원바운드가 된데다, 다급한 글러브에 맞고 공이 튕기는 사이에 1루 주자 허경민까지 홈을 밟았습니다. 9-8이 되면서, 더 이상 재밌는 경기가 있을까 싶게 양 팀의 치열한 공방은 이어졌습니다. 포기를 모르는 대한민국.


강백호의 이 타석은 참 교과서적이었습니다.

거의 포수 미트에 들어갔다 싶은 속구를 파울로 커트하고, 갑자기 떨어지는 좋은 커브도 커트하고, 뚝 떨어지는 공을 미동도 안하고 골라내 풀카운트를 만들고. 결국 견고해만 보이던 야마오카가 실투를 하면서 또 그것을 강백호가 받아쳐 2타점 적시타를 끌어냈습니다. 5회에는 이정후-강백호 영건 콤비가 다소 아쉬움을 남겼지만 7회에는 이들이 공격을 주도하며 1점차까지 추격을 했습니다.


대주자로 투입됐다가 주루 플레이 미스도 있었지만 안타와 민첩한 주루 등으로 반격에 힘을 보탠 이정후 


7회말 1점을 다시 내준 대한민국은 결국 8-10으로 이날 경기를 내줬습니다.

그러나 7회말 벤치의 뚝심과 배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1점차에서 구위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우석을 마운드에 올렸는데, 두 타자 연속 풀카운트 볼넷에 이어 희생번트로 1사 주자는 2,3루. 겐다의 번트가 빠르게 고우석에게 잡혀 3루 주자를 선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박세혁과 교체돼 들어온 양의지 포수는 확실한 아웃인 1루 사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우석이 3번 마루에게 다시 풀카운트 볼넷으로 주자는 만루.

벤치가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고우석으로 밀고 갔습니다. 교체된 4번 콘도와 또 풀카운트 끝에 이번에는 몸에 맞는 공으로 실점과 함께 또 만루. 4개의 4사구에 실점까지, 이제는 정말로 벤치가 움직여야할 상황으로 보였지만 여전히 고우석으로 밀고 갔습니다. 이 큰 고비에서 고우석은 오히려 힘을 내며 5번 아사무라를 삼진, 6번 요시다를 힘없는 유격수 뜬공을 잡아냈습니다.


만약 결승전이었다면 고우석을 교체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 경기라면 벤치가 고우석을 믿고 가는 선택이 옳았습니다. 설령 그것이 더 큰 실점으로 이어졌더라도 그건 고우석이 스스로 책임지고 갈 일. 반대로 그 위기를 스스로 벗어난다면 젊은 투수에게는 정말 큰 경험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벤치에서는 흔들리던 투수에게 계속 믿음을 전달했고, 그 믿음을 딛고 고우석은 이닝을 확실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비록 제구력 난조와 실점도 있었지만, 경험과 자신감이라는 면에서 고우석은 큰 것을 얻은 경기가 됐습니다. 8회말 문경찬도 특유의 시원시원한 피칭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번 대만전 등판과는 확연히 달랐고, 또 문경찬도 얻은 게 많은 경기였습니다.



결과가 별 의미가 없는 경기였지만 그래도 일본전이니 이겼더라면 더 좋았을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경기 초반부터 크게 낙담할 상황에서도 우리 선수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일본팀을 질리게 만드는 장면을 계속 만들어냈습니다. 수비와 주루 플레이 등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결승전 재대결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면 차라리 이날 그런 플레이들이 나오는 게 이득.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 참 많은 시도를 하면서 오히려 대단히 단단한 팀이라는 걸 과시했습니다.


김경문 감독에게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것 같습니다. 이날 빼어난 활약을 펼친 강백호, 황재균, 김상수 등을 과연 결승전에서 어떻게 기용할 것인지, 라인업은 어떻게 최적으로 짜야할 것인지, 이날 경기는 그런 행복한 고민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일단 양현종, 김광현, 이영하, 차우찬, 조상우, 하재훈 등이 모두 휴식을 취하면서 마운드는 듬직합니다. 진짜 대결인 17일의 결승이 몹시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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