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류현진의 병가, 가장 진보적 결정

조회수 2019. 8. 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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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전제와 어그로

전제가 있다. 분명한 선을 긋는다. 이데올로기는 잠시 넣어두시라.

요즘은 그렇다. 참 팍팍한 세상이다. 말 한마디에 정색이다. ‘넌 도대체 성향이 뭐야?’ 그런 시선이다. 둘로 나눠야한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빨간색이냐, 파란색이냐. 굳이 그런 걸 따져야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부디 카테고리를 혼동마시라. 엄연히 스포츠 얘기다. 여기 등장할 ‘진보’라는 단어? 별 뜻 아니다. 일상의 얘기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식에 대한 분류일 뿐이다. 어그로? 그럴 지 모른다. 판단은 읽는 분의 몫으로 맡긴다.

<라디오스타>는 많은 명장면을 남겼다. 그 중 하나다. 부활의 김태원과 김흥국이 출연한 편이었다.

김구라 : 호랑나비는 대체 무슨 장르에요?

김태원 : 호랑나비는 코리안 프로그레시브죠 , 굉장히 진보적이고….

윤종신 : 핑크플로이드 같은?

김태원 : 코리안 프로그레시브.

윤종신 : 호랑나비가 굉장히 진보적이긴 하죠.

김흥국 : (화들짝 놀라며) 나 진보 아니야, 나 보수야. 나 진보 아니야…. (웃음 빵빵)

그런 발랄함까지는 환영이다. 그 이상의 채색은 사양한다.

                                                                  MBC TV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이번 부상자명단의 관전포인트 ‘발표 시기’

현지 시간으로 금요일 오후(3일)였다. 한국시간으로는 토요일인 4일 이른 아침 무렵이다.

난데없는 속보가 떴다. 발신지는 다저 스타디움이었다. 새로운 부상자명단(IL) 얘기였다. 그냥 슬쩍 흘러나온 말이 아니다. 구단의 오피셜이었다. 리스트에 오른 건 현재 리그 1위 투수였다.

뭐지? 전혀 조짐도 없던 일이다.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상쾌한 로키산 등정이 엊그제 아닌가. 아레나도? 누구시더라? 가볍게 무시해줬다. 해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다. 중요한 고비를 잘 넘겼다. 앞으로는 내리막길 질주만 남았다.

어디 그 뿐인가. 항소 판결까지 얻어냈다. MLB 사무국의 자책점 조정 말이다. 2점을 면책받았다. 덕분에 경쟁자들과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런 시점이었다. 그런데 IL이라니. 마른 하늘에 천둥, 번개였다.

잠시 후. 업데이트가 됐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코멘트다. 대강 이런 얘기였다. “심각한 건 아니구요. 어제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좀 불편하대요. 로테이션 한 번 거를 거구요. 그 다음에는 괜찮을 것 같아요.”

그걸 뒷받침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IL은 이틀 전(2일)으로 소급 적용됐다. 그럼 12일 등판이 가능하다. 곧이어 당사자도 비슷한 얘기를 전했다. “목에 담 증세가 와서요.”

부상 관련 뉴스는 늘 그렇다. 정보가 제한적이다. 최소한의 것만 담긴다. 따라서 예후에 대한 전망도 보수적이다. 처음에는 경미한 것으로 출발한다. 그러다가 점점 깊어지고, 길어진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로버츠 감독의 말이 워낙 구체적이다. ‘로테이션 한 번만’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지 언론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여름 휴가라는 표현도 쓴다. 잠시 짬을 준 것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심각성 문제는 논외로 해도 될 것 같다. 정작 이번 IL의 관전 포인트는 따로 있다. 바로 결정과 발표의 ‘시기’다.

사이영상의 필요 조건 : 200이닝

그의 핵심 이슈가 있다. 사이영상 레이스다. 아시다시피 선두 주자다. 대부분 예측 프로그램에서 1위로 꼽힌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앞으로 두 달이나 남았다. 변수는 부지기수다.

무엇보다 기록으로 주는 상이 아니다. 투표로 결정된다. 페넌트레이스가 끝난 뒤 투표인단(팀당 기자 2명씩)이 표를 던진다. 발표는 월드시리즈 종료 후다.

투수의 능력을 재는 데이터는 수십 가지다. 여기에 대한 판단은 개인차가 크다. 99번의 경우는 평균자책점(ERA) 분야에서 압도적이다. 볼넷, 이닝당출루허용율(WHIP) 같은 지표도 1위다.

반면 뒤지는 부문이 있다. 다승, 이닝수 같은 분야다. 특히 파워(삼진)라는 요소가 문제다.

이와 관련, 7월의 투수 결정을 주목해야 한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5승(Ryu 2승)으로 수상했다. 이닝수는 비슷했고, ERA(0.55-1.14)는 오히려 훨씬 좋았다. 그러나 탈삼진(23-44)에서 크게 밀렸다. 물론 이달의 투수는 승수에 비중을 둔다. 그렇지만 불안함은 지울 수 없다.

사이영상의 전형이 있다. 명시된 바 없지만, 암묵적인 패턴이다. 대체로 두가지다. 이닝수와 탈삼진 능력이다. 이 중 삼진은 그렇다치자. 스타일로 퉁치면 된다. 그렉 매덕스(4회)의 전례도 있다.

문제는 먹방이다. 얼마나 많이 먹느냐는 항목이다. (선발) 200이닝이 관건이다. 그걸 못 채운 수상자는 이제껏 3명 뿐이다. AL에서는 두 번이다. 2018년 블레이크 스넬(180.2이닝)과 1994년 데이비드 콘(171.2이닝)이다. NL에서는 2014년의 커쇼(198.1)가 유일하다.

그러니까 적은 이닝수는 꽤 불리한 요소다. 현재 그의 135.2이닝은 리그 9위다(1위 저먼 마케스 150이닝). 이런 판국에 IL이 됐다. 시즌 두번째다. 그럼 현실적으로 200이닝은 어렵다. 남은 기간을 개근해도 그렇다.

관념을 벗어나, 실리가 돋보이는 결정 과정

감상 포인트도 여기서 비롯된다. 부상자명단(IL)의 결정 과정을 눈여겨봐야 한다. 독특한 지점이 발견된다.

상기하시라. 결정과 발표 시점이다. (현지시간) 금요일이었다. 로키스전 이틀 뒤다. 무엇보다 다음 로테이션을 3~4일 앞둔 때였다. 이유는 목의 뻐근함이다.

그 정도라면 하루 이틀 추이를 지켜볼만도 하다. 등판 전날까지 상태를 보다가 결정해도 늦지 않다. 팀의 실질적 1선발 아닌가. 그 정도는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밀당의 흔적은 없다. 싹싹하게 물러섰다. 의외다.

말했다시피 중요한 시기다. 사이영상 레이스에 굳히기 점수를 올릴 찬스였다. 일정상으로 더 그렇다. 어려운 숙제(원정)를 마쳤다. 꿀같은 홈 경기 차례다. 욕심내서 지키고 싶은 로테이션이다. 그런데 마다했다. 굳이 강행하려는 뜻이 없었던 것 같다.

해석은 두 갈래다. 먼저 보수적인(전통적인) 관점이다. 자기 날짜를 지키는 건 전통적 의무다. 그걸 위해 끝까지 해보는 게 도리다. 쉽게 건너뛰는 건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 맥스 슈어저의 예가 그렇다. 마지막까지 등판을 고집했다. 오히려 팀에서 말렸다.

그런데 이 경우는 반대다. 캐주얼한 느낌이다. 가볍고, 빠른 결정이었다. 실리가 돋보인다. 관념적인 틀에 얽매이려 하지 않는다. 프로그레시브한(progressive) 측면이다.

사실 개인적인 부분을 제외해 보자. 사이영상 후보 또는 예비 FA라는 점 말이다. 그럼 병가 한 번이 크게 나쁠 건 없다. 숨가쁘게 달려온 몇 달이었다. 올스타전 브레이크 때도 일했다. 휴식이 필요한 건 너무나 당연하다. 4월의 기억도 있다. 자진 강판→복귀→폭풍 질주.

물론 고려할 점도 있다. 팀에 대한 민폐다. 그런데 지금 다저스는 그럴 필요가 없다. 15~16게임차로 멀찍이 도망갔다. 굳이 무리하는 게 이상하다. 괜히 자기 밥그릇 챙기는 걸로 비춰질 지 모른다. 오히려 이게 낫다. 가을을 대비할 때다. 그게 진정 팀을 위한 태도다.

가장 진보적인 노동법 : LA, 캘리포니아의 병가(sick day)

다저스는 LA 팀이다. 미국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도시다.

얼마전 올스타전 때였다. 로버츠 감독에게 질문 하나가 왔다. ‘우승하면 백악관에 갈 건가요?’ 대답은 뻔하다. “워싱턴 DC는 경기하러 가는 것도 충분한데요… 뭘.” 안 간다는 말이다. 당연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축하가 필요한 다저스 팬은 많지 않다.

정치 외에도 그렇다. LA가 속한 캘리포니아주는 특히 노동 문제에 엄격하다.

2014년이었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특별한 법에 서명했다. 유급 병가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사업장이 근로자의 병가(sick day)를 연간 3일씩 보장해야 한다’는 법안이었다. 이 법은 2015년부터 시행됐다. 그리고 2018년에는 3일이 6일로 늘어났다. 본인이나 가족의 병간호를 위해서도 쓸 수 있다. 물론 유급이니까 급여에서 손해볼 일은 없다. 고용주는 사유에 대한 증빙을 요구해서도 안된다(특별한 경우만 예외). 아마도 가장 진보적인 조치일 것이다.

물론 좀 다른 얘기다. 연봉 200억짜리 근로자다. 같은 범주에서 다룰 일은 없다. 다만 맥이 통하는 부분은 있다. 구태여 관습과 전통에 얽매일 필요없다는 점이다.

근면함, 성실함은 중요하다. 개근상의 가치도 크다. 하지만 조화와 실용도 가볍지않다. 부지런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아파도 참고 걷는 게 다가 아니다. 관념은 바뀌어야 한다. 멀리 가려면 잠시 멈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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