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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2006년 드래프트, 커쇼와 슈어저의 엇갈린 가을

백종인 입력 2019.10.14. 06:32 수정 2019.10.14.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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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과거는 잔인하다. 가끔씩 그렇다. 두고두고 후회를 남긴다. 2006년 드래프트가 그랬다. 유망주들이 쏟아졌다. 특히나 투수쪽이 넘쳐났다. '검증된' 어깨들이 즐비했다. 4~5명이 상위권으로 지명됐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헷갈리기 시작한다. 분명히 공은 좋다. 그런데 한가지씩 걸린다. 내구성, 발전 가능성. 뭐 그런 것들이다.

다저스가 7번째였다. 고민 끝에 찍었다. 괴상한 폼의 좌완투수였다. '저렇게 던지면 다치기 십상인데. 데려가서 손 좀 보면 괜찮겠지.' 텍사스 출신의 고교생 클레이튼 커쇼였다.

10번째 픽(pick)의 자이언츠도 비슷했다. 마음에 둔 상대는 있다. 그런데 미심쩍다. 몸집 탓이다. 180cm에 77kg다. 평균(191cm)보다 한참 작다. 가녀린 체구로 버틸 수 있을까? 어쨌든 시애틀에 남고 싶었던 팀 린스컴은 샌프란시스코행 이삿짐을 꾸렸다.

다음 차례는 D백스였다. 그들이 부른 이름은 의외였다. 맥스 슈어저, 99마일짜리 파이어볼러였다. 공은 빠르지만 안정감이 별로였다. 경력도 불안했다. 본격적인 투수는 대학 2학년부터였다. 폼도 일정치 않았다. 팔꿈치가 위험한 딜리버리였다. 그럼에도 지명은 강행됐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성실성이다. "드래프트 룸에서 우린 모두 '매드 맥스'라고 불렀죠. 늘 굉장히 화난 표정이었어요. 그런 얼굴로 미친듯이 훈련하고, 또 훈련하는 친구였어요. 타자하고 대결도 그랬죠. 거의 광적인 승부욕을 가진 투수였어요." D백스의 스카우트 책임자였던 마이크 리조의 회상이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가장 늦게 핀 슈어저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6년 드래프트 트리오는 곧 리그를 폭격했다. 선두 주자는 린스컴이었다. 그는 짧고 화끈하게 타올랐다. 2008년과 2009년이 불꽃 같았다. 2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자가 됐다. 이후로 내리막을 걸었다. 그나마 우승 반지 2개(2010년, 2012년)가 위안이었다.

다음은 커쇼의 차례였다. 20세인 2009년에 데뷔했다. 이듬해부터 각광을 받았다. 2010년 200이닝을 채우며 13승을 올렸다. 새로 장착한 슬라이더 덕이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또 하나의 위닝샷이 추가됐다. 7년 사귄 동창생과의 결혼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전성기가 시작됐다. 이후로 4년간 3번(11, 13, 14년)의 사이영상을 휩쓸었다. 어느덧 신계(神界)에 진입한 상태였다. 그러나 2017년 18승(4패)이 마지막이었다. 서서히, 그러나 너무나 뚜렷한 하강 곡선이다.

30세 시즌이 2018년이었다. 이닝수(161.1)도 확연히 줄었다. 크고 작은 부상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지병이 있다. 가을을 너무 타는 난치병이다. 올해도 치명적인 증세에 시달려야 했다.

트리오 중에 가장 늦게 핀 건 슈어저였다. 4살 어린 커쇼보다도 한참 늦었다. 초창기는 별 볼 일 없었다. 첫번째 팀 애리조나에서는 자리도 못잡았다. 디트로이트로 짐을 싸야했다. 빛을 본 건 30세가 거의 돼서였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보라스의 '주행거리' 이론

2014년 겨울이었다. 슈어저가 (FA) 시장에 나왔다. 31세 시즌을 앞둔 시점이었다. 이견이 분분했다. 다년 계약을 주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다. 그가 기발한 걸 주장했다. 주행거리(odometer)라는 개념이었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핵심 자산이다. 중고 시장에서 즉각 현금화도 가능하다. 가격 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주행거리다. 많이 달렸다는 건, 많이 소모됐다는 뜻이다.

슈어저는 늦게 핀 꽃이었다. 덜 피곤한 20대를 보냈다는 의미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은 자료 하나를 릴리스했다. '우리 고객은 고작 1,239이닝을 달렸습니다.' 비교 대상이 있었다. 같은 나이의 CC 사바시아(2,127이닝), 잭 그레인키(1,669이닝), 배리 지토(1,627이닝)였다. 이들에 비해 약 400~900이닝이나 싱싱했다. 커쇼? 30세 시즌까지 2096이닝을 달렸다.

대부분은 시큰둥했다. '어디서 수작이야.' 보라스의 블러핑이라고 비웃었다. 단, 한 명만 아니었다. 내셔널스의 GM 마이크 리조였다. 그 이름을 기억하시나? 2006년 드래프트 때다. 바로 슈어저를 지명했던 D백스의 스카우트였다. "아, 글쎄 엄청 성실하다니까."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할 때, 괜찮다던 그 사람이다.

그러나 스카우트는 성장 과정을 지켜주지 못했다. 드래프트 직후에 해임된 탓이다. 그리고 워싱턴으로 직장을 옮겼다. 단장 보좌역에서 시작해, 당시는 사장 직급의 GM이었다. 결국 7년에 2억 1000만 달러라는 메가 딜에 OK했다. 연평균 3000만 달러, 커쇼 급이나 가능한 수준이었다.

위험한 결단이었다. 하지만 현명했다. 2개의 사이영상(2016, 2017년)은 덤이었다. 5년째인 올해가 최대의 성과다. 그 덕에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구단 사상 처음이다. 거기서도 2승을 먼저했다. 모두 적지에서 거둔 승리들이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카디널스 팬으로 성장했던 슈어저

세인트루이스는 독특한 곳이다. 야구의 도시다. 특히 10월이 제철이다. 가을이면 모두 좀비가 된다.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11번이나 차지했다. 양키스(27회) 다음으로 많은 횟수다.

팬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인근 지역을 합해도 300만이 넘지 않는다. 그런데도 관중 동원은 늘 최상위권이다. 작년에는 다저스(평균 46,859명) 다음 2위(41,933명)였다. 양키스(39,920명) 보다도 많다. 충성심과 자부심도 대단하다. 미식축구(NFL) 팀들이 못 버틸 정도다. 카디널스가 애리조나로 떠났고, 램스도 LA로 옮겼다.

인근에 체스터필드라는 소도시가 있다. 그곳에 단란한 가정이 있었다. 3살 터울 형제의 우애가 남달랐다. 여느 아이들처럼 카디널스 신도들이었다. 뒷마당에서 하루 종일 야구 놀이에 빠져 살았다. 주말이면 아빠와 함께 부시 스타디움을 찾았다. 특히나 동생이 열정적이었다. 세이버메트릭스에 심취할 정도였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아버지 옆의 빈자리

며칠 전이었다. 챔피언시리즈를 앞둔 날이었다. 부시 스타디움이 살짝 싸늘해졌다. (아마 그 지역 미디어인듯) 어느 기자가 원정팀 에이스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곳 출신 아닌가. 어렸을 때부터 굉장한 카디널스의 팬이라고 들었다.'

뭐 당연한 질문이다. 그런데 듣기에 따라 불편할 지 모른다. 매드 맥스의 눈빛이 달라진다. "예, 여기서 자랐죠.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난 엄연히 냇츠(내셔널스)를 위해 커다란 임무를 맡았어요. 내 마음 속에는 그 생각밖에 없어요."

물론 사람들은 안다. 그가 가장 뛰고 싶어했던 곳이었다. 고교 졸업반 때는 지명을 받기도 했다. 43라운드, 전체 1,291번째 순번이었다. 순위가 너무 낮아 대학으로 진로를 바꿔야 했다. 2014년 FA 때도 마찬가지다. 꾸준히 행선지 후보로 거론됐다. 막판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그는 2차전을 맡았다. 어제(한국시간 13일) 경기였다. 7회까지 완벽했다. 무실점 승리 투수가 됐다. 부시 스타디움에는 가족들이 함께 했다. 늘 그렇듯 아버지의 옆 좌석은 비어있었다. 7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 알렉스를 위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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